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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골 여귀꽃으로 물들인 분홍 한복, 미술 작품 같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한복 전시 ‘다이얼로그, 상춘곡’을 시작한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남원의 꽃 여귀로 염색한 분홍 한복을 LED 조명이 켜진 마네킹에 입혀 놓았다. 장정필 객원기자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한복 전시 ‘다이얼로그, 상춘곡’을 시작한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 남원의 꽃 여귀로 염색한 분홍 한복을 LED 조명이 켜진 마네킹에 입혀 놓았다. 장정필 객원기자

춘향의 고을 전북 남원이 한복 거점 도시로 거듭난다. 지난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복진흥센터(원장 김태훈)가 추진한 한복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에서 3개 분야(한복문화 지역거점, 한복문화주간, 한복문화교육)에 모두 선정된 유일한 지자체다. “한복의 진수를 입고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이환주 남원 시장의 포부는 우선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미술관에서 이례적으로 열리는 한복 전시회 ‘다이얼로그, 상춘곡(Dialogue, 賞春曲·2월 9일~5월 9일)을 통해서다. 전시의 주인공인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64)은 영화 ‘서편제’‘천년학’‘광해’, 드라마 ‘토지’‘황진이’ 등에서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드러내 온 명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2011)과 파리 루브르 박물관(2012) 전시를 통해 조선 왕실 의상의 품격을 세계인에게 각인시킨 바 있다.
  

미술관서 한복의 미 알리는 김혜순
LED 조명 넣은 몽환적 마네킹
장인 솜씨 담긴 꽃가마도 눈길

복식사 연구하며 가치 깨달아
한복의 품격, 함께 고민했으면

한복 인형 만든 외삼촌 덕에 디자이너로
 
“김병종 선생님 그림 속에서 그저 춤을 추고 싶었다”는 디자이너의 흥분은 제1 전시관에서 고스란히 전해진다. 숲의 정령을 표현한 김 화백의 대형 그림 ‘숲은 잠들지 않는다’를 배경으로 하늘하늘한 분홍빛 원삼·말군(여성들이 말 탈 때 입던 옷)·쾌자(겉옷)·무지기 치마·살창 고쟁이 등을 걸친 10개의 마네킹이 강림한 선녀처럼 관람객을 유혹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마네킹 안에 LED 조명을 밝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점이다.
 
“미술관을 와보고 나서, 당초 생각했던 의상을 모두 포기하고 옷을 새로 지었어요. 샤의 일종인 춘사, 모시, 노방, 자미사 등 얇은 천을 가져다 남원을 대표하는 꽃인 여귀로 염색해 분홍빛을 냈지요. 마네킹 조명은 이번에 처음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선보인 아이디어입니다.”
 
제2 전시관으로 들어가면 칠적관을 쓰고 적의를 입은 왕비 마네킹이 김 화백의 그림 세 점 앞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다. 산호와 비취로 만든 화려한 비녀와 떨잠 같은 장식이 위풍당당함을 더한다. 정미옥 남원시 관광시설운영담당 팀장은 “관람객들이 이런 옷과 보물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 놀라워한다”고 전했다.
 
[김혜순/20210223/남원/장정필 객원기자] 한복디자이너 김혜순/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에서 전시/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김혜순/20210223/남원/장정필 객원기자] 한복디자이너 김혜순/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에서 전시/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2층 제3 전시관을 찾은 관람객의 시선은 대번에 꽃가마로 향한다. 대대로 가마를 만들어온 공방의 소목장, 자수와 매듭의 명인이 한 땀 한 땀 수놓은 십장생 자수가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1990년 제작된 이 꽃가마는 김 디자이너의 수장고에 꼭꼭 숨겨져 있다가 10여 년 만에 세상의 빛을 본 ‘작품’이다. “이 꽃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어 시집 보내는 것이 반가 최고의 사치였다”는 김 디자이너는 “꽃가마 탄 신부의 모든 것을 준비하는 것은 예복 하는 사람 최고의 영예”라고 설명했다.
 
제3 전시관의 또 다른 볼거리는 바로 한복을 입은 인형들. 키 61~68㎝가량인 반가 여인, 무녀, 기녀들의 표정과 손매가 정교하기 짝이 없다. 김 디자이너의 외삼촌이자 탤런트 겸 한복 인형 제작자로 명성을 떨친 허영(1947~2000) 선생의 작품이다. “이 중 흰 저고리에 쪽빛 치마 차림의 반가 여인은 외삼촌이 제게 주신, 제 분신과도 같은 인형이에요. 외삼촌은 인형의 옷은 물론 비녀 하나도 최고급 소재를 사용하셨죠. 머리카락도 일일이 심으셨을 정도니까요.”
 
허영 작가가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을 위해 만들어준 한복 인형.

허영 작가가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을 위해 만들어준 한복 인형.

제4 전시관에서는 혼례 의상을 하나씩 입어나가는 모습을 착장 순서에 맞춰 점층적으로 재현했다. 황해봉의 꽃신(1980)부터 김혜순의 개성 댕기(2019), 허영의 도투락 댕기(1983), 차명순의 노리개(1984), 금복현의 부채(1983) 등 아기자기한 소품까지 곁들여 한복 착장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준다. 김 디자이너의 품격 높은 한복과 손때 묻은 소품은 남원 출신의 여류 문인 김삼의당(1769~1823)의 ‘춘경’ 시구와도 전시장 곳곳에서 어우러지며 성큼 다가온 봄을 반기고 있었다.
 
