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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유엔 퇴짜 맞은 감축목표…욕속부달, 급할수록 차근차근 (하)

지난 연말,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계획을 내놨습니다. 전국 기초자치단체의 기후위기 비상선언과 국회의 기후위기 대응 결의안에 이어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 이후 나온 계획입니다. 그런 만큼 계획의 이름도 길고, 그 내용이 담긴 문서의 표지는 화려했습니다. 이름하여 '지속가능한 녹색사회 실현을 위한 대한민국 2050 탄소중립 전략'입니다. 이는 정부 스스로의 약속이자 국민들에 대한 약속, 그리고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가입한 나라로서 국제사회와의 약속이기도 하죠.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67)

 




당시 [박상욱의 기후 1.5] 연재를 통해 "표지 디자인과 '탄소중립'이라는 표현 외엔 새로운 것은 없었다"고 분석해드린바 있습니다. 목표 수치가 기존과 같은 수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역시나, 유엔으로부터 이 계획은 퇴짜를 맞았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이 강화된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다시 제출하라고 권고한 것입니다.



#재탕했다가_딱_걸린_나라들

유엔기후변화협약은 지난주, 75개국이 제출한 감축목표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량은 2010년 대비 1% 감축에 그쳤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한국과 일본, 호주 등 일부 나라들은 2015년에 제출했던 목표를 그대로 제출했습니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최근 '탄소중립 선언'을 했죠. 그런데 국제사회에 제출한 실질적인 '약속'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5년 전 제출한 목표를 그대로 '재탕'한 겁니다. 이에 페트리샤 에스피노자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지금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로는 파리협정 이행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며 "이를 바탕으로 감축목표를 상향해 다시 제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자료: UNFCCC)(자료: UNFCCC)


당장 2015년 파리협정 당시 목표였던 '지구 기온 상승폭 2℃ 이내로 제한'이 2018년 인천 송도에서 열린 IPCC(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 총회에서 '1.5℃ 이내로 제한'으로 강화된 바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25% 감축(2℃ 달성 목표)이 아닌 45% 이상 감축(1.5℃ 달성 목표)해야 한다고도 머리를 맞댔죠. 이러한 내용은 그저 일부가 모여 약속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국을 대표하는 과학자, 정부 인사가 모여 한 문장 한 문장 심사숙고 끝에 '만장일치'로 결정한 내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2015년 목표를 그대로 다시 제출한 것이고요.



곳곳에선 비판과 우려가 쏟아졌습니다.



"2010년 이후로 기후위기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이 상당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굉장히 충격적이다. 각국 지도자들이 쏟아내는 미사여구만 보면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잘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한국, 호주, 뉴질랜드 등은 어떠한 행동도 보여주지 않았다." 글로벌 싱크탱크인 PSA(Power Shift Africa) 모하메드 아도우 대표의 말입니다.



제니퍼 모건 그린피스 국제 사무총장은 "이번 보고서는 우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준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파리협정 이행에 실패했고 기후재앙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기후정책 평가기구인 클라이밋 액션 트래커의 타스넴 이솝 사무총장은 "2050년 탄소중립 선언만으로는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없고, 취약계층에겐 생존과 정의를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프랑스 기후변화대사이자 COP21 특별대표인 로렌스 투비아나 유럽기후재단 대표는 "현저히 낮은 감축목표를 제출한 나라들은 UN이 권고한 바와 같이 감축목표를 다시 설정해 제 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COP26)까지 제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신중에_신중을_기해야

발등에 떨어진 불을 불로 인식하지 못 하는 것도 문제지만 의욕만 앞선 섣부른 움직임도 문제입니다. 지난주에 이어 서두르려 욕심을 내면 도리어 미치지 못 한다는 사자성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는 소제목으로 연재를 이어가는 이유죠.



