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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중수청? 문제는 수사의 질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점들을 연결하라.’ ‘돈을 좇아라.’
 

수사·기소권 분리 방향 맞지만
이 빠진 칼은 고통만 줄 것이다
부실수사 경쟁적으로 전개될 수도

수사의 ABC로 통하는 문구들이다. 뉴욕남부지검장을 지낸 미국 법조인 프릿 바라라는 이 격언들에 강한 불만을 나타낸다. “유치원생들에게나 알려줄 법한 이런 추적 기법으로… 범죄 수사가 갖는 어려움과 복잡성, 수사기한의 제약 등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한다.”(『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법조기자 생활을 하면서 숱한 사건을 겪었다. 검찰 수사를 놓고 보면 1993년 홍준표 검사의 슬롯머신 수사부터였다. 그 홍 검사가 조사 대상이 됐던 2015년 ‘성완종 리스트’ 수사도 사회부 책상에서 지켜봤다. 성공한 수사와 실패한 수사들을 경험하면서 수사 역시 누구나 하면 되는 일이 아님을 깨달았다.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려면 타고난 재능과 문제의식에 다년간의 직업적 훈련, 판단력, 용기가 필요하다.
 
최악은 자신들이 예단한 수사 방향을 어떻게든 밀어붙이려는 수사였다. 유난히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다. 공무원 A가 금품을 받은 혐의로 수사를 받는다. A는 구속되면 인생이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거짓 자백이라도 할까 고민한다. 다행히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된다. 금품을 주고받았다는 시점에 A가 집 근처에서 카드를 사용했음이 확인된 것이다. 검사는 항소한다. 추가 증거는? 없다. “카드 사용 후 다시 약속 장소로 갔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전부다. 2심 역시 무죄다.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두 가지다. 하나는 수사권, 구속영장청구권에 기소권까지 거머쥔 검찰이 그렇게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실력 없는 수사가 인간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다. 날카로운 메스는 환부를 도려내지만, 이 빠진 칼은 사람에게 고통만 준다.
 
더욱이 검찰·경찰의 수사 실력에 대한 의구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그 정황 증거가 “검찰 출신 변호사들의 ‘고소 대리’가 성업 중”이란 소식들이다. 검경의 실력을 믿을 수 없어 고소에 그만큼 돈을 들여야 한다는 거다. 방대해지는 수사기록이 오히려 수사력 저하를 말해준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전직 대법관은 “유죄의 증거가 명확하다면 그토록 많은 기록이 왜 필요하겠느냐”고 말한다.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입법이 추진되고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하는 게 맞다. 문제는 수사의 질(質)을 어떻게 보장하느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이어 중수청이 신설되면 그 기관들은 기존의 검찰과 경찰에서 수사인력이 충원될 수밖에 없다. 기관이 새로 생긴다고 그들의 실력이 갑자기 업그레이드될 수 있을까. ‘헤쳐 모여’를 하면 수사 시스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법무부 산하에 중수청이 생긴다면 정치적 중립은 또 무엇으로 보장할 수 있을까.
 
당장 눈앞을 가리는 것은 부실 수사들이 곳곳에서 우후죽순, 경쟁적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법원에서 걸러주지 않겠냐고? 그 많은 유죄가 나오고 있는 것은 일부 판사들의 유죄 추정 원칙이 수사의 구멍을 메워주기 때문이라고 추론하는 법조인들이 적지 않다. 거꾸로 수사기관들이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없다면? 어렵고 힘든 사건은 피하려고 들 것이다. 성역 없는 수사가 필요한 대형 부정부패 앞에선 머뭇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범죄 수사 대응능력, 반부패 수사 역량이 후퇴해선 안 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우려는 타당하다. ‘속도 조절’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최소한 수사 역량이 더 낮아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수사기관들만 만든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 “점들만 연결하면 사건이 해결된다”는 것만큼 순진한 발상이 아닐까.
 
문제점을 개선하려면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현재의 실태는 어떤지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좋은 수사를 어떻게 북돋우고, 나쁜 수사를 어떻게 막느냐다. 시민들의 인권은 지키면서 사회를 부식시키는 부정부패는 척결해야 한다. 어떠한 경우에도 이 원칙만은 지켜져야 한다.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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