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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숙한 물건, 절제된 색채…“현실보다 더 추상적인 건 없다”

[미학 산책] 모란디의 정물화

온화한 색채로 그린 모란디의 정물화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전체적으로 밝고 투명한 ‘누그러진 색채’가 모란디 작품의 특징이다.

온화한 색채로 그린 모란디의 정물화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전체적으로 밝고 투명한 ‘누그러진 색채’가 모란디 작품의 특징이다.

내가 모란디의 그림을 처음 보았던 것은 2020년이 다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전에 사뒀던 책들 가운데 여러 작가가 좋아하는 그림을 하나씩 추천하고 쓴 두세 쪽 에세이를 묶은 책자였다. 그 글들 가운데 호르스트 비넥의 글도 있었는데, 그가 언급한 화가가 바로 모란디였다. 브레히트의 제자였던 비넥은 1951년에 동독에서 체포됐다 풀려난 후 서독으로 갔고, 이후 방송국 편집과 출판사 일을 하며 소설을 출간하기도 했다.
 

희미하지만 쉽게 지워지지 않는
물무늬 같은 미묘한 서정 표현
심리적 안정감 줘 마음 밝아져

신비로운 세계로 숨어들지 않고
눈에 보이는 다채로운 자연에 관심
병·컵 등 소박한 생활 ‘도구’ 그려

비넥의 에세이와 함께 실린 모란디의 한 정물화에서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 인상은 강렬하기보다는 차분한 것이었다. 마치 소리 없이 다가온 한 이랑의 물결이 마음 한구석을 적시면서 남긴 희미한 자국과도 같았다고나 할까?
 
그것은 물이 남긴 흔적이요, 그래서 물무늬와도 같은 것이었다. 밀물이면 밀려왔다가 썰물이면 빠져나가는 물결이 드넓은 갯벌에 남긴, 비슷하면서도 끝없이 다른 기이한 자국 같은 것들…. 거세거나 힘찬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은 쉽게 지워질 수 없는 것이었고, 내 영혼을 격렬하게 뒤흔들진 않았지만, 영혼의 구석구석에 보이지 않는 흔적을 남기는 어떤 것이었다. 이 자국들은 하루 이틀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그림이 남긴 정갈한 이미지는 내게 더 귀하게 느껴졌고, 그래서 아련하게 그리워졌다.
 
이런 마음의 파문인지 나는 사나흘이 지나면서 모란디의 화집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날 무렵 책 한 권을 주문했다. 두어 주 기다린 끝에 도착한 그 책을 나는 시간 날 때마다, 또 눈에 띄는 대로 펼쳐 보고 감상하고 음미하면서 두세 주를 보냈다. 그렇게 보낸 한 달 남짓의 시간은 마치 그의 정물화처럼 조용하고 내밀했으며, 그래서 나는 행복했다. 이 글은 그런 행복한 경험의 기록이다.
  
간결한 정확성
 
모란디의 회화적 비전은 단순소박하고 명백했다. ‘왜 그림을 그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그는 답변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는 사람들과 모이는 일을 즐기기보다는 홀로 작업하기를 좋아했다. “나는 말이 두렵습니다. 그게 내가 그리는 이유지요.” 모란디는 사교적이지 못했다. 그는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는 가능한 한 피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남아 있는 인터뷰는 몇 되지 않는다.
 
모란디는 1928년에 쓴 자전적 기록에서 이렇게 적었다. “나는 기질이나 예술적 이유 때문에 혼자 있길 좋아하는 편이다. 이것은 공허한 자존감이나, 나와 믿음을 나눌 모든 사람과의 연대심이 부족해서 오는 게 결코 아니다.” 그는 사교적 인간이라기보다는 고독의 인간이었고, 말의 인간이라기보다는 침묵의 인간이었다. 그리고 이 침묵 속에서 명상하고 표현하기를 더 좋아했던 듯싶다.
 
모란디는 사물의 색채나 형태에 주의했고, 이 형태가 일정한 평면과 공간 속에서 어떤 색깔을 가질 것인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색채의 형태가 어떤 그림자를 띠면서 서로 조화될 것인지를 실험했다. 이 같은 실험 속에서 그는 사물의 비밀을 드러내고, 그 본질에 집중하며, 이 본질에 어울리는 품위를 부여하고자 애썼다.
  
보이는 세계에 숨은 삶의 신비
 
모란디의 작업실 스튜디오. [사진 파올로 몬티]

모란디의 작업실 스튜디오. [사진 파올로 몬티]

모란디는 일생을 통해 여러 유파와 시대적 경향을 경험했지만, 그가 시종일관 관심을 기울인 것은 정물화와 풍경화였다. 정물화는 특히 그랬다. 정물화는 기본적으로 북유럽적 전통에 속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전형적으로 비(非)이탈리아적인 장르로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20세기 전반에는 그랬다.
 
