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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간섭 끊이지 않는 아세안 10개국…‘다자 협력틀’ 속 세력균형 통해 생존 모색

G2 ‘신냉전 격전지’ 동남아 

2019년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2019년 태국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모든 나라들이 미·중 전략 경쟁에 대해 떠들어도 동남아 국가들은 호들갑을 떨지 않는다. 남의 일이라서가 아니라 이런 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눈앞의 과제인 한반도와 주변 4강 외교에 몰입한 한국과 달리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국가들은 항상 큰 판을 봐왔다. 냉전 시기부터 지금의 미·중 갈등까지 끊임없는 간섭과 개입 속에 강대국의 힘과 의지가 충돌하는 최전선에 놓여 있었던 지리적·역사적 환경의 결과다.
 

굴곡진 동남아 역사
동아시아정상회의에 미 가입시켜
중 영향력 견제, 미 군사행동도 막아

변화무쌍 외교, 우리보다 한 수 위
한국, 아세안 국가와 협력 강화 필수

아시아의 냉전 전선은 동북아부터 동남아까지 길게 펼쳐져 있었다.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와 버마식 사회주의의 미얀마, 인도네시아 수카르노 정권 등은 공산주의를 채택했거나 사회주의 친화적이었다. 그 안에서 옛 소련과 중국을 등에 업은 국가들 간의 대립도 격화됐다. 반대편에는 태국·말레이시아·싱가포르·필리핀 중심의 반공 연합이 존재했다. 여기에 진영을 넘어 비동맹운동에 적극적이었던 인도네시아까지 가세하며 복잡한 전선이 전개됐다. 진영 안에서, 또는 진영을 넘어 협력과 갈등이 반복됐고 그 속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각자의 생존을 모색했다.
 
1990년대 냉전 종식 후 강대국 경쟁은 소강상태를 맞았다. 소련은 해체됐고, 중국은 아직 성장하지 못했으며, 미국은 동남아에서 한발 물러났다. 강대국 간섭이 약해진 해방 공간에서 동남아 국가들은 ‘다자 협력’으로 활로를 찾았다. 탈냉전기에 동아시아경제그룹(EAEG)과 아세안안보포럼(ARF), 아세안+3 등을 제안하고 추진한 것은 강대국 경쟁의 휴지기에 나타난 아세안의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중국이 경제적·군사적으로 급부상하면서 이 같은 자율적 공간은 급속히 좁혀졌다. 중국에게 지정학적 앞마당인 동남아 지역은 가장 중요한 공략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성장을 위해서는 주변부, 즉 아세안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동남아는 적대적 세력의 접근을 막는 완충지대이기도 했다. 더 적극적인 의미에서 해양 세력이 되려는 중국이 남중국해를 거쳐 인도양에 접근하기 위해서도 아세안 지역의 확보는 필수였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이 지역에서 중국의 패권은 미국에겐 중대한 전략적 손실을 의미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글로벌 경제의 엔진으로 떠오른 아시아 중에서도 가장 젊고 잠재력 있는 동남아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는 점에서다. 게다가 미국의 글로벌 군사 전략은 해상교통로의 지배를 전제로 한다. 이를 통해 언제 어디서라도 군사적으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어야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남중국해와 인도양 지배 전략은 미국의 해상교통로를 끊어내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10여 년간 동남아에서의 미·중 경쟁은 미국의 ‘피봇 정책(Pivot to Asia)’과 중국의 ‘일대일로’ 충돌로 확산됐다. 바이든 정부에서 ‘아시아 차르’로 임명된 커트 캠벨에 따르면 피봇 정책은 아시아 내에서도 동북아에서 동남아로 관심의 초점이 이동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이 같은 미·중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아세안의 생존 전략은 고차원 방정식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자율적 공간의 확보, 헤징 전략과 함께 현실주의적 세력균형 전략도 동원해야 했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목소리를 높이자 아세안 국가들은 미국을 불러들였다. 동아시아 다자 협력을 관망하던 미국을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가입시키며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했다. 미국도 이에 호응해 2011년 EAS에 가입하고 피봇 정책에 대한 동남아 국가들의 지지를 확보했다. 아세안에 접근해 중국을 견제하려던 미국의 전략과 아세안 국가들의 세력균형 전략이 맞아떨어진 셈이다.
 
이처럼 아세안의 세력균형 전략은 다자 협력의 틀을 적극 활용했다. 강대국이라고 해도 다자 협력의 틀에 들어온 이상 그 규칙을 따라야 했다. 미·중 모두 아세안이 주도하는 다자 협력의 틀 속에서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협의와 합의라는 아세안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아세안은 이를 통해 어떤 일을 도모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강대국의 일방적인 의도를 좌절시킬 수 있었다. 미국이 EAS 가입 직전까지 아세안이 요구했던 아세안우호협력조약 서명을 거부했던 것도 동남아 지역에서의 무력 사용 금지라는 조항 때문이었다. 이 조항이 미국의 군사적 행동에 제약을 가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이 쉽게 결론을 내지는 못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정부에서도 계속될 미·중 경쟁의 와중에서 동남아 지역은 제로섬의 전쟁터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도 중국을 압박하기 위해 아세안 국가와의 관계 강화를 추진할 것이다.
 
최대 관심사는 누가 보다 많은 국가의 지지를 확보할 것이냐다. 아세안 10개국을 자기편으로 삼는 쪽이 확실한 우위를 확보하게 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세안 국가들은 미·중 두 나라를 놓고 전략적 선택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이에 맞서 아세안 국가들은 숫자의 힘으로 응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양국이 아세안을 놓고 벌이는 경쟁과 이에 대응하는 아세안의 수 싸움은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아세안 국가들은 이처럼 외교적·전략적 변화무쌍함이란 측면에서 한국보다 한 수 위다. 한국이 경제력과 군사력 등 객관적인 국력에서는 아세안에 앞설지 몰라도 한반도라는 족쇄가 행동반경을 제약하다 보니 다양한 전략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아세안의 외교적 행보와 생존 전략은 우리 정부도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아세안 국가들이 겪고 있는 전략적 딜레마는 한국이 처한 전략적 딜레마와 다르지 않다. 같은 고민을 가진 국가와 지역 사이에는 협력의 공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통의 문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한반도와 주변 4강 너머로 시야를 확장하고 국제적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도 아세안과의 협력 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연세대 정외과 졸업 후 호주 머독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교부와 신남방정책특위 자문위원을 맡고 있으며 『지정학적 시각과 한국 외교(공저)』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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