김병종 화백의 그림 앞에서 적의를 입고 칠적관을 쓴 채 서있는 조선시대 왕비 마네킹. [사진 남원시]

김병종 화백의 그림 앞에서 적의를 입고 칠적관을 쓴 채 서있는 조선시대 왕비 마네킹. [사진 남원시]

“손님 척 보면 옷이 척하고 안 입혀지냐” 
 
한복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아까 말씀드린 외삼촌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어요. 인형 공방에서 제 또래 조카들에게 일을 시키셨는데, 다들 힘들다고 도망가고 저만 남았죠. 제일 고집 센 아이였던 저를 점찍고 3년 만에 한복 매장을 차려주셨어요. ‘예정(藝丁)’은 삼촌의 호인데, ‘정’에는 ‘경지’라는 뜻이 있대요. 명륜동에 ‘예정 허영 한복’, 역삼동에 ‘예정 김혜순 한복’ 이렇게요.”
 
뭘 가르쳐 주셨나요.
“뭘 하든 최고급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죠. 시장 수준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요. 옷감 직조도, 문양도 일일이 주문하고 염색도 직접 했어요. 그때 짠 옷감들이 아직도 남아있죠. 액세서리도 웬만한 것들은 다 직접 만들었는데, 역시 최고급 소재를 사용했어요.”
 
한복 짓기는 어땠습니까.
“외삼촌은 ‘손님을 척 보면 옷이 척하고 안 입혀지냐’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하시는 대로 따라 하다 보니, 저도 그렇게 됐죠. 그게 안 되면 옷이 안 나와요. 외삼촌은 신뢰가 없으면 못 만드는 게 한복이라고 하셨어요.”  
 
잡지 같은 것을 오려와 이렇게 만들어 달라는 고객도 있을 텐데.
“‘이 옷은 이 모델에게는 어울리지만 선생님께는 안 어울린다’고 말씀드리죠. 그럼 보통 알아서 해달라고들 하세요. 제 느낌대로 모양이며 색깔을 골라 만들어드리는데, 같은 옷은 없어요. 뭔가 달라도 다르죠. 그래서 우리 집 옷은 값이 없어요. 그냥 ‘집 한 채 값이에요’ 그래요. 집을 짓는 일이나 옷을 짓는 일이나 매한가지니까.”
 
[김혜순/20210223/남원/장정필 객원기자] 한복디자이너 김혜순/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에서 전시/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김혜순/20210223/남원/장정필 객원기자] 한복디자이너 김혜순/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에서 전시/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그럼 김혜순 한복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한국 복식의 전통을 그대로 이었다는 것입니다. 박사를 한 뒤에도 복식사 연구로 유명한 유희경 이대 교수님을 20년 동안 쫓아다니며 공부를 했어요. 외삼촌에게서 익힌 실무에 이론을 더한 셈이죠. 한복은 종합예술이거든요. 직조, 염색, 바느질에 장식이 한데 어우러지는. 서양 복식까지 연구하고 보니 비로소 우리 것이 보이더라고요.”
 
외국의 유명한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한복 패션쇼도 했는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전시할 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의상을 담당했던 패트리샤 필드가 찾아와서 ‘이런 옷 처음 본다. 내가 왜 몰랐지’하며 자기 집으로 초대까지 했어요. 그때도 여러 나라의 복식과 비교해 가며 한복의 아름다움을 말해주었죠. 벨기에 유명 패션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의 경우도 비슷했어요.”
  
그때는 또 어땠나요.

“그는 중국이나 일본 문양에 관심이 많았는데, 어느 날 한국의 전통 옷을 구해오라고 했대요. 그때 제가 쓴 『아름다운 우리 저고리』라는 책이 파리 패션계에서 알려지고 있었는데 그게 그의 눈에 띄었고, 덕분에 그의 2012 FW 쇼에 한복에서 영감을 받은 옷이 등장하게 됐죠.”
 
그런 얘기들은 잘 안 알려져 있는데요.
“외삼촌이 늘 ‘나대지 마라’고 하셨어요. ‘때가 되면 사람들이 널 찾아올 것이다’라면서. 해외 전시 소식도 잘 알리지 않아서 패션지 편집장들에게 나중에  한 소리 듣고 그랬죠.”
 
이번에 미술관 전시로 새로운 행보를 시작했는데.
“전통 한복의 아름다움을 이제는 널리 알리고 싶어서요. 값싸게 입는 한복이 있으면 명품 한복도 있다는 것도 알리고 싶고요. K팝이 알려지면서 한복에 대한 관심도 세계적으로 높아졌다는데, 정작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같이 고민하고 싶습니다.”
 
[김혜순/20210223/남원/장정필 객원기자] 한복디자이너 김혜순/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에서 전시/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김혜순/20210223/남원/장정필 객원기자] 한복디자이너 김혜순/남원시립 김병종미술관에서 전시/중앙선데이와 인터뷰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광한루 옆에 남원시가 새로 조성해 공개를 앞둔 ‘화인당(花人堂)’은 한복체험 공간이다. 한복 디자이너 김혜순의 고민이 녹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그냥 걸치기만 해도 한복을 착용한 듯한 느낌을 주는 대여 의상도 내놨다. 긴 조끼 같이 생긴 ‘화인 날개’다. 한복에 대한 그의 열정이 어떤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남원=정형모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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