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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하루 ‘핑크의 바다’…학교폭력 추방 물결 퍼졌다

[세상을 바꾸는 캠페인 이야기] 학폭 예방 ‘핑크셔츠’ 캠페인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2020년 핑크셔츠 캠페인 참여자들.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학교폭력 방지를 위한 2020년 핑크셔츠 캠페인 참여자들.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한 동료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두 사람의 아이디어와 행동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왔다.” 캐나다 전역에서 매년 전개되고 있는 학교폭력과 따돌림 예방을 위한 ‘핑크셔츠 캠페인’의 최초 제안자였던 데이비드 셰퍼드와 트래비스 프라이스의 말이다.
 

핑크셔츠 입었다고 괴롭힘당하자
캐나다 지방 소도시 학교서 시작

전 세계 180여개 국가 동참·기부
올해는 ‘사이버 불링’ 근절에 초점

한국, 스포츠 스타 학폭 잇단 파문
반성·치유하는 선순환 해법 필요

2007년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한 학교에서 방학을 마치고 등교한 첫날 9학년(중 3) 남학생이 핑크색 셔츠를 입고 왔다. 이 남학생은 핑크색 셔츠를 입고 왔다는 이유만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당시 12학년(고 3)이었던 셰퍼드와 프라이스는 이 괴롭힘과 폭행을 목격한 후 작은 캠페인 하나를 생각해 냈다. 이들은 학교를 마치고 마트에 가서 50벌의 핑크색 셔츠를 구매한 후 학교 친구들에게 캠페인 참여를 독려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 아침 등교할 때 함께 핑크색 셔츠를 입자고 호소했다.
 
학생들이 주도한 이 작은 캠페인 이후 학교에서의 괴롭힘은 사라졌다. 이 소식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지역사회와 대중에게 알려졌고 ‘핑크의 바다(sea of pink)’를 만들자는 제안으로까지 발전했다. 그 결과 교육청과 주 정부, 더 나아가 캐나다 전역에서 이 활동에 공감해 매년 2월 마지막 주 수요일을 ‘핑크셔츠의 날’로 지정했다.
  
코로나로 온라인 괴롭힘 70% 급증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오른쪽 둘째) 가족도 올해 캠페인에 동참했다.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오른쪽 둘째) 가족도 올해 캠페인에 동참했다.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올해는 2월 24일 수요일이 14번째 핑크셔츠의 날이었다. 이날은 학생, 선생님 등 학교 관계자를 비롯해 시민들까지 자발적으로 핑크색 셔츠를 입거나 넥타이, 브로치, 가방 등 패션 아이템 중 하나를 핑크색으로 바꿔 캠페인에 참여한다. 거리를 다니다 보면 곳곳에서 핑크색이 목격되는데 이를 통해 학교폭력에 관한 경각심과 문제해결을 위한 지역사회의 연대의식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캠페인은 2008년 캐나다 밴쿠버의 라디오 방송국 CKNW가 중심이 되어 학교폭력과 따돌림 방지를 위한 ‘키즈 펀드 기금’을 조성하면서 본격화했다. 기금 수익 100%는 학생들에게 상호배려와 공감 그리고 친절 등 기본적 소양을 가르치는 교육뿐 아니라 아이들의 자존감 회복을 위한 치료 지원에 쓰이고 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알려지면서 현재까지 180여개 국가의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기부와 동참을 끌어냈다. 핑크셔츠 캠페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일본·뉴질랜드·중국·파나마 등 국가에서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모금 캠페인이 시작됐다.
 
2019년 한 리조트에서 열린 핑크 셔츠 캠페인.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2019년 한 리조트에서 열린 핑크 셔츠 캠페인.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기금을 조성하고 글로벌캠페인으로까지 확산한 결과 밴쿠버를 중심으로 한 캐나다 서부지역에서만 240만 달러 이상이 모금되는 성과를 거두었다. 최근에는 티셔츠뿐 아니라 팔찌와 목걸이 등 다양한 굿즈도 매년 새롭게 제작되어 펀드 조성에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 올해 핑크셔츠 캠페인은 과거와 비교해 한 가지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온라인상에서의 괴롭힘과 따돌림, 일명 사이버 불링(cyber bullying)에 초점이 맞춰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이 확대되면서 온라인상 학생 간 괴롭힘이 70% 이상 급증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킹스턴 청소년클럽(BGCK)이 자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유치원부터 12학년(고 3)까지 학생 3명 중 1명이 사이버 괴롭힘의 피해를 경험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두었지만, 어느새 미룰 수 없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 교육부가 발표한 ‘2020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년 대비 다른 피해 유형의 비중은 감소했음에도 사이버 폭력 비중은 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 폭력이 감소한 것이 아니라 온라인으로 수렴됐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핑크셔츠를 착용한 반려견도 캠페인에 함께하고 있다.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핑크셔츠를 착용한 반려견도 캠페인에 함께하고 있다. [사진 CKNW 키즈 펀드 페이스북]

