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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반장’ 김석동의 진단 “지금 쓸수 있는 정책은 규제완화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충정로 지평인문사회연구소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충정로 지평인문사회연구소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은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이던 지난해 겨울 ‘맛집’ 책을 펴냈다. “아무쪼록 이 책이 여러분의 속도 마음도 든든하게 해주길 바란다”면서 서울에 있는 165개 식당을 소개했다. 모두 수십 년 업력을 지니고 냉면·콩국수·김치찌개·순댓국 같은 한식 메뉴에 가격도 1만원 안팎인 곳들이다. 
30년 넘게 경제관료로 지낸 그가 전염병 위기 속에 『한 끼 식사의 행복』이란 평화로운 책을 낸 이유가 뭘까. 지난 23일 서울 서대문구 사무실에서 김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작심 발언
“통화·외환·재정정책 다 작동 안해
규제 풀어 기업 살아야 경제 살아
지식인들 미래 위해 목소리 낼 때”

 
평소 미식가인가.
미식가까진 아니고, 한 끼를 먹더라도 ‘때우는’게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싶다. 복잡한 코스요리보다 단품을 좋아한다. 미식은 좋은 재료와 정성, 이 두 가지면 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식당은 맛집이라도 봐도 된다. 책에 나온 식당들은 학생 때부터 50년 동안 다닌 곳이다. 사진도 모두 직접 찍었다.  
 
김 대표의 넘버 원 음식은 평양냉면이다. 함경남도 원산이 고향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적 자주 맛본 영향이다. 가게마다 추억도 많다. 서울 종로 해장국집 ‘청진옥’은 중학생 시절 서울에 눈이 펑펑 내리던 날, 경기고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부산에서 올라와 시험을 치르기 전 속을 채우고 간 식당이다.
종각역 근처 ‘열차집’에선 2013년 금융위원장직을 떠날 때 환송회를 했다. “국장급 간부 스무 명이 처음엔 비좁은 방에 붙어 앉아서 우거지상을 하더니만, 돼지기름에 부친 빈대떡을 한 입 먹어보고 표정이 확 화사해지더라”. 김 대표의 기억이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인생 맛집을 엮은 『한 끼 식사의 행복』. 2016년 판(왼쪽)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맘껏 사줘도 좋은 맛집’을 소개하기 위해 펴냈는데, 이를 2020년 11월 새롭게 보강했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인생 맛집을 엮은 『한 끼 식사의 행복』. 2016년 판(왼쪽)은 김영란법 시행 이후 공직에 있는 후배들에게 ‘맘껏 사줘도 좋은 맛집’을 소개하기 위해 펴냈는데, 이를 2020년 11월 새롭게 보강했다.

 
식당들이 요즘 참 어렵다.
그게 내가 이 책을 낸 큰 이유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외식에 인색한 나라다. 요즘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중국·일본·홍콩·싱가포르 등에 비해 오랜 세월 주부들이 집에서 밥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에 디지털 기반 산업이 발전할수록 식당 같은 자영업이 정말 중요한 산업이 된다.
 
디지털 산업 시대에 왜 자영업이 중요하나.
앞으론 IT나 거대 플랫폼 등 소수의 기업이 생산력과 이익을 많이 가질 수밖에 없다. 고용을 흡수하고 일으킬 곳이 자영업과 서비스업밖에 없다. 산업이 본질적으로 바뀌고 경제가 발전할수록 고용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질 거다. 소득 편차보다 일자리가 있고 없고가 굉장히 중요하다.
 
코로나 탓에 ‘집콕’이 대세인데.
다 숨어버리면 자영업자들은 뭐 먹고 사나. 방역 기준을 잘 지키면서 식당들도 좀 다니는 게 좋다. 책에 나온 곳뿐 아니라 동네 곳곳에 무수한 맛집들이 있다. 그런 곳을 찾아다니며 즐기는 새로운 생활 문화를 만드는 거다. 고용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실마리를 이런 곳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007년 8월13일 미국 서브프라임 모지지론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김석동 당시 재정경재부 제1차관(왼쪽에서 두번째)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금융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다. 김승현 기자

2007년 8월13일 미국 서브프라임 모지지론 우려가 확산됨에 따라 김석동 당시 재정경재부 제1차관(왼쪽에서 두번째)이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대응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금융정책협의회를 주재하고 있다. 김승현 기자

김 대표는 관료 시절 별명이 ‘대책반장’이었다. 지난 30여년간 금융실명제·외환위기·카드사태·저축은행 부도사태 등 굵직굵직한 현안을 진두지휘한 경제 전문가다. 하지만 공직에서 물러난 뒤엔 경제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피하고 음식이나 사진, 한국 고대사 연구 등 관심 분야에 매진해 왔다. 하지만 이날 그는 “이번엔 다르다. 진짜 어려울 것”이라며 목소리를 냈다.
 
