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오끼-충북 제천
충북 제천으로 미식 여행을 간다고 하면, 의아해할 사람이 많을 게다. 맞다. 제천은 ‘맛’으로 기억되는 고장이 아니다. 바다를 접한 것도 아니고, 걸출한 특산물도 없으니 음식에 대한 특별한 인상이 남아 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나 제천엔 의외의 보석 같은 맛집이 많다. 이유가 있다. 제천은 청풍호(충주호)의 60%를 품고 있고, 대부분이 산지다. 내륙의 바다인 동시에, 깊은 산골이다. 식재료가 풍부하면 밥상은 자연히 건강하고 화려하게 마련이다. 제천의 산천초목을 맛보고 왔다. 이번 여행은 의외의 연속이었다.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면 8분 만에 비봉산 정상에 닿는다. 청풍호의 너른 풍경을 내려다보기 좋은 장소다.
밥이 보약
제천 스타일 밥상이 궁금하다면 ‘약채락(藥菜樂)’을 써 붙인 식당을 찾으면 된다. 제천시가 인증하는 약초 음식점이다. ‘약이 되는 채소를 먹으면 즐겁다’는 의미이다. 현재 17개 식당이 ‘약채락’ 로고를 달고 있다.

‘열두달밥상’ 김영미 사장은 갖은 약재를 달인 물로 밥을 짓는다. 약초밥상에는 다래순‧당귀‧방풍‧도토리묵 등 22가지 찬이 올라간다.
이름난 메뉴는 약초밥상(1만3000원). 이 집에선 말 그대로 밥이 보약이다. 인삼‧숙지황‧황기 등 약재 여덟 개를 달인 일명 ‘팔물탕’으로 밥을 짓는다. 당귀‧씀바귀‧다래순‧돌미나리‧풋마늘‧냉이‧머윗대‧산뽕잎‧방풍 등 각종 나물로 꾸리는 상차림은 정갈하다. 마늘과 파는 일절 쓰지 않는단다. 맛과 향이 자극적이어서다. 김영미(60) 사장은 “약초와 산나물 고유의 향을 살린 밥상”이라면서 “서울 사람에겐 심심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밥과 나물을 번갈아 가며 천천히 씹었다. 애써 콧방울을 벌름거리지 않아도, 산야의 풍미가 올라왔다.
호수의 매운맛

망월산(336) 자락 청풍문화재단지에서 굽어본 청풍호의 풍경.
![청풍호에도 장어가 산다. 마을에서 매년 뱀장어 치어를 방류하고 있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나면 그물 가득 장어가 딸려 올라온다. ]사진 금수산어부네자연밥상]](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3/04/6e054fcb-3501-43e6-a7ca-9603e0f6b402.jpg)
청풍호에도 장어가 산다. 마을에서 매년 뱀장어 치어를 방류하고 있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나면 그물 가득 장어가 딸려 올라온다. ]사진 금수산어부네자연밥상]
청풍면의 매운탕 전문 ‘교리가든’은 올해로 29년이 됐다. 김재호(63) 사장이 직접 고기를 잡고, 매운탕을 끓인다. 쏘가리는 4월 중순부터 나오는 터라, 잡고기 매운탕(6만원)을 주문했다. 메기 한 마리와 빠가사리(동자개)‧꺽지‧모래무지 등 잡고기를 한 데 때려 넣은 다음, 수제비와 미나리를 띄워 끓여 냈다. 밖은 아직 바람이 찬데, 칼칼한 매운탕을 연신 떠 먹으니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혔다.

29년 내력 ‘교리가든’의 잡고기 매운탕.
두부가 살아 있다

두학동 ‘시골순두부’. 매일 새벽 재래식으로 손두부를 만든다.
33년 내력의 ‘시골순두부’가 가장 널리 알려진 집이다. 외관은 그저 초라하다. 시골집 마당에 비닐하우스를 올리고 옛 연탄 창고까지 방으로 개조해 손님을 맞는데, 주말이면 그마저도 앉을 자리가 없단다. 거대한 가마솥, 두부를 짤 때 쓰는 면 보자기와 나무 방망이 등 세간 하나하나에서 세월의 내공이 팍팍 느껴진다.

두부찌개와 순두부와 산초구이 등 '시골순두부'의 갖가지 두부 요리.
먹고 걷고 듣고

내토시장 ‘외갓집 빨간오뎅’. 어묵에 진한 고추장을 발라 전골식으로 자작하게 끓여낸다.
코스는 A와 B로 나뉜다. A코스엔 내토시장 명물인 일명 ‘빨간오뎅’이 포함돼 있다. 생소하신가. 육수에 삶아낸 어묵이 아니라, 닭꼬치처럼 빨간 고추장 양념을 직접 발라 전골식으로 끓여 먹는 어묵이다. 국물은 없지만, 맵고 자극적인 중독성이 대단하다. 내토시장 인근에만 ‘빨간오뎅’ 파는 어묵집이 열 곳이 넘는다.

생당귀 잎으로 맛을 낸 승검초단자.
향긋한 커피, 먹기 아까운 케이크

의림지 인근 카페 ‘꼬네’. 박현철(64)‧박주성(29) 부자가 함께 원두를 볶고 커피를 내린다.
커피 얘기를 하자면, 의림지 솔밭공원 옆 ‘꼬네’가 기억에 남는다. 2대가 오순도순 꾸려 나가는 로스터리 카페다. 가게 한편에서 아버지는 커피콩을 볶고, 아들은 커피를 내리고, 어머니가 빵을 굽는다. 부자가 나란히 커피를 내리는 풍경은 이곳에서 처음 봤다. 가족의 수다를 들으며 드립커피(5000원)와 단팥빵(2000원)을 맛봤다.

케이크 맛집으로 통하는 하소동 ‘순수해’.
제천=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