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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유지…憲 “훼손된 명예 회복 어려워”

헌법재판소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한다'는 형법 307조 1항에 대해 합헌이라고 25일 결정했다. 최근 성폭력·학교폭력 ‘미투’가 이어지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여부에 관심이 쏠렸지만, 9명의 헌법재판관은 격론 끝에 5대 4로 유지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미투 운동'에 폐지론 제기, 헌재는 5대 4 '합헌'

“수의사 오진” SNS 올리려다 헌법소원까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유남석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헌법재판관들이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뉴스1

헌재는 25일 A씨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2년 이하 징역 또는 금고, 5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형법 제307조 1항은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 대해 재판관 5명 다수 의견으로 기각했다. 다만 재판관 4명은 반대의견을 내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다.
 
A씨는 2017년 8월 동물병원에서 반려견 치료를 받은 후 부당한 진료로 반려견이 불필요한 수술을 하고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됐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의사의 잘못된 진료행위를 SNS에 올리려다가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되자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며 2017년 10월 헌법소원을 냈다.

 

“한번 훼손된 명예는 회복 어렵다”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 5명은 해당 조항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지 않는다"고 봤다. 헌재는 “사실 적시 매체가 매우 다양해짐에 따라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의 전파속도와 파급효과는 광범위해지고 있다. 일단 한번 명예가 훼손되면 완전한 회복이 어렵다는 외적 명예의 특성상,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행위를 제한해야 할 필요성은 더 커지게 됐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 인정되는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명예훼손으로 인한 피해를 민사소송으로 충분히 보상받기 어렵다는 점도 고려됐다.

 

“개인의 사생활 낱낱이 드러날 수도”

재판관 5명은 또 해당 조항을 통째로 위헌 결정할 경우 나타날 부작용도 우려했다. 헌재는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적 명예가 침해되는 것을 방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사적 비밀이 아닌 사실’에 대해서만 적시가 가능하도록 일부 위헌 결정을 하기에는 그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고 했다. 헌재는 또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한계로 타인의 명예와 권리를 선언하는 점 ▶사실적시 명예훼손이 가해자의 사적 제재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는 점 ▶개인의 약점과 허물을 적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도 들었다.
 

소수의견 4명 ”형사 처벌은 과해…일부 위헌“

25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4명의 재판관들이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그 중 한 명인 이석태 헌법재판관.뉴스1

25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4명의 재판관들이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그 중 한 명인 이석태 헌법재판관.뉴스1

반면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해당 조항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일부 위헌으로 결정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유 재판관 등은 해당 조항이 개인의 인격권을 보호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은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며 헌법이 명예훼손의 구제수단으로 민사상 손해배상을 명시할 뿐 형사 처벌까지 예정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형사 처벌이 아니더라도 정정보도와 반론보도 청구, 손해배상 청구 등을 통해 명예훼손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공직자 비판 위축돼” 폐지 의견

공익적 감시와 비판이 위축될 우려도 제기했다. 유 재판관 등은 “국가·공직자가 표현 행위에 대한 형사 처벌의 주체가 될 경우 국민의 감시의 비판은 위축될 수 밖에 없다”며 “감시·비판을 봉쇄할 목적으로 진실한 사실적시 표현에 대해 형사 절차를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마저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또 “수사·재판에 회부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축효과가 발생한다”며 공익성 입증의 불확실성으로 표현의 자유 위축 효과는 더 커지게 된다"고 덧붙였다. 유 재판관 등은 "‘진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 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법익인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의 사실적시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될 수 있다“며 해당 조항 중 ‘진실한 것으로서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 부분만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법에서 '미투' 피해자 보호 가능하다 본 듯"

헌재 결정에 대해 김대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성폭력 미투나 학교폭력 폭로가 이어지면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피해 호소자들을 옥죄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다"며 "하지만 현행 법 조항에서도 공익 목적의 사실 적시는 실무적으로 거의 처벌되지 않는 편이어서 폐지의 필요성이 크지 않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론 해당 조항이 폐지되는 방향으로 가겠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등 구제 수단이 철저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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