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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또각 그녀들이 사라졌다… '이화의 남자' 47년만의 위기

경기도 신분당선 판교역에서 판교테크노밸리를 향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처럼 대부분 캐주얼 차림이 많다. [중앙포토]

경기도 신분당선 판교역에서 판교테크노밸리를 향해 직장인들이 출근하고 있다. 대학 캠퍼스처럼 대부분 캐주얼 차림이 많다. [중앙포토]

지난 2일 서울 신촌의 이화여자대학교. 교내 ‘헬렌관’ 건물 1층에는 졸업생들 사이에서 ‘이화의 남자’로 불리는 허완회(63)씨가 30년 넘게 운영하는 구두수선점이 있다. 허 씨는 1970년 전북 남원에서 상경해 이대 정문 앞 ‘전통구두방’에서 기술을 배워 74년 ‘이화사’라는 구두수선점을 차렸는데, 워낙 기술이 좋아 90년 학생회의 요청에 따라 수선집을 캠퍼스 안으로 옮겼다.

“1년 내내 운동화만 신네요…”

자리는 그대로지만 사정은 크게 달라졌다. 10년 전만 해도 손님이 하루 200여명에 달했지만 지금은 2~3명, 심지어 한 명도 없는 날도 있다. 허 씨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다. 사람들이 구두를 신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이대생은 또각또각 구두를 신는 멋쟁이들이었는데, 요즘은 삼선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학생도 있어요. 대학생들도 중·고등학생처럼 운동화만 신는 게 영 낯서네요.”

활동성 좋고 편한 새 패션 트렌드
서울 구둣방 4년새 177곳 사라져
기업 복장 자율화에 코로나 재택
“실용성 우선한 옷차림 이어질 것”


 
이화여대에서 30년 넘게 구두수선점을 운영 중인 허완회 씨. 재학생 손님은 크게 줄었지만 졸업생들은 아직도 구두를 맡겨온다. 허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졸업생 고객의 연락처들. 이소아 기자

이화여대에서 30년 넘게 구두수선점을 운영 중인 허완회 씨. 재학생 손님은 크게 줄었지만 졸업생들은 아직도 구두를 맡겨온다. 허 씨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졸업생 고객의 연락처들. 이소아 기자

재학생들이 떠난 자리를 메우는 건 졸업생들이다. 가게 한쪽엔 지방은 물론 해외에서 구두 수선을 맡긴 졸업생들의 택배 전표가 걸려있었다. 허 씨의 휴대전화에도 ‘졸업마포’ ‘졸업마산’ ‘졸업럭키(럭키아파트)’등 오랜 단골들의 연락처가 빼곡하다. 허 씨는 “아직도 찾아주는 졸업생들을 생각하면 계속 일을 하고 싶지만, 적자가 계속되면 무한정 계속할 수도 없어 가게 문을 닫을지 고민 중”이라고 착잡해 했다.  

시내·강남서도 사라지는 구둣방 

허 씨의 고민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4일 서울시 보행정책과에 따르면 서울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두수선대는 2016년 1117개에서 지난해 940개로 줄었다. 기업들이 밀집해 직장인 수요가 높은 지역조차 중구는 133개에서 111개, 강남구는 105개에서 92개로 감소했다. 실제 강남구에서 대기업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15년 이상 구두를 닦아 온 A씨는 “코로나 이전에도 (벌이가 가장 좋았던) 10년 전에 비하면 30% 이상 일감이 줄었고 코로나 이후엔 재택근무 등의 이유로 상황이 더욱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점점 줄어드는 서울지역 구두수선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점점 줄어드는 서울지역 구두수선대.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여기엔 기업들의 복장 자율 문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복장 지침이 엄격했던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이 남성 반바지를 허용할 정도로 사실상 복장 제한이 사라졌다. 삼성전자 B부장은 “임원들도 중요한 행사나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한 노타이에 재킷 정도의 비즈니스 캐주얼을 입는다”며 “옷이 편해지면서 신발도 단정한 짙은 색 운동화나 로퍼 등을 신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장+구두’는 진귀한 풍경

SK그룹 서린동 사옥에 상주하던 구두 수선점도 최근 떠났다. 정장 대신 편한 옷에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신는 사람들이 늘어난 데다, 직원들이 그때그때 원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공유 오피스(좌석제)’가 도입되면서 지정 좌석에 구두를 두고 가면 수거한 뒤 다시 놓아두는 과거의 서비스가 적합하지 않게 됐다.  
 
네이버·카카오 등 온라인 기반의 정보기술(IT) 업계에선 정장에 구두 차림이 오히려 ‘진귀한 풍경’이다. IT업계에 종사하는 40대 김모 씨는 “직원 1000명 중 대부분이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신는 것 같다”며 “정장에 구두를 신은 사람을 보면 ‘오늘 정부기관 들어가냐?’ ‘왜 그렇게 힘을 주고 왔어?’라는 반응이 많다”고 전했다. 

하이힐 대신 운동화, 트렌드 중심부로 

구찌

구찌

한 때 하이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된 여대생들이 즐겨 신는 패션 아이템이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멋’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성신여대 김지연 씨는 “예전엔 미니스커트나 원피스 등 ‘예쁘고 불편한’ 옷이 유행이었다면 지금은 활동성이 좋고 편안한 롱스커트, 통이 넓은 바지 등이 인기”라며 “신발도 여기에 맞춰 운동화나 스니커즈를 신게 된다”고 말했다. 
취업 준비생인 황모 씨는 “숨 가쁘기만 한 사회에서 마음도 너덜너덜한데 발까지 힘들어야겠나”며 운동화 예찬론을 펼치기도 했다.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롯데쇼핑]

스니커즈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사진 롯데쇼핑]

운동화와 스니커즈는 그 자체로도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고 있다. 구찌·루이비통·발렌시아가 등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에서도 스니커즈를 대표 상품으로 밀고 있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서 ‘스니커즈 열풍’이 불면서 유명 연예인이나 디자이너, 스포츠 스타가 신거나 협업한 스니커즈는 정가의 수십 배에 달하는 수천만 원에 거래되기도 한다. ‘스니커 테크(스니커즈+재테크)’ 붐에 중고거래 플랫폼인 번개장터에서 운동화·스니커즈 거래액은 2018년 410억원에서 지난해 827억원으로 2년 만에 두 배가 됐다.  
번개장터 운동화·스니커즈 거래?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번개장터 운동화·스니커즈 거래?추이.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최윤정 목포대 패션의류학과 교수는 “TPO(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에 대한 인식이 ‘나에게 편하고 실용적이면 되고 남의 시선을 크게 의식하지 않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엔 정장에 운동화를 신거나 정장에 백팩을 매는 것이 참신하거나 파격이었다면, 지금은 보편적 오피스룩으로 자리잡았다"면서 실용주의 착장 트렌드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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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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