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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일은 왜 광주와 시편에 꽂혔나…“기억하소서 이 비극을”

지난달 23일 정규 3집 ‘시편’을 발표한 작곡가 정재일. [사진 유니버설뮤직]

지난달 23일 정규 3집 ‘시편’을 발표한 작곡가 정재일. [사진 유니버설뮤직]

“어떤 진실들은 스스로 발견할 때만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단다.”
2012년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한 연극 ‘그을린 사랑’의 마지막 대사는 오랫동안 작곡가 정재일(39)의 마음을 붙들었다. 음악감독으로 참여하면서 자신과 그 주위를 둘러싼 것들을 돌아보면서 되새기게 된 “대사이자 태도, 감정”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11년 만에 정규 3집 ‘시편’을 들고 돌아온 그는 서면 인터뷰에서 “아마 그 지점이 이 음악들을 앨범으로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다”고 밝혔다. 

11년 만에 정규 3집 ‘시편’으로 돌아와
5·18 민주화운동 헌정 영상에서 출발
현악부터 구음까지 다양한 표현 돋보여
“100분 달하는 길이, 또다른 생명력 가져”

 
‘시편’도 무대에서 시작된 앨범이다. 지난해 5ㆍ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서 미디어 아티스트 장민승과 함께 25분짜리 헌정 영상 ‘내 정은 청산이오’를 만든 이들은 11월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100분으로 확장한 후속작 ‘둥글고 둥글게’를 선보였다. 5ㆍ18 민주화운동부터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 당시 한국을 담은 사진과 영상, 문서를 아카이빙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장 작가는 “간곡하면서도 탄원하는 것 같기도 한” 시편을 떠올렸다.  
 
“장민승 작가의 이미지는 이미지대로, 제 음악은 음악대로 서로 따로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저희의 작업 방식이었어요. 작업의 시작과 끝에는 클라이언트가 있었고 중심이 되는 테마가 있었기에 이 작업에 임하는 태도 역시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죠. 하지만 장 작가와 작업할 때는 아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자유가 주어지기 때문에 더 사적이고 내밀한 감정이 들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보인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지난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보인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80년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80년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이번 앨범을 OST가 아닌 정규로 만들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100분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여서 아주 많은 재료와 편린들을 곳간에 쌓아놓을 수 있었고 작품에 쓰이지 못한 것들을 엮으면 또 다른 생명력을 가진 작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그는 앞서 발표한 1집 ‘눈물꽃’(2003)과 2집 ‘Jung Jae Il’(2010)이 “싱어송라이터의 면모가 아주 조금 엿보였다”라면 “이번 앨범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싱어송라이터의 꿈은 버린 지 오래라 작곡가의 면모가 더 보일 것”이란 얘기다.  
 
하여 이번 앨범을 듣는 것은 적잖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합창 아카펠라와 구음, 일렉트로닉 음향, 현악 앙상블로 구성된 21곡이 웅장하게 펼쳐지면서 새로운 체험을 선사한다. 구약성서 시편에 나오는 구절을 인용한 라틴어 합창이 이어지면서 무언가를 향한 간구와 슬픔을 이기지 못해 탄식이 뒤섞여 온몸을 휘감는다. 특히 시편 89장 48절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이라는 구절이 와 닿았다고.  
 
               정재일은 “어릴 적엔 음악을 직업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운이 좋게도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었을 뿐”이라며 “지금은 음악이 저를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좋아하고 아니고를 떠나 너무나도 소중하고 절실한 행위”라고 말했다. [사진 유니버설뮤직]

정재일은 “어릴 적엔 음악을 직업으로 하고 싶진 않았다. 운이 좋게도 돈을 받을 수 있었고 계속 그 길을 따라 걸었을 뿐”이라며 “지금은 음악이 저를 먹고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좋아하고 아니고를 떠나 너무나도 소중하고 절실한 행위”라고 말했다. [사진 유니버설뮤직]

그는 “너무나도 큰 비극은 감히 예술의 이름으로 건드릴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매우 조심해야 한다. 다만 잊지 않고 기억하는 행위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끊임없이 돌고 도는 역사의 거대한 쳇바퀴 속에서 무기력하게 얹혀진 개인의 삶,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의 외침, 그러나 그 안에서 끝끝내 기억해 내고 찾아내야만 하는 진실의 순간들을 마음속에 되새기며 만든 음악이에요. 한 번 정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작품으로 들어주십사 하는 바람이 있죠.”
 
1999년 긱스로 데뷔한 정재일은 박효신·김동률·패닉의 작곡가로 이름을 알렸다. 영화 ‘기생충’과 ‘옥자’를 비롯해 연극ㆍ뮤지컬ㆍ국악ㆍ발레 등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는 만능 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협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누구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는 장면과 감독의 의도, 무용은 안무와 무용수의 의도가 분명하죠. 그 지점에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장르마다 섬세한 다른 어법이 있기는 하지만 큰 줄기는 같거든요. 스펙트럼이 넓지 않아 제가 잘해낼 수 있을까, 과연 결이 맞을까 고민할 뿐 좋은 기회가 있으면 언제든 새로운 작업에 도전해 보고 싶습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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