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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김대중의 법정진술 육성자료 최초공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관장 한석희)은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사건 45주년을 맞이해 이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김대중의 1976년 12월 20일 항소심 최후진술 육성자료를 최초로 공개한다. 김대중은 정치적 탄압을 받아 여러 번 재판을 받았는데, 법정에서 했던 진술내용이 음성자료로 남아 있는 것은 이 자료가 유일하다.
 
1976년 3월 1일 명동성당에서 김대중, 윤보선, 함석헌, 정일형, 윤반웅, 안병무, 이문영, 서남동, 문동환, 이우정 등 한국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10명이 서명한 민주구국선언문이 발표됐다. 3.1 민주구국선언은 1975년 긴급조치 9호 선포 이후 크게 위축돼 있던 한국 민주화 운동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당시 유신 정권은 이 선언을 ‘정부전복 선동사건’으로 규정하고 관계자들을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김대중은 1976년 3월 8일 연행돼 3월 10일 구속됐다. 김대중은 8월 28일 1심에서 징역 8년, 자격정지 8년을 선고받자 항소해 12월 20일 2심 최후진술을 했다. 그리고 12월 29일 2심에서 징역 5년, 자격정지 5년을 선고받았다. 김대중은 이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으나 1977년 3월 22일 상고가 기각돼 형이 확정됐고 4월 14일 진주교도소로 이감됐다. 1978년 12월 19일 진주교도소에서 서울대학교 병원 감옥병동으로 이감됐고 1979년 12월 27일 형집행정지로 석방될 때까지 이 사건으로 2년 10개월여 동안 수감 생활을 하게 됐다.
 
1976년 12월 20일 김대중의 항소심 최후진술은 1시간 정도 이뤄졌으며 전체 내용이 음성자료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 이번에 공개하는 내용은 4개 주제에 걸쳐 있으며, 총 4분 10초 분량이다.  
 
이 사건으로 재판을 받은 인물들은 정계, 종교계, 학계의 명망있는 인사들로서 법정에서 유신 체제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공개된 자료를 살펴보면, 특히 김대중은 법정진술을 통해 유신 체제가 내세운 ‘한국적 민주주의’의 내용과 성격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비판하면서 민주주의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크게 어필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이번에 공개한 자료의 의미를 네 가지로 설명했다.
 
첫째로, 김대중의 법정진술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음성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김대중은 평생 6년 동안 수감 생활을 했으며, 그중에서 박정희 정권에는 3번, 전두환 정권에는 1번 감옥 생활을 했다. 이 중에서 법정진술 내용이 음성자료로 남아 있는 경우는 이번에 공개한 1976년 12월 20일 3.1 민주구국선언사건 항소심 최후진술이 유일하다.
 
둘째로, 3.1 민주구국선언사건 재판과정에서 한 김대중의 진술 내용은 민주주의 교과서라고 불렸을 정도로 당시에 대단히 유명했다. 이번에 공개한 자료를 통해 당시 김대중의 육성 진술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셋째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크게 탄압을 받았기 때문에 관련 자료가 많이 폐기됐다. 특히 현재 남아 있는 음성 및 영상 자료는 드물다. 그런 점에서 1970년대 유신 정권 시절, 유신 체제의 문제점을 비판한 이 음성자료는 역사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넷째로, 1976년은 김대중이 52세일 때이다. 김대중은 청년, 장년 시절에 당대 최고의 대중연설가로서 큰 명성을 쌓은 인물이다. 당시 김대중의 활동을 알려줄 수 있는 음성·영상 자료가 제대로 발굴되지 않아 요즘 사람들은 노년의 김대중만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설적인 대중연설가로서 유명했던 김대중의 진면목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 음성자료를 들으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격정에 찬 52세 김대중의 목소리를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법정진술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중연설을 하듯이 당당하게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김대중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 녹취문
(1) 세계의 150개 국가 중에서, 지금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는 30개 나머지는 공산주의 국가이거나 대부분 비민주 독재하는 국가들인데, 그런 나라에서 지금 한국이 가장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망이 있는 나라라고 지금 부각이 되고 있다 이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뭐라고 하냐면 한국은 조금만 도와주면 희망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자기운명을 자기 힘으로 결정하는 나라이기 때문에 3.1 선언같이 좋은사람들이 우리나라 한국에 있다는 이런 사고방식들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국은 희망이 있는 나라다. 이렇게 부각되어가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2) 원칙은 민주주의의 이외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 민주주의만이 우리 국민의 국민적 합의의 근원입니다. 다른 어떤 주의 갖고도 3천 500만 국민을 합의시킬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 외에는 없습니다. 또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 할 수 있는 능력을 이미 보였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할 수 있는 위대한 국민이라는 역량을 발휘했고 그것이 바로 2000년 동안 이 나라를 지켜오고 또 아까 말한 동학농민, 3.1운동 이런데서 면면히 흘러가는 우리 국민들의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우리 내부끼리 지금 서로 대립해가지고 쓸데없이 이와 같이 정력을 낭비하는 이것을 타개하는 일도 민주주의요, 평화적 통일과 민주적 통일을 성취하는 길도 민주주의다. 이것이 바로 3.1민주구국선언의 정신인 것입니다. 이것을 할 수 있는 힘을 능력을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 국민인 것입니다.
 
(3) 우리가 지난번에도 말했지만 폭력으로 현 정부의 독재를 앗아갈 수가 없습니다. 인도에서 간디가 반영 투쟁할 때 절대 폭력을 금지하면서 줄을 지어서 감옥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감옥을 인도 국민으로 채우자. 그러면 영국은 굴복 안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폭력을 하면 그것은 영국이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 사람들이 무력으로 탄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비폭력으로 가돼 투쟁을 해서 감옥으로 들어가자. 마틴 루터 킹이 미국서 흑인을 위한 인권운동을 한 것은 똑같은 일이었습니다. 3,500만 국민의 1할까지 갈 것도 없습니다. 1부 35만명, 아니 1,000분의 1의 3만 5천, 이 1,000분의 1만 감옥 갈 각오한다 라면 우리가 이 정부을 반성시켜가지고 능히 우리의 목적을 평화적으로 달성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4) 나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현 정부가 나를 구속했을 뿐 아니라 나의 생명까지도 없애려고 노력했어요. 또 지금도 그 의도가 결코 소멸됐다고 보지 않습니다. 또 얼마든지 나를 죽일 수가 있습니다. 나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일을 나한테 하더라도 내가 지금 말한 이 국민에 대한 나의 충성심, 우리들 후손들에 대한 나의 책임감을 이것은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과 내 양심에 대하여 나는 이 결정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나는 바꿀래야 바꿀 수가 없는 사람입니다. 나는 1971년에 명색이 대통령 후보로 나와서 46퍼센트, 540만이 나를 민주주의의 십자가를 지라고 지지해줬습니다. 내가 이 540만이나 되는 국민을 어떻게 배신할 수가 있습니까. 나는 국민에 대한 책임감, 하느님에 대한 책임과 나는 이 나라의 민주회복을 위해서, 민주주의적 평화적 통일을 위해서, 내가 내 일생을 최선을 다해서 바칠 수밖에 없습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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