지난주, 불필요한 오해만 촉발시켜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시키게 만들었던 해상풍력단지 사례를 설명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본래의 의미마저 퇴색시키게 만들 것으로 우려되는 것은 또 있습니다. 바로 월성 원전 관련 논란입니다. 감사원은 월성 원전 1호기의 조기폐쇄 과정에서 경제성 평가가 잘못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이어 검찰은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에 대해 수사에 나섰죠. 원전 가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축소했다는 의혹입니다. 이런 가운데 감사원은 정부의 탈원전 정책 수립 과정의 타당성에 대한 감사 결과도 발표할 예정입니다.



월성 원전 의혹의 사실 여부와 상관 없이 이번 논란은 에너지 전환에 있어 '아찔한 순간' 중 하나로 남을 것입니다. 탈원전에 관심조차 없던 이들에게도 에너지 전환에 부정적인 인식을 심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다른 나라에선 이제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 비용을 들이는 일이 아닌 절감하는 일이 된지 오래죠. 하지만 유독 국내에선 에너지 전환이 정치 쟁점화, 이데올로기화된 모습을 보입니다. 전환을 부정하는 쪽에선 재생에너지는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신기루'로, 탈원전은 '결코 이뤄져서는 안 되는 일'로 치부됩니다.



감사원이 경제성 외에 다른 부문의 평가에 대해선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았음에도 일부 언론과 정당, 관련 학계와 업계에선 기다렸다는 듯이 '그것 봐라. 탈원전 안 된다니까' 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마치 해상풍력 투자 협약식에서 설비용량과 발전용량 차이를 간과한 대통령의 말 한마디만 갖고서 '그것 봐라, 재생에너지 안 된다니까' 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의 모습인거죠.



지난주, 설비용량이 아닌 발전량으로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석탄을 넘어 전체 화석연료보다도 더 커진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를 소개해드린 바 있습니다.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신기루'가 아님이 확인된 거죠. 이는 단순히 환경의 측면에서 바라볼 일이 아닙니다.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시장 참여가 역대급으로 늘어난 요즘, 석탄 관련주나 원전 관련주와 재생에너지 관련주 가운데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묻는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석탄 또는 원전 관련주를 택할까요. 주식거래 애플리케이션에선 재생에너지, 배터리, 전기차 관련주를 사모으면서 포털 댓글에서만 석탄을 지키자, 원전을 지키자고 하는 것은 아니겠죠.



 
1990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 발전량 및 발전원별 비중 추이 (자료: IEA)1990년부터 2018년까지 전 세계 발전량 및 발전원별 비중 추이 (자료: IEA)




IEA(국제에너지기구)에 따르면, 최근 수년새 선진국들에서만 14기의 원전이 영구 폐쇄됐습니다. 그 사이 신규 원전의 건설은 단 1건만 진행되고 있고요. 우리나라만 유별나게 혹은 합당한 이유 없이 이데올로기적인 판단에서 탈원전을 진행중인 것이 아닌 겁니다. 즉각적이고도 집단적인 폐쇄는 아니더라도 글로벌 차원에서의 원전은 최소한 페이드 아웃(Fade Out), 저물어가는 상황입니다. 원전 발전량의 추이 또한 상승세보다 보합세를 보이고 있고요.



사용후 핵연료나 폐기물의 처리, 수명을 다 한 원전의 해체 등에 대한 답은 여전히 먼 상태입니다. 또한 아무리 '만의 하나'라고 하지만 그 '하나'의 사고가 일으키는 피해가 너무 크다보니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각국 정부는 원전을 줄이면 줄였지 더는 늘리지 않는 추세죠. 이 때문에 한국 못지않게 원전 수출에 열심인 프랑스가 속한 EU도 '지속가능금융' 지원 대상에서 원전을 제외시켰고요.