모란디가 그린 것은 기이하거나 특이한 물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에서 흔히 보는 친숙한 것들 - 병이나 컵, 그릇이나 접시, 화병이나 주전자 혹은 커피포트 같은 것들이었다. 그는 사물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도구’를 그렸다. 그는 전통적 의미의 정물화에서 즐겨 묘사되던 대상들, 이를테면 조개나 가재, 죽은 새나 생선 같은 것을 그리지 않았다.
 
모란디의 그림에 등장하는 물건들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정겨우면서도 소박해 보인다. 그것은 물건의 일상성이나 세간살이적 성격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그려진 단순소박한 색채에서도 연유할 것이다. 말하자면 색채에서의 절제와 명암에서의 부드러움이 큰 역할을 한다. 그의 그림에 멜랑콜리가 있다면, 그 멜랑콜리는 순하고 담백하다. 그는 이 물건들을 반복해서 그렸다. 친숙하다고 하는 것들은 그리 친숙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이는 세계는 사실 보이는 그대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1955년의 한 인터뷰에서 말했다.
 
“갈릴레오가 회상하듯이 자연의 책은 우리의 알파벳에는 낯선 특징들로 쓰여 있지요. 그 특징들이란 삼각형이고 사각형, 원이나 구(球), 피라미드나 원뿔형이나 다른 기하학적 도형이지요. 보이는 세계가 일깨우는 감정과 이미지들은 크나큰 어려움 속에서만 표현할 수 있거나, 어쩌면 말로 표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내가 오랫동안 가졌던 확신 속에 갈릴레오의 생각들이 살아있다고 나는 느낍니다.”
 
세상은, 갈릴레오가 생각했듯이, 삼각형이나 사각형 혹은 몇 가지 다른 기하학적 형태로 축약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세잔 이후의 현대회화는 기본적으로 이런 기하학적 단순화의 길-추상화의 경향을 걷는다. 모란디는 자신의 회화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어떤 기이한 세계를 소환하거나 신비로운 세계로 숨어들지 않았다. 그가 관심 가졌던 것은 보이는 세계였고, 이 보이는 세계의 다채로운 자연이었다. 그러나 이 세계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삶의 신비나 비밀스러움은 보이는 세계에서 이미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토로했다. “현실적인 것보다 더 추상적이고 더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말년의 정물화
 
모란디의 그림들 가운데 내가 주목하는 것은 1950년 이후, 그러니까 그의 나이 예순 이후에 그린 정물화들이다. 이 시기에 등장하는 소재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기존의 그림에 등장한 것들은 다른 그림에서도 나타나지만, 그러나 배치나 색깔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말년에 그려진 것들이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적어도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물론 나의 변덕 때문일 수도 있고, 나의 기호나 까다로움 때문일 수도 있다. 이를테면 화면에 물건들이 꽉 채워져 있을 때보다는 그려진 물건의 좌우 공간이 비어있는 그림이 나는 좋다. 화면의 아래위가 비어 있어도 수평적으로 놓인 사물들의 좌우가 비어 있지 않으면 답답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 그림의 상하와 좌우가 비어 있어도 대상이 지나치게 각진 상태로 배열되어 있으면, 이런 작품들도 내게는 불편하다.
 
그리하여 내 마음에 드는 것은 그려진 물건이 그림 중앙이나 한쪽으로 놓여 있지만 물건의 좌우나 상하의 어느 한 편이 비어 있고, 나아가 그 배치가 느슨하면서도 일정한 질서를 가진 그림들이다. 이렇게 그려진 그림들이 드러내는 것은 무엇일까? 그의 그림에서 내가 가장 짙게 느끼는 감정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란디의 정물화에서 내가 느끼는 첫 감정은 심리적 안정감이다.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우선 마음부터 밝아져 온다. 그래서 편안하다. 아마도 그것은 색채의 온화함에서 올 것이다. 그의 색채는 원색적이지 않다. 그것은 빨강이나 파랑처럼 그리 강렬하지도 않고, 음울할 정도로 탁하거나 어둡지도 않다. 대체로 그것은 희거나 연노랑에 가깝고, 회색이되 밝은 회색이며, 나무빛이되 부드러운 갈색을 띤다. 아니면 살 색이거나 베이지색을 띨 때도 있다. 물론 검은색도 있다. 하지만 검은 병이나 물건에는 희거나 연노란 색이 덧칠해져 있다. 그리하여 모란디의 색채는 전체적으로 밝고 투명하여 적당해 보인다. 말하자면 그것은 ‘누그러진 색채’인 것이다.
 
문광훈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충북대 독일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려대에서 독문학을 공부한 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에서 독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수영론, 김우창론, 페터 바이스론, 발터 벤야민론 등 한국문학과 독일문학, 예술과 미학과 문화에 대해 20권 정도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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