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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전쟁 때 안아본 사람은 살아남았다는 북촌 향나무

기자
조남대 사진 조남대

[더,오래] 조남대의 은퇴일기(10)

날씨가 다소 쌀쌀하지만, 하늘은 맑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온 서울의 아름다운 마을인 북촌으로 향했다. 한두 번 다녀온 곳이지만 이 계절엔 또 어떤 모습으로 나를 반길지 궁금한 마음에 발걸음이 가볍다.
 
전철을 타고 안국역에 내려 윤보선길, 북촌로, 계동길을 다니며 북촌마을을 둘러보았다. 북촌은 자연이 수려하고 궁궐과 가까워 조선 시대 고관대작과 사대부들이 고급 살림집으로 한옥을 지으면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골목길 양쪽에는 카페와 공예품을 파는 공방과 옷이나 먹거리 가게들이 관광객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한때는 예술가들이 작은 갤러리와 공방을 열면서 고풍스러운 정취에 이끌려 골목마다 방문객이 가득했다. 지금은 코로나 19 여파와 쌀쌀한 날씨로 거리는 한산하고 몇몇 연인의 모습만 간간이 보일 뿐이다.
 
아이스크림과 붕어빵이란 이색 메뉴를 내건 가게 앞에 젊은이들이 줄을 서 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이라 호기심이 생기는 데다 고소한 향기가 발길을 당긴다. 날씨가 쌀쌀하여 다음에 맛보기로 하고 팥이 들어간 뜨거운 아기 붕어빵으로 대신했다. 언제 먹어도 맛있다. 가게 주인은 관광객 80% 이상이 외국인이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발길이 끊겨 일요일인데도 한산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한다.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리다.
 
굳게 닫혀 있는 윤보선 고택 전경. [사진 조남대]

굳게 닫혀 있는 윤보선 고택 전경. [사진 조남대]

 
윤보선 고택이나 김성수 옛집과 같은 역사 인물이 살던 가옥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안을 들여다볼 수가 없으니 더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높고 긴 담장과 육중한 대문이 당당한 위풍을 뽐내고 있으나 왠지 거리감이 느껴진다. 다만 키 큰 나무와 기와지붕만 조금 보일 뿐이다. 한 세대를 앞선 역사의 현장이라 그런지 들어가 보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크게 남는다.
 
어떤 골목 가게는 주인의 전신사진을 바깥에 걸어 놓은 곳도 있고, 길가 떡방아 간 벽에는 20년 동안 한 곳에서 영업을 지속해 온 사연이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소박하면서도 신선한 발상으로 보여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게 된다. 외국 여행 갔을 때 화려한 번화가 보다는 뒷골목 서민의 소박한 삶이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았다. 북촌 마을도 옛 그대로의 모습으로 세월의 무게를 느낄 수 있어 더 정감이 간다.
 
북촌 마을 골목 풍경.

북촌 마을 골목 풍경.

 
한참을 걷다 보니 카메라를 든 손이 시리다. 아내도 배가 출출하다며 식당으로 들어가자고 팔을 당긴다.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올라가기 전 골목 입구에 돈가스 가게의 앙증맞은 간판이 걸려있는 아담한 음식점이 우리에게 손짓한다. 주변과 잘 어울리게 가게 이름을 붙여놓은 데다 앞 유리창에 ‘최상의 재료만을 고집합니다’라는 글이 믿음을 준다. 국내산 고기와 식자재를 사용하고 김치는 중국산보다 4배나 비싸다는 글에 솔깃했다.
 
우리가 들어가자 손님이 없어 핸드폰을 만지던 주방장과 종업원이 얼른 일어나 인사를 한다. 탁자 10여 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중년의 한 부부만 식사하고 있다. 돈가스가 맛있을 뿐 아니라 김치가 갓 담은 김장처럼 아삭아삭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맛있다며 조금 더 달라고 하자 반가운 목소리로 “맛 좋은 김치를 매일 배달해 온다”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한 참 붐빌 시각인데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겨우 네 쌍의 손님만이 다녀갔다. 이렇게 해서 수지가 맞을지 걱정스럽다. 코로나로 인한 역풍이 멎을 때까지 잘 버텨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25년 경력의 카페 주인과 '카페 이드라' 내부 모습.

25년 경력의 카페 주인과 '카페 이드라' 내부 모습.

 
안국역 1번 출구에서 윤보선길로 접어들면 오른쪽에 아담한 정원에 큰 향나무가 있는 예쁜 카페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쌀쌀한 날씨에 한참을 돌아다녔더니 춥고 피곤하여 올라갈 때 봐두었던 카페에 들렀다. 야외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면 운치가 있어 더없이 좋으련만 날씨가 추워 안으로 들어갔다. 2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아늑한 분위기다. 한 테이블에만 여자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 조용하다. 커피도 에티오피아, 코스타리카, 과테말라 등 산지 별로 다양하게 있어 취향에 맞춰 선택할 수가 있다.
 
카페 주인은 25년 경력의 나이가 지긋한 핸드드립 전문의 바리스타다. 커피에 대한 논문까지 찾아가며 공부를 하다 카페를 연 지 8년 정도 된다고 한다. 커피 전문가로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산지별 맛을 알 수가 없어 제일 앞에 적혀 있는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주문했다. 쓴맛이 없으면서 입속에 부드럽게 스며드는 감촉은 이제까지 마셨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처음 경험한 맛이었다. ‘이렇게 내 입맛에 딱 맞는 커피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페 이드라' 입구에 있는 향나무.

'카페 이드라' 입구에 있는 향나무.

 
정원에 있는 향나무는 너무 오래되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 초기에 심어져 수령이 800~1000년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그동안 많은 전쟁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이 나무를 한 번씩 안아주고 간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아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나도 한번 안아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깜빡 잊고 온 것이 못내 아쉽다. 해가 뉘엿뉘엿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또 들러 다른 산지의 커피도 맛보아야겠다.
 
북촌 나들이는 옛 선조의 삶의 현장을 돌아보고 어릴 적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조용한 카페에서 몸을 녹이며 맛있는 커피를 맛볼 수 있는 행운도 있었다. 대문이 굳게 닫혀있는 윤보선과 김성수 옛집도 관광객에게 개방해 둘러 볼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북촌마을은 전통미 넘치는 곳이라 외국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인데 요즈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매우 아쉬웠다. 하루빨리 이전의 소소한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행정위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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