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드라마 '좋좋소'의 면접 장면. 사장은 별안간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다. 유튜브 '이과장' 캡처
[밀실]<제60화>
중소기업 직장인 '나의 하루'
"오늘 면접이 있었어요?"
"취미에 노래라고 적혀 있네요?"
지난 1월 유튜브 채널 '이과장'에 올라온 '좋좋소' 시리즈의 한 장면입니다. 가상의 중소기업에 담긴 서글픈 일상을 깨알같이 보여준 웹드라마죠.

'좋좋소'의 댓글창에는 자기 직장생활을 보는 것 같다며 공감하는 반응이 대다수다. 유튜브 '이과장' 캡처
그런데 말입니다. 정승네트워크 신입사원의 비애, 과연 드라마 속 이야기일 뿐일까요. 밀실팀이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현실의 조충범'들을 만나봤습니다. 아래는 직장인 유튜버 늪84(활동명·37)와 여프리(활동명·29)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하루입니다.(※PTSD 주의)
중소기업 11년 차, 김 과장의 하루

직장인 유튜버 '늪84'의 출근길 모습. 유튜브 '늪84' 캡처
"카톡~"
"어제 회식 정산하겠습니다~대리는 3만원, 과장급 이상은 5만원이고요. 오늘 중에 저한테 현금으로 주시면 됩니다 :)"

출근 후 첫 일과로 사무실 청소를 하고 있다. 유튜브 '늪84' 캡처
못 보던 사람이 옆에서 대걸레질하고 있다. 그저께 새로 입사한 A씨라고 한다. 한두 달 일하다 도망치듯 퇴사하는 신입사원이 워낙 많아서 이젠 얼굴 익히기도 어렵다. A씨는 자기 전임자가 지난주 월요일 오전 면접, 오후 출근 후 다음 날 퇴사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오후 3시, 잠깐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A씨에게 궁금한 건 없냐고 하자 그가 묻는다.
"과장님 혹시 우리 회사 복지 혜택이 어떻게 됩니까?"
"저기 탕비실 보이죠? 냉장고랑 전자레인지 있고, 싱크대에서 온수 나오고요. 여자 화장실도 따로 있어요. 숨 쉬는 공기 말고는 다 복지죠 뭐 ㅎㅎ."

늪84가 동료 직원들과 탕비실에서 차를 마시고 있다. 유튜브 '늪84' 캡처
'늦퇴'에도 불호령, 하루 만에 신입 탈출

직장인 유튜버 '여프리'가 사무실에서 업무를 처리하는 모습. 유튜브 '여프리' 캡처
눈치 보던 A씨가 슬그머니 가방을 싸기 시작한다. 즉시 이 부장의 불호령이 떨어진다. "나 때는 신입사원이 자정까지 일하기도 했다"며 잔소리를 쏟아낸다. 눈치 빠른 정 대리는 진작 정리가 끝난 엑셀 표를 띄우고 괜히 키보드만 만지작거린다.

사무실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늪84의 동료 직원. 유튜브 '늪84' 캡처
다음날 오전 11시, 점심시간이 다 돼 가는데 A씨는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 대리는 지난주 취업포털에 올렸던 모집 공고를 'Ctrl+C, Ctrl+V'해서 재업로드 하는 중이다. 이 부장이 그 뒤에서 한숨을 푹 내쉰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끈기가 없냐?"
당연해진 '웃픈' 현실, 청년들 생각은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취업예정자가 취업을 희망하는 기업' 조사 결과. 조예진 인턴
하지만 코로나19로 취업 절벽에 내몰린 청년들은 여전히 중소기업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 발표에 따르면 여러 형태의 사업장 중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한 청년 구직자는 3명 중 1명(33.7%)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중소기업은 '노동 강도에 비해 급여가 낮다'(39.6%)거나 '고용 안정성이 떨어질 수 있다'(25.1%)고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죠.
밀실팀이 만난 중소기업 직장인들은 '청년들이 안정적으로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대통령 집무실 '일자리 상황판'에 취업률만 담으면 될까요. 그보다 중요한 일자리의 질을 따지는 게 급선무라는 겁니다.

지난 17일 밀실팀과 인터뷰하고 있는 유튜버 늪84. 조예진 인턴
당연해져 버린 중소기업의 '웃픈' 절망 속에서 살아가는 청년들. 그저 웃고 넘기거나 대기업 갈 '노오력'을 지적하기보단 이제 정말로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박건·백희연 기자 park.kun@joongang.co.kr
영상=이진영·조예진 인턴, 백경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