경제가 심각하다고 보나.
1997년 외환위기 땐 한국은 위기였지만 세계는 호황이었다. 반대로 2008년 금융위기 때는 미국과 유럽 등 세계가 어려웠지만 한국 경제는 잘 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도 나쁘고 한국도 나쁘다. 80년대 이후 세계는 저금리를 유지하며 유동성으로 성장해왔다. 그 결과 가계·기업·정부가 다 빚더미다. 과부채(과잉 유동성)라는 화약에 미·중 무역전쟁, 탈 세계화, 유럽 리스크, 중국의 부실채권과 부동산 거품 같은 뇌관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걸 헤치고 나가야 한다.
 
어떻게 해야 하나.
경제위기에 정부가 쓸 수 있는 정책이 몇 개나 될 거 같나. 금리 조정하는 통화정책, 환율 조절하는 외환정책, 돈으로 지원하는 재정정책 딱 세 개다. 그런데 지금 금리는 0%고, 환율은 각국이 서로 머리에 방아쇠로 견주고 있는 형국이고, 재정은 다 쏟아부어 빚더미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 세 가지가 작동 안 할 때 쓰는 게 규제완화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충정로 지평인문사회연구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 23일 서울 중구 충정로 지평인문사회연구소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김상선 기자

 
김 대표가 강조하는 것 중에 ‘코리안 DNA’라는 게 있다. 고난과 역경이 있을 때 한민족이 개척정신·집단의지·승부사 기질을 발휘해 위기를 이겨내고야 만다는 주장이다. 그는 실제 몽골고원에서 중앙아시아, 유럽 대평원까지 10년간 50차례 5만㎞를 답사하며 『김석동의 한민족 DNA를 찾아서』라는 책을 펴냈다.  
 
규제완화가 어떻게 경제를 살릴까.
위기가 닥치면 죽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내는 한국인의 생존 본능은 엄청난 경쟁력인데, 이건 뭐든 할 수 있게 풀어놓을 때 나온다. 반세기 만에 아무것도 없다가 세계 7위 수출국이 된 게 한국이다. 똑같은 민족인데 북한 경제는 우리 국내총생산(GDP)의 2.4%에 불과하다. 규제가 있고 없고의 차이다.
 
규제이슈는 보수·진보 간 의견차가 크다.
한국경제가 이념을 따질 만큼 한가한 때가 아니다. 쓸 수 있는 정책이 규제완화밖에 없는 외통수 상황이다. 살길은 기업의 부활뿐이고 기업이 살게 하려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끼리 경쟁하면 규제해도 되지만 세계에서 외국기업과 경쟁하지 않나. 글로벌 10위 경제 규모의 국가가 규제로 살아남을 순 없다.  
 
계층격차 문제도 있지 않나.
저출산·고령화·과부채·계층격차 등 우리나라 문제가 많다. 그런데 이게 누구 잘못이냐고 따지면 안 된다. 남들이 100m를 달릴 속도로 1㎞를 달려왔으니 숨이 차서 부작용들이 나온 거다. 책임 지울 대상만 찾지 말고 해결책을 찾는 게 급선무다. 그게 규제완화다. 우리 기업들은 규제를 풀면 즉각 소생한다고 장담한다. 사회적 약자도 ‘교육’과 ‘사회안전망’, 이 두 가지 수단을 가지고 보호해야지 다른 것으로 하려고 하면 안 된다. 
최근 ‘경제3법’등 이슈가 된 규제 중엔 기업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에 대한 것도 있다. 이와 관련 김 대표는 “한국은 IMF 외환위기와 2001년 엔론사태(분식회계사건)를 거치며 기업 회계제도, 상장사 지배구조, 사외이사제도, 공시제도 등을 싹 바꿨다. 제도상으론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제도가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을 보장하는 장치를 도입하는 등 투명한 경영이 가능한 방안을 찾는 게 과제”라고 했다. 
 
인터뷰 말미 김 대표는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이제는 한국사회의 지식인 계층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인 계층에 문제가 있나.
한국은 지금 비정상적이다. 위에서 정치권이 싸우고, 아래서 SNS(소셜미디어)로 싸우는 것 위에 중간, 중심이 없다. 중산층도 사라지고 식자층도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지식인 계층엔 전·현직 공직 출신을 비롯해 학자·경제인·기업오너·언론 등이 모두 포함된다. 침묵하고 있는 이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자기 의무를 하면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이대로 가면 한국은 글로벌 동반 경제위기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급격한 변화라는 이중의 어려움에 휩쓸릴 거다. 내가 고대사를 연구하며 한민족의 뿌리와 경쟁력을 찾는 것도 미래 한국의 위기 극복 해법을 찾기 위해서다. 여야·보혁 어느 한쪽의 편을 들라는 게 아니다. 정말 이 나라가 위기를 뚫고 발전하고, 미래 세대가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는 국가의 방향을 제시하고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거다. 어떤 방식으로 지식인층에게 이런 점을 소구할지 고민 중이다.  
 
☞김석동 ▶1953년 부산 출생 ▶경기고, 서울대 경영학과 ▶재정경제원 금융부동산실명제실시단 총괄반장·부동산반장·외화자금과장 ▶금감위 감독정책1국장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금융정보분석원장·차관보 ▶재정경제부 1차관 ▶농협경제연구소 대표 ▶금융위원장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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