2021년 초 캐나다 보건연구소(CIHR)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자녀가 언어적 괴롭힘이나 따돌림 등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학부모가 절반 이상이었다. 이런 증가의 원인은 학교폭력과 괴롭힘의 공간이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함에 따라 사이버 괴롭힘 위험이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핑크셔츠 캠페인에는 학교폭력으로 자녀를 잃은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2년 사이버 불링으로 자신의 딸을 잃은 캐롤토드는 캠페인에 참여하는 이유를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온라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수많은 학생 간 폭력 중 자신의 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소중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학교폭력과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행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언제든 주변의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 둘째, 폭행이나 따돌림을 당했을 때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어야 한다. 그 대상에는 가해 학생도 포함된다.
 
핑크셔츠 캠페인이 모금한 기금을 지원받았던 YMCA 캐나다가 운영한 프로그램 중 하나는 가해자 학생을 재교육시켜 학교로 복귀시키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온라인상에서 잘못된 행동으로 정학당한 학생을 대상으로 했다. 사이버 불링에 대해 학교가 무관용 원칙을 갖고 엄격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정학 처분을 받은 것이다. 이 학생들에게 올바른 미디어 교육과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교육과 상담을 제공한다. 교육에 참여한 학생들은 일대일 상담을 통해 자신의 행동을 깊이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실제로 교육 이수 후 진정한 사과의 기회도 제공될 뿐 아니라 다른 친구들에게 자신과 같은 행동을 하지 말도록 경험을 공유하는 역할까지 수행하는 등 교육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그렇다고 학교폭력과 따돌림의 문제가 단기간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미디어의 발달 때문이며 학생 간 소통과 행동을 세심히 관찰하는 것은 더욱 힘들어졌다. 학생들 대부분은 친구들과 SNS를 통해 집단을 구성하고 그 안에서 보이지 않는 폭력과 따돌림을 경험하고 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니라 문자와 사진, 영상을 통해 의식에 가하는 폭력이 늘어났다. 피해 학생들의 극단적 선택에 따돌림이 주요한 원인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단지 어른들이 잘 모르고 있을 뿐이다. 어른들은 알아야 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모든 형태의 괴롭힘을 경험한 학생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자신이 신뢰할 수 있는 어른과 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피해라도 소통하고 주시해야
 
학폭 예방 ‘핑크셔츠’ 캠페인

학폭 예방 ‘핑크셔츠’ 캠페인

그러기 위해 한 사회는 끊임없이 학교폭력과 따돌림에 관한 경고 신호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핑크셔츠 캠페인은 잊힐 수 있는 크고 작은 피해 사례를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관심을 끌어내는 구심점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핑크셔츠는 모두의 인식 속에 학교 내 괴롭힘에 맞서고 서로를 존중하며 우리가 경험한 학교폭력과 따돌림을 기억하자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캐나다 밴쿠버의 한 학부모는 핑크셔츠 캠페인이 부모들 사이에 자녀들의 따돌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수 있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2018년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전국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서 초·중·고 재학생 자녀의 학교폭력 대응방법에 관한 통계를 보면 전체 응답자 중 거의 절반에 해당하는 48.6%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참았다 30.4%,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갔다 18.2%)가 자녀들이 경험한 학교폭력에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있었다. 다문화 가족을 대상으로 한 복수 응답 결과지만 우리가 모르고 넘어가는 수많은 학교폭력이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
 
최근 학폭 논란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 그냥 묻어두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 사과하고 반성하며 치유하는 선순환의 과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예방에 이르는 해법을 고민해야 할 때다. 그 선순환을 돌려줄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핑크셔츠 같은 캠페인이다. 학폭 논란의 중심에 선 일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의 과거 소식에 기울이는 관심만큼 현재 일어나고 있는 평범한 우리 아이들의 학교폭력과 사이버 따돌림에도 주목해 보면 어떨까?
 
이종혁 광운대 교수
광운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공공소통연구소 소장이다. 디자인 씽킹과 데이터 사이언스 기반 캠페인 개발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발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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