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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로 옆 좋아하던 불도그 안보여" 이용녀 유기견 보호소 가보니

“하늘이 도왔지...”

 
지난 4일 '유기견의 대모'로 불리는 배우 이용녀(65)씨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지난달 28일 대형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은 처참했다. 당시 난 불로 이씨가 중·소형견과 함께 생활하던 집이 전소했다. 속옷 하나 못 챙길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지만, 이씨는 뒷산으로 불이 옮겨붙진 않은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인근에 마을이 있어 불이 더 커졌으면 큰일 날 뻔 했다"면서다.
 

경기도 포천에 있는 이씨의 유기견 보호소에서는 자원봉사자들의 사고 수습이 한창이었다. 기자도 자원봉사를 신청해 현장에 갔다. 이씨에게 미리 취재 허락을 받고 진행했으며, 이씨와 봉사자들의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쉬는 시간에 인터뷰 허락을 받아 그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의 모습.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기견 중 일부가 폐사하고 이씨의 생활 공간이 전소됐다. 함민정 기자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의 모습.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유기견 중 일부가 폐사하고 이씨의 생활 공간이 전소됐다. 함민정 기자

검은색 재 뒤집어쓴 유기견들

이날 오전 10시 40분쯤 유기견 보호소에 도착했다. 현장에는 아직도 탄 냄새가 진동했다. 유기견들의 털은 진회색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불을 끄고 나니 보호소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다. 집터 공간에는 검은색 재가 섞인 흙더미, 가재도구, 깨진 유리, 개껌 등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화재가 발생한 지 5일째 되던 이날 이곳은 수도가 끊긴 상태였다. 화재 당일에는 전기도 끊겨 암흑 속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급한 대로 이씨는 남은 유기견 30여 마리와 생활하고 있는 대형견사에 전기를 연결했다. 불이 난 보호소는 지난 2017년부터 이씨가 유기견들과 함께 생활해 온 곳이었다. 이번 화재로 1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가 났다.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 중 대형 견사의 일부분이 불길에 그을음을 입은 모습. 이씨는 ″건물이 불연소 소재로 지어져 다행히 불이 대형견사에는 옮겨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함민정 기자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 중 대형 견사의 일부분이 불길에 그을음을 입은 모습. 이씨는 ″건물이 불연소 소재로 지어져 다행히 불이 대형견사에는 옮겨붙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함민정 기자

"예뻐하던 뚱뚱한 불도그 안 보여요"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낮잠을 청하는 한 유기견의 모습.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씨는 1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낮잠을 청하는 한 유기견의 모습. 지난달 28일 이곳에서 발생한 화재로 이씨는 1억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입었다고 말했다. 함민정 기자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12명의 자원봉사자가 이곳을 찾아 구슬땀을 흘렸다. 이들은 폐기물 분리수거, 견사 안에 있던 이불을 꺼내 햇볕에 말리는 작업, 후원 물품을 옮기는 작업 등을 같이 진행했다. 목장갑을 꼈지만, 손톱 밑이 금세 까맣게 변했다. 앞서 자원봉사 신청 당시 카페 공지에는 ‘사진 촬영 자제’와 ‘화재 상황에 대한 질문을 삼가달라’는 등의 주의사항이 공지됐다. 봉사자들은 이 공지를 지키며 묵묵히 일만 했다.
 
화재 이전부터 이씨의 유기견 보호소를 알고 있던 봉사자들은 변고 소식에 깜짝 놀랐다고 한다. 친구 2명과 함께 온 40대 김모(여·서울 용산)씨는 이날 “이씨의 유기견 보호소를 알게 된 지 7년 정도 됐다”며 “불도그 친구가 있었는데 뚱뚱해서 잘 걷지 못했다. 난로 옆을 좋아했는데 지금 안 보인다”고 안타까워했다.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아놓은 폐기물들. 전날에도 수차례 폐기물 차량이 들어와 폐기물들을 싣고 나갔다고 한다. 함민정 기자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모아놓은 폐기물들. 전날에도 수차례 폐기물 차량이 들어와 폐기물들을 싣고 나갔다고 한다. 함민정 기자