이는 ①기후변화 완화, ②기후변화 적응, ③지속가능한 수자원 이용 및 보호, ④순환경제로의 전환, ⑤오염방지 및 통제, ⑥생물다양성 및 생태계 보호 및 복원 총 6가지가 환경목표와 ①6가지 환경목표 중 하나 이상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 ②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가 없을 것, ③탄탄한 과학 기반의 기술 선별조건에 부합하는 활동일 것, ④최소한의 사회 및 거버넌스 안전에 부합하는 활동일 것 총 4가지 요건 중 단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제외시킨다는 원칙 때문이었습니다. 원자력 발전은 총 10가지 가운데 요건 2번, 〈다른 환경목표에 '중대한 피해'가 없을 것〉을 충족시키지 못 한 겁니다.



여기에 한국만의 요소도 탈원전 혹은 최소한 원전의 안전한 페이드 아웃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데에 한 몫 합니다. 원전 옹호론자들이 주장하는 '안전성'을 국내 원전에선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설계도대로라면 두께가 167cm에 달해 여객기가 날아와 부딪혀도 안전한 원전 격납건물의 외벽이 우리나라에선 콘크리트를 제대로 붓지 않아 비어있습니다. 얼마나 비어있을까요. 157cm. 10cm가 덜 채워진 것이 아니라, 콘크리트 두께가 10cm밖에 안 되는 상황입니다. 콘크리트가 제대로 타설되지 않아 곳곳엔 구멍도 숭숭 뚫려있고요. 증기발생기의 바닥에선 손 망치가 나왔습니다. 마치 개복수술 후 수술용 집게를 두고 봉합한 것처럼 말이죠.



부실시공도 모자라 무자격자가 제어봉을 움직이고, 25시간 연속으로 근무하는 사람이 나오는가 하면, 근무교대를 하면서 교대 회의는 하지도 않아 열출력이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전남 영광에 위치한 한빛 원전 한 곳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열출력 사고는 1호기, 부실시공은 4호기에서 벌어졌죠. 인구 약 14만명의 장성군과는 불과 30km, 광주광역시와는 불과 40km 떨어진 곳입니다.



여기에 월성 원전 부지에선 삼중수소가 유출되기도 했죠. 부지 인근에 혹시나 모를 유출사고를 파악하기 위해 파둔 관측정의 우물에서 삼중수소가 확인된 것이죠. 관계 기관과 관련자들은 크게 두 가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① 관측정에서 발견된 것이지, 인근 지역에 유출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 ② 측정된 농도는 심각한 수준이 아니다 라는 주장입니다. 1번의 주장은 관측정 자체가 외부 유출을 확인하려고 원전 주변에 파놓은 것인데 '주변까진 유출됐어도 담장은 넘지 못 했을 것'이라는 궤변에 가깝습니다. 2번의 주장은 애당초 유출 자체가 없었어야 하는데 그 책임을 피하려는 비겁한 변명에 가깝고요.



우리나라에선 광주, 부산, 울산, 경주 등등 주요 대도시와 근접한 곳에 원전이 밀집되어있습니다. 물론, 인적이 드문 지역에 지어진 원전이라고 해서 사고가 나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만, 대도시와 인접해있다면 그만큼 안전과 관련한 것은 더욱 철저히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죠. 관련 학계나 기관에선 원전의 유지나 신규 건설을 주장하기에 앞서 이런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입니다.



에너지 전환의 궁극적인 목표인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반응이 있습니다. '온실가스 줄이려면 원전이 답이다.'라는 반응입니다. 이렇게 원전 옹호론자들이 원자력 발전을 중요하게 꼽는 이유 중 하나가 온실가스라니, 이들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반대할 이유는 없을 듯한데… 희한하게도 탈원전론자는 재생에너지 확대를 외치고, 친원전론자는 그저 수구(守舊)를 외칠 뿐입니다. 이산화탄소의 대기중 잔존 기간 200년 이상. 정부가 탄소와의 전쟁에 '이백년대계'를 준비할 때에 비상한 주의와 신중함을 겸비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부디 탄소중립이라는 그 누구도 아직 다다르지 못 한 목적지까지 한 발짝씩 걸음을 내딛을 때, 불필요한 오해나 역효과를 부르는 삐끗거림은 최소화하기를 기원합니다.



박상욱 기자 park.lepremier@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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