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연예인 학폭 미투 릴레이의 교훈
사소한 폭력에도 민감성 키우고
피해자 중심 대응체계 갖춰야
제기된 의혹들은 경중이 다르고 진위를 따져야지만, 폭력적인 학교문화가 실재한다는 게 핵심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9년 학교폭력 신고로 검거된 수는 1만3584명으로 전년보다 217명, 2015년보다 1089명 늘었다. 올 초 교육부 실태조사에서도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응답이 2017년 0.9%(3만7000명)에서 2019년 1.6%(6만 명)로 두 배 증가했다. 폭력을 방조하는 학생·교사·학교당국의 ‘침묵의 카르텔’도 여전하다. 학교폭력을 목격한 학생의 29.5%가 방관했다. 교사, 학교전담경찰관 등 주변에 알리거나 신고했다는 답은 14.2%였다. 지금 인터넷에 공분이 들끓지만, 막상 학폭이 터졌을 때 적극적이고 민감하게 대응할 것이냐는 전혀 다른 문제란 얘기다. 씁쓸하지만 “트위터의 많은 이가 올바른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옳은 일처럼 행동한다.”(『트릭 미러』)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유명인 대상 폭로는 점차 일반인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학교폭력 관련 단체인 푸른나무재단에 따르면 “최근 10~20년 전 학폭에 대한 성인들의 상담 건수가 크게 늘어 현재 학생들의 학폭 상담 건수를 웃돈다.” 피해자에게는 평생을 가는 상처지만, 가해자는 기억조차 잘 못하는 게 학폭이다. 학폭 소재 웹툰 ‘인생존망’의 주인공은 졸업 후 만난 가해자로부터 “기억은 잘 안 나지만 미안하다”며 지폐 몇 장을 건네받는다. 주인공은 “사과마저 당했다”며 참담해 한다.
연초 아동 학대로 공분이 일었는데, 이번에는 학폭이다. 하긴 가정이 폭력적인데, 학교가 폭력적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 자식이니 내 맘대로’가 아동학대를 용인했듯 ‘철 없는 시절의 치기 어린 장난’ ‘애들은 싸우면서 자란다’가 학폭을 키운다. 소소한 폭력에 관대한 것이 큰 폭력으로 이어지고, 가정의 폭력이 학교로, 사회로 이어지는 폭력의 악순환이다. 학폭 전문 노윤호 변호사는 “학교와 공적 기관이 피해자 중심으로 적극 개입하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학교 내부에서 ‘중립성’이라는 이름으로 피해 학생을 방치하고, 오히려 가해 학생을 보호해 왔다”(『학교폭력의 모든 것』)고 지적했다.
때마침 청와대 게시판에는 생활기록부 속 학폭 이력 삭제 권한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달라는 국민청원이 올라와 있다. 최대 2년간 유지되는 생기부 학폭 이력(퇴학 제외)을 가해자의 ‘앞날’을 위해 ‘반성’만 하면 피해자 몰래 지워주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