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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감독 "의대 가려 들은 영화 수업, 내 인생 바꿨다" [영상]

“그렇게도 떠나고 싶었던 고향으로 돌아온 감독.”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영화 ‘미나리’ 감독 리 아이작 정(한국 이름 정이삭) 인터뷰 기사에 단 제목이다. 여기에서 고향은 정 감독이 성장기를 보낸 미국 아칸소주(州)와, 그의 뿌리인 한국을 모두 의미한다. 28일 열린 골든글로브 영화상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정 감독은 1978년 콜로라도 덴버에서 한국계 미국인 2세로 태어났다.  

 
한국계 미국인의 이야기이지만 미국 자본으로 미국인이 만든 영화가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데 대해 정 감독 본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의 마음은 복잡하다. 그는 NYT에 “‘최우수 작품상 후보군에 내 자리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기는 어렵다”고만 에둘러 심경을 전했다. NYT는 “이번 (외국어영화상) 논란은 그를 어려운 입장에 놓이게 했다”고 전했다.
 
정이삭 감독이 28일(현지시간)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순간, 딸을 껴안고 있다. AP=연합뉴스

정이삭 감독이 28일(현지시간) 영화 '미나리'가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순간, 딸을 껴안고 있다. AP=연합뉴스

 
정 감독이 영화감독이 된 건 우연이다. 그는 작가 지망생으로 예일대에 입학했지만 이내 꿈을 접었다고 한다. 그는 NYT에 “예일대에서 지방할당 쿼터를 채우기 위해 아칸소주 출신인 나를 겨우 입학시킨 게 아닌가 싶었다”며 “그 정도로 다른 학생들은 우수한데 내 실력은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영화를 즐겨보는 타입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는 “기숙사 룸메이트가 ‘7인의 사무라이’라는 영화를 보길래 ‘대체 왜 저런 영화를 좋아하지’라고 생각했다”고 NYT에 말했다. 
 
이내 그는 의대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었고, 인문학 필수 학점을 채우기 위해 영화수업에 등록했다. 매주 과제로 실험적 동영상을 찍으면서 그는 조금씩 영상 제작에 흥미를 느꼈고, 곧 ‘7인의 사무라이’ 감독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화양연화’ ‘중경삼림’의 왕가위 감독 작품에 빠져들었다. 그는 NYT에 “영화의 길에 들어선 건 내게 마치 인생의 개종과 같은 경험이었다”고 표현했다.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사진 판씨네마 제공.

영화 '미나리'의 한 장면. 사진 판씨네마 제공.

 
그는 의대 대신 유타대로 진학해 영화를 전공했다. 그는 “하루에 여러 편 영화를 계속 봤다”며 “마치 영화로 수련하는 수도승 같았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바로 두각을 드러내거나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그는 NYT에 “나는 만사에 꽃을 늦게 피우는 편”이라고 말했다. 대기만성형이라는 의미다. 졸업 후 첫 본격 장편 작품은 2007년, 심리치료사인 부인 발레리와 함께 아프리카 르완다를 방문해 찍었다. 
 
부인이 수년간 자원봉사를 해온 르완다는 1994년 종족 간 분쟁과 학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였다. 2008년 NYT 기사에 따르면 정 감독은 현지에서 아마추어 배우와 스태프와 함께 11일 만에 영화를 찍었다. 종족 간의 화해를 그린 작품으로, 제목 '무뉴랑가보'는 캐릭터의 이름이자 르완다의 전설적 전사(戰士)의 이름이다. 이 영화로 그는 칸 영화제 등에서 일약 스타로 떠오른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스티븐 윤 배우. 둘은 친척 관계다. AP=연합뉴스

지난해 선댄스 영화제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영화 '미나리'의 정이삭 감독과 스티븐 윤 배우. 둘은 친척 관계다. AP=연합뉴스

 
그러나 이후 그는 다른 감독에 비하면 비교적 조용한 커리어를 쌓았다고 NYT는 표현했다. 그는 감독보다는 영화를 가르치는 교수로 안정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모교인 유타대의 한국 인천 캠퍼스에서 교편을 잡았다. 자신의 뿌리인 한국을 알고 싶은 마음도 컸을 터다. 그러다 30대가 끝나가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정 감독은 NYT에 “마흔이 되어가면서 인생에서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좀 더 실용적인 걸 해보자고 생각했다”며 “그렇게 ‘미나리’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인천에서의 경험은 ‘미나리’에 실질적으로도 도움이 됐다. 배우 윤여정 씨도 이때 만나게 됐다고 한다. 윤여정 배우는 NYT에 “정 감독은 꼭 내 아들 같았다”며 “모든 영화의 촬영 첫날은 엉망이기 마련인데, 정 감독은 굉장히 침착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 [사진 판씨네마]

 
영화 ‘미나리’는 정 감독의 자전적 경험의 결정체다. 덴버에서 태어난 뒤 2살 때 아칸소주 링컨으로 이사한 그의 동네는 대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NYT에 “워낙 한적해서 신호등도 없을 정도였고 햄버거 가게 몇 군데가 겨우 있었을 정도”였다며 “놀러 가려면 30마일(약 48㎞)를 운전해서 인근 도시까지 가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 백인도 아닌 한국계로 성장하면서 그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길렀다.  
 
NYT는 ‘미나리’를 두고 “잘 다뤄지지 않는 주제인 한국계 미국인 가족의 이야기를 잘 조명한다”고 평가했다. 정 감독은 NYT에 “아칸소주의 우리 (한인) 교회엔 교인이 많지도 않았는데도 교인들끼리 파가 나뉘어 있었다”고도 말했다. NYT는 이 영화가 비단 한국계뿐 아니라 미국의 주요 구성원인 이민자들의 정서도 잘 파고든다고 적었다. NYT는 “많은 이민자들은 자신이 떠나온 시절의 고국의 이미지에 천착한다”며 “이 영화에서도 한인 1세대 부모들은 1970년대의 한국 이미지를 기억한다”고 전했다.

 
그래서일까. 정 감독은 한국의 관객 반응도 궁금하다고 NYT에 말했다. 그는 “내 부모님이 영화를 보시고는 ‘얘 이 영화의 가족은 미국에까지 가서 그렇게 고생을 하다니 굉장히 바보 같다’고 말할 것 같지 않으냐고 말씀하셨다”며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엔 그런 고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영화 ‘미나리’는 한국에서 3일 개봉한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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