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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앞뒀지만…54년 만의 이별 고민하는 학교 앞 문방구

동인천화방문구를 연 김정순씨(왼쪽)와 며느리 이희순씨. 아들 김영기씨는 쑥쓰럽다며 사진 촬영은 사양했다. 심석용 기자

동인천화방문구를 연 김정순씨(왼쪽)와 며느리 이희순씨. 아들 김영기씨는 쑥쓰럽다며 사진 촬영은 사양했다. 심석용 기자

“이제 정말 그만해야 할까 봐.”

선반에서 편지봉투를 꺼내던 문방구 주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가게 한쪽 난로에 불을 지피던 부인은 “또 그 소리냐”며 핀잔을 준다. 물건을 건네받은 손님은 익숙한 듯 쓴웃음을 짓는다. 지난 24일 김영기(66)·이희순(65)씨 부부가 운영하는 인천 중구 '동인천화방문구'의 풍경이다.

 
올해로 54년째를 맞은 이 문구점은 그 역사만큼 추억 속 물품이 가득하다. 뽑기 기계와 군것질거리가 담긴 바구니를 넘어 미닫이문을 열면 미술용품으로 빽빽한 진열장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방 판매대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과학의 달을 맞아 조립하던 고무동력기, 물레방아 꾸러미부터 90년대 유명인이 그려진 공책, 빛바랜 졸업장 보관용 통까지 온갖 추억이 진열장 곳곳을 채우고 있다. 이희순씨는 “예전엔 졸업장을 받으면 둘둘 말아 보관통에 넣었는데 이젠 다 옛날이야기라 먼지만 쌓인다”며 “간혹 옛날 생각난다며 찾아와 구경하는 분들은 있다”고 말했다.
 

자녀 셋 키우기 위해 시작한 문방구

동인천 화방문구에는 과거 졸업장을 담던 졸업장 보관통을 비롯해 추억 속 물품들이 가득하다. 심석용 기자

동인천 화방문구에는 과거 졸업장을 담던 졸업장 보관통을 비롯해 추억 속 물품들이 가득하다. 심석용 기자

동인천화방문구 역사는 1960년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기씨의 어머니 김정순씨가 연 ‘축현문구’가 그 시작이다. 근처에 있는 축현초등학교에서 이름을 땄다. 당시 35세에 남편과 사별한 김씨는 자식 셋을 키우기 위해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그의 눈에 문구점이 들어왔다. 홀몸으로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팔을 걷어붙였다. 거주지 송학동을 떠나 초·중·고교가 모여있는 동인천에 터를 잡았다. 이후 화방을 하던 장남 김영기씨가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현재 이름으로 간판을 새로 달았다.
 
1980~90년대 동인천 일대는 문방구 전성시대였다. 등하교 시간이면 제물포고·인일여고·인천여고·대건고·축현초 등 10곳이 넘는 학교에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심에 동인천화방문구와 삼성문구 등 5~6개의 문구점이 있었다. 문구점은 학용품 구매·군것질·오락을 모두 할 수 있는 놀이터였다. 김영기씨는 특히 새 학기인 3~4월이 학생들로 가장 붐볐다고 기억했다. 그는 “개학을 앞두고 참고서, 학용품을 미리 준비해 아이들을 기다렸다”며 “한창 바쁠 때는 온 식구가 전날 밤늦게까지 참고서 포장 등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쇠락 길에 맞은 코로나19 여파까지

3층짜리 건물의 1층에 있는 동인천화방문구앞에는 뽑기 기계, 군것질거리 등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다. 심석용 기자

3층짜리 건물의 1층에 있는 동인천화방문구앞에는 뽑기 기계, 군것질거리 등이 담긴 바구니가 놓여 있다. 심석용 기자

그러나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위기가 왔다. 대건고와 축현초 등 주변 학교들이 하나둘씩 타 지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학교가 떠나니 학생 손님이 줄었다. 여기에 교육청과 지자체가 준비물을 일괄 구매해 학생에게 나눠주는 ‘학습 준비물 지원 정책’이 시작되면서 작은 문방구가 설 자리는 줄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등교수업이 멈췄다. 새 학기 특수는커녕 손님 자체를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최근 문방구를 찾는 손님은 하루에 10명이 되지 않는다. 이들 부부는 이제는 소일거리 삼아 가게 문을 열고 있다고 한다. 
 
각 학교는 교육부 지침에 따라 다음 달 2일부터 제한적으로 등교수업을 시작하지만 김씨 부부는 영업 중단을 고민하고 있다.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 채 문구점을 계속 운영하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노포(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점포)라는 말이 부담스럽다는 김씨의 표정에는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노포가 유행이라고 하는데 어쩌면 바뀌는 시대에 못 따라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나이도 꽤 들었으니 문구점은 인제 그만 닫아야 할 것 같아요”
 
심석용 기자 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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