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등반’ 나서는 클라이머들
철저한 훈련, 금주·소식의 수도승 생활
취침 전 천장에 그려질 정도 루트 익혀

문순자(50)씨가 지난 2월 24일 경기도 용인 백암면의 조비산 암장에서 5.13a 난도인 '블랙홀' 루트를 등반하고 있다. 문씨는 블랙홀 루트를 완등하기 위해 트레이닝과 식이요법을 병행하며 '프로젝트 클라이밍'을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 한겨울에도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
프로젝트. ‘특정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체계적으로 움직이는 작업 과정.’ 이게 클라이밍의 수식어가 된다. 암벽 등반이되, 특정 목표를 설정하고 몸과 마음을 만드는 지난한 흐름이다. 모든 스포츠에는 프로젝트가 있다. 그중 암벽 등반 프로젝트는 험난한 축에 속한다.

우리나라 나이로 70세인 김용기씨가 지난 2월 28일 경기도 용인 조비산에서 등반하고 있다. 아래에 등반 순서를 알리기 위해 줄 세운 암벽화들이 보인다. 김홍준 기자
봄이다. 바위 냉기가 공기 속으로 빠져나간다. 온기가 올라오며 마찰력이 거세진다. 암벽 등반 시즌 개막을 알리는 '느낌'이다. 암벽 등반은 산행의 한 방법. 하지만 겨울에도 암벽 등반하는 사람들이 있다. ‘맑음, 낮 최고 영상 5도’라는 기상청 예보관의 말을 믿는다. 이렇게 나름 겨울 등반의 기준을 정한다. 날씨가 급변할 수 있는 긴 루트 대신 짧은 루트를 택한다. 봄에 시즌이 시작하는 멀티 피치(인수봉 등에서 여러 구간에 걸쳐 등반하는 방법)에 견줘 단피치라고 한다. 혹은 하드-프리클라이밍((hard-free climbing)이라고 한다.

최용석씨가 지난 2월 28일 경기도 용인 조비산에서 자신의 프로젝트 등반 대상인 ‘구름처럼(5.12c)’ 루트를 등반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 암벽 등반 인구 150만 명 넘어
지난달 28일 조비산. '클린이(클라이밍하는 어린이)' 김인해(28·경기도 파주)씨가 ‘블랙홀(난이도 5.13a, 그래픽 참조)'을 완등했다. 추락 없이 상급자 루트를 통과한 것이다. 환호성이 터졌다. 덕담에 “고생했어”라는 말도 나왔다. 고생했다니, 클라이밍이란 게 쉽게 돌아갈 수 있는 길을 굳이 벽에 부딪쳐 가며 나름 즐거움을 얻는 일 아닌가.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한 등반가의 하루 식단.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최대한의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을 섭취하느라 이마저도 다 먹고 마시지도 않는다. 김홍준 기자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을 맨손으로 오르는 극한의 프리 솔로 프로젝트 등반을 하는 알렉스 호놀드(36·미국)는 "술은 맛본 적 있지만 마신 적은 없고, 커피도 안 마신다"고 말했다. 몸을 괴롭히는 행위는 안 한다는 것이다. 그의 고행과 번민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프리 솔로'는 오스카상을 받았다.
프로젝트 클라이밍은 5.13급 같은 상급자 루트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김용기씨는 “초급자 수준인 5.9, 5.10이라도 개인이 목표를 설정하고 노력한다면 프로젝트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성씨의 여자친구 양지원(25)씨도 프로젝트 중이다. 5.10c에 나선다. 양씨는 “어제보다 한발 한발 더 나아갈 때, 바위에 수없이 새겨진 행마를 풀 때, 그게 암벽 등반의 묘미”라고 말했다.

김종오씨가 지난 2월 24일 경기도 용인 조비산에서 '타이거'를 등반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암벽 등반 장르는 여럿이다. 장비 도움 없이 등반하는 프리 클라이밍은 1980년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전에는 장비에 몸을 실어 오르는 인공등반이 성행했다. 프리 클라이밍은 도구 없이 큰 바위를 오르는 볼더링부터 적용됐다. 김용기씨는 "하드프리, 크랙 등반 등도 목표를 설정하고 트레이닝을 한다면 프로젝트 등반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김혜정(36·교하클라이밍)씨는 요가 강사다. 그에게는 ‘제3의 손’이 있다. 몸이 유연해 손이 가야 할 높은 지점에 훌쩍 발을 올려 손을 대신한다는 것. 그는 볼더링을 프로젝트로 삼는다. 스트레스는 없을까. 그는 “프로젝트라고 해서 스트레스 받으면 큰일"이라며 "암벽 등반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행위인데, 최선을 다하되 안 되면 거기서 마음 추스르는 법도 터득하고 고행을 즐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혜정씨가 경기도 용인 조비산 '마이웨이(5.13c)'에서 등반하고 있다. [사진 김혜정]](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103/06/bc5ce8c2-0728-4562-af38-80a96bd9f6e4.jpg)
김혜정씨가 경기도 용인 조비산 '마이웨이(5.13c)'에서 등반하고 있다. [사진 김혜정]
한국리서치의 2019년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등산·트레킹 인구는 2392만 명. 암벽 등반(리지 등반 포함) 인구는 등산 인구의 6%인 150만 명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등반 전문가들은 2021년 현재 150만 명은 넘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용기씨는 “최근 2~3년 새 실내암장에서 운동하던 사람들, 특히 2030들이 자연 암장으로 발을 넓히면서 급격하게 등반 인구가 늘었다”고 말했다. 김종오씨도 “용인 조비산만 해도 2년 전에는 한가했는데, 지난해 가을부터 2030이 확 늘면서 붐비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의 유명 등반가 더그 스콧은 "배부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번 주말, 또 어떤 프로젝트 클라이밍이 성공할까.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거친 바위에 쓸려 상처투성이가 된 한 클라이머의손. 김홍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