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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귀족? 평양 졸부? 다문화 가정 출신? 온달은 누구였을까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에서 온달 [사진 KBS]

KBS 사극 '달이 뜨는 강'에서 온달 [사진 KBS]

KBS 월화드라마 ‘달이 뜨는 강’은 소설 『평강공주』(2010)가 원작으로 온달과 평강공주의 이야기를 재해석한 팩션 사극이다. 방영 4화 만에 시청률이 10%를 기록하는 등 호평을 얻고 있다.
평강공주는 평원왕의 외동딸이지만 기억을 잃은 채 킬러로 살고 있고, 온달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아들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신세다.

KBS 팩션 사극 '달이 뜨는 강'으로 관심
"몰락한 귀족" vs "사회변동기에 뜬 졸부"
"서역국 소그디아서 온 이방인" 주장도

사실 『삼국사기』에 기록된 온달과 평강공주의 사연은 신분을 뛰어넘은 결혼과 극적인 스토리를 담고 있다 보니 '온달이 과연 누구냐'를 놓고 학계에서도 오랫동안 다양한 학설이 제기되어 왔다. 
또한 온달이 전사한 장소를 놓고도 서울 아차산의 아차산성과 충북 단양의 온달산성이 서로 연고를 주장하고 있다. 두 지역 모두 그와 관련된 설화가 내려올 정도다. 그렇다면 6세기 역사에 기록된 온달(溫達)은 과연 누구였을까.
KBS 사극 '딜이 뜨는 강' [사진 KBS]

KBS 사극 '딜이 뜨는 강' [사진 KBS]

 
①몰락 귀족인가?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가설이다. 고구려는 대대로 절노부(絶奴部)에서 왕비를 배출하는 등 왕가의 혼인에 대해 엄격했던 국가였다. 
인근 국가인 신라도 귀족이자 김유신의 부친인 김서현이 왕족인 만명과의 결혼이 수용되지 않아 야반도주할 정도였다. 박인호 한림대 박물관 연구원은 「온달을 통해 본 6세기 고구려 귀족사회」라는 논문을 통해 "온달이 처음으로 받은 관직은 '대형(大兄)'으로 고구려의 7번째 관직"이라며 "연개소문의 아들 연남생, 연남산 등도 대형을 거쳐 막리지에 오른 것을 고려할 때 온달의 신분은 높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러면서 그는 6세기 전반 고구려에서 국내성파(옛 수도)와 평양성파(신 수도) 사이에 벌어진 내란 수준의 정계 혼란 속에서 권력을 잃은 국내성파 출신 귀족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우하게 묘사된 환경도 정치적으로 몰락한 온달 가문의 신세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충북 단양군 온달산성 [중앙포토]

충북 단양군 온달산성 [중앙포토]

그렇다면 왕은 왜 온달을 택했을까. 6세기는 신라의 도전이 강성해지면서 한강 유역을 잃은 때였다. 대륙으로부터도 침입이 잦아졌다. 왕으로서는 외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력을 결집할 필요가 있었고 온달로 대표되는 국내성파에게 화해의 손길(국혼)을 내밀었다는 것이 박 연구원의 주장이다.
 
②졸부가 된 '개천용'일까?
반면 6세기의 사회적 변동에 주목한, 보다 적극적인 해석도 있다.
임기환 서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는 「설화를 통해 본 한국 고대의 사회변동 온달 서동 설화와 6세기 사회」라는 논문을 통해 온달과 서동의 연관성에 주목했다. 모두 가난한 낮은 신분 출신으로 왕의 사위가 됐고, 부인(공주)의 도움으로 황금이나 보물을 팔아 부(富)를 일궜다는 점이 공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이 시기는 철제 농기구와 우경의 보급으로 사회경제적 변동이 가속화했고, 일반인 중에서도 상당한 경제기반을 축적한 계층이 나왔을 것"이라며 이를 황금으로 횡재해 부자가 됐다는 식으로 묘사했다고 주장했다. 즉, 낮은 사회 신분층에서도 '황금'으로 상징되는 부를 축적한 계층이 정치적 진출과 성장도 꾀했는데, 온달 설화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서울 아차산성에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상 [중앙포토]

서울 아차산성에 있는 온달과 평강공주상 [중앙포토]

한편 국내성파였다는 가설과는 반대로 오랜 기간 기득권층이었던 국내성파로부터 무시당한 평양 기반의 신흥 귀족 세력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온달에 대한 비루한 묘사는 유서 깊은 중앙 귀족들의 반감을 반영했다는 것이다.
 
③서역에서 왔다고?
가장 과감한 학설이다. 온달이 실크로드에 있던 서역 국가 소그디아 출신이라는 주장이다. 연세대 역사문화학과 지배선 명예 교수는 2014년 카자흐스탄 아스타나에서 고려대 러시아 CIS연구소·유라시아국립대 공동 주최로 열린 한-중앙아 국제학술회의에서 “온달은 당시 강(康)국이라 불리던 소그디아의 왕족 출신이 고구려 여인과의 사이에 낳은 아들”이라며 이같이 주장했다. 
지 교수는 근거로 중국 사서인 『전당문(全唐文)』이나, 『북사(北史)』 등에서 ‘소그디아는 강국(康國)이라 불렸으며 그 왕족은 온(溫)씨’라고 쓴 기록을 들었다. 온달 이전엔 『삼국사기』 어디서도 온씨 성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경상북도가 앞세우는 실크로드에 한반도가 포함됐었다는 근거. 서역인의 얼굴을 한 경주 괘릉 무인석상의 모습. [사진 경상북도]

경상북도가 앞세우는 실크로드에 한반도가 포함됐었다는 근거. 서역인의 얼굴을 한 경주 괘릉 무인석상의 모습. [사진 경상북도]

또『대당서역기』나 『신당서(新唐書)』 등 당나라 시대 중국 기록에서 이곳 사람들에 대해 "호탕하고 용맹하다. 대부분 용사다…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전투할 때 그들 앞에 나타날 적이 없다”, “남자 20세가 되면 이익을 도모할 수만 있으면 안 가는 나라가 없었다” 등으로 기록된 점을 들어 온달이 전투에서 용맹한 공을 세웠던 점과 이들 가문이 고구려까지 이동한 경위 등을 설명할 수 있다고 봤다. 지 교수는『삼국사기』에서 '온달의 외모가 우스꽝스럽고 다 떨어진 옷과 해진 신으로 다녔다’는 기록은 “신분 질서가 엄격한 고구려에서 오늘날 다문화 가정 출신 자녀가 겪은 것과 같은 어려움을 묘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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