지난해부터 한 달에 한 번 정도 봉사를 해온 하모(41·여)씨도 이날 월차를 내고 대학생인 조카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하씨는 “참담하다. 예뻐하던 말티즈가 안 보인다. 강아지들도 숯검댕이가 됐다”고 했다. 핑크색 우비를 입고 봉사에 나선 박모(59·경기 과천)씨는 “이씨처럼 혼자 유기견을 관리하는 분들이 전국에 적지 않다. 법이 제대로 만들어져 유기견 수가 줄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폐기물을 치운 포크레인은 같은 마을 주민 서황일(64)씨가 직접 몰고 왔다. 건설업 대표인 서씨는 “지난 1일부터 폐기물 분리수거를 돕고 있다"며 "처음엔 엄두가 안 났는데 다행히 직업이 잘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더라. 삽질도 해야 하고 할 일은 많은데…"라고 했다.
 

후원 물품 들어오지만, 생수 금방 동나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에 방문한 한 자원봉사자가 대형 견사에 있던 이불을 말린 뒤 다시 정리하러 가고 있다. 이날 자원봉사자들은 폐기물을 치우고 유기견이 덮는 이불을 털고 말리는 작업, 후원 물품 정리 등을 진행했다. 함민정 기자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의 유기견 보호소에 방문한 한 자원봉사자가 대형 견사에 있던 이불을 말린 뒤 다시 정리하러 가고 있다. 이날 자원봉사자들은 폐기물을 치우고 유기견이 덮는 이불을 털고 말리는 작업, 후원 물품 정리 등을 진행했다. 함민정 기자

오후에는 ‘이용녀 선생님 옷’이라고 적힌 택배 박스와 생수 2L짜리가 6개 들어있는 팩 50개 등이 배달됐다. 봉사자들은 택배로 온 후원 물품을 창고에 옮겼다. 뉴스를 보고 강원도 철원에서 왔다는 정모(31·여)씨는 택배가 올 때마다 송장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그는 “화요일부터 3일째 봉사를 하고 있다”며 “후원 물품은 옷·이불·물 등이 주로 들어왔다”고 했다.
 
하지만, 후원품 택배의 양은 그리 많지 않았다. 생수도 며칠이면 금방 동이 난다고 했다. 이날 한 부부는 현장을 둘러본 뒤 폐기물 철거 비용을 지원했다. 아내 함모(45·여)씨는 “반려견을 키우는 입장에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조금이나마 도움을 드리기 위해 왔다”고 했다. 전시장치업체를 운영하는 남편 손모(50)씨는 “작업 진행 상황을 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느껴”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가 유기견 보호소 중 대형 견사 앞쪽에 마련된 임시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씨는 이곳에서 컵라면과 빵, 커피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4일 오후 배우 이용녀씨가 유기견 보호소 중 대형 견사 앞쪽에 마련된 임시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다. 이씨는 이곳에서 컵라면과 빵, 커피 등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있다. 함민정 기자

전 재산을 바쳐 18년간 홀로 유기견·유기묘를 보살펴 왔던 이씨는 화재 이후 단 하루도 견사를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다. 이씨는 "살아오면서 큰일을 겪었을 때도 당황스러워했던 적이 거의 없었다"며 "(이번 화재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뿐" 이라고 했다. 그는 "폐사한 유기견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겠지만, 지금 할 일이 많아 현장을 정리한 이후 감정적인 부분은 추스를 것"이라고 했다.
 
이씨는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아직 세상은 살 만하고 누군가의 아픔에 대해 마음 쓰는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견들에 대해선 "나의 삶 그 자체"라며 "여배우로서의 삶은 크지 않다. 40년간 실컷 했고 하고 싶었던 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했다. 그는 "살면서 많은 사랑을 받아온 것에 대한 보답으로 죽기 전에 유기견과 관련해 작은 문제라도 해결하고 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동물 보호을 위한 시스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법치주의 국가에서 동물에 대한 상식적인 법조차 없기 때문에 아이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며 "개인에게 맡겨 놓아서는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물에 대한 만용은 결국 광우병, AI, 코로나19 처럼 우리에게 재앙을 불러온다"며 "동물 문제는 우리 모두의 숙제다. 동물 단체나 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만의 숙제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함민정 기자 ham.minj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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