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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뱉을까 혀 끊어냈다"···홍범도 장군 가족에 건국훈장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여천(汝千) 홍범도 장군의 부인과 장남이 3ㆍ1절을 맞아 건국훈장을 받는다. 홍범도 장군의 부인 단양이씨(丹陽李氏, 실명 기록 부재)는 옥중 고문으로 숨졌고, 장남인 홍양순 선생은 일본군과 교전 중 순국했다.
 

부인 일경 고문에 숨지고, 장남은 교전중 순국
의병활동 중 병사한 차남 홍용환은 "포상 보류"

국가보훈처는 25일 홍범도 장군의 부인 단양이씨와 장남 홍양순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KBS 1TV가 지난해 10월 24일 특집 '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에서 장군의 생전 영상을 최초로 공개한 모습. [KBS 제공=연합뉴스]

국가보훈처는 25일 홍범도 장군의 부인 단양이씨와 장남 홍양순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한다고 밝혔다. 사진은 KBS 1TV가 지난해 10월 24일 특집 '민족 영웅 홍범도 장군'에서 장군의 생전 영상을 최초로 공개한 모습. [KBS 제공=연합뉴스]

25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두 사람은 오는 102주년 3ㆍ1절 독립유공자 275명(건국훈장 136명, 건국포장 24명, 대통령표창 115명)에 포함됐다. 이번 포상 대상자 중 생존 지사는 없다.
 
홍 장군의 부인 단양이씨는 1908년 3월 함경남도 북청에서 남편의 의병 활동을 빌미로 일경에 체포돼 취조를 받던 중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숨졌다. 1958년 『홍범도 일지』를 필사했던 이인섭 선생의 자료(『이인섭과 독립운동자료집 3권』, 2011년)에는 당시 상황이 구체적으로 묘사돼 있다.  
 
"1906년 2월 18일이었다. 우리 의병대는 용문동에 들어가서 류하게 되었다. 이때에 더뎅장 거리에 적들이 당도하여서 홍범도한테 귀순할 것을 강요하였고 위협하였으나 홍범도 장군은 귀순하라는 편지를 가지고 오는 놈 7∼8명을 처단하면서 강경히 항의하였고 나중에는 기묘한 수단으로 놈들을 기만하여서 섬멸하였다. 이 사변 시에 그의 부인 단양이씨는 적에게 잡혀서 비인간적 악행을 당하다 못하여서 자기 혀를 자기 이빨로 끊으면서 군대 비밀을 누설치 아니하였다. (중략)
내 부인은 악형을 당하다 못하여서 죽으면서 이렇게 글을 썼습니다. 즉 "여자나 남자나 아무런 영웅호걸이라도 실 끝 같은 목숨이 끊어지면 그뿐인 것이다. 내가 만일 글을 너희들 시키는 대로 쓴다고 하여도 영웅호걸인 그는 아니 들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나와 말하지 말고서 너희들 마음대로 하여라" 하였다. (중략)
그러니 저 악독한 놈들은 나의 처 발가락 두 사이에다가 심지를 끼워 놓고서 불을 달아 놓는 등 별별 악형을 감행하였다. 그러나 내 부인은 절반 죽게 되니 혀를 끊어 벙어리가 되면서도 변절치 아니하고 조국을 위하여 보통 인민을 위하여 원한에 세상을 떠났다."
 
독립기념관은 지난해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과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아 독립전쟁 현장을 살펴보는 특별기획전시를 했다.   사진은 홍범도 일지. [독립기념관 제공=연합뉴스]

독립기념관은 지난해 봉오동·청산리 전투 100주년과 한국광복군 창설 80주년을 맞아 독립전쟁 현장을 살펴보는 특별기획전시를 했다. 사진은 홍범도 일지. [독립기념관 제공=연합뉴스]

홍 장군의 장남 홍양순 선생은 1907년 북청에서 홍범도 의병부대에 들어가 이듬해 함남 정평에서 일본군과 교전 중 순국했다. 『홍범도 일지』 필사본에는 홍 장군이 당시 상황을 그린 대목이 나온다.  
 
"정평 바맥이에서 500명 일병과 쌈하여 107명 잃고 내 아들 양순이 죽고, 거차 의병은 6명이 죽고 중상되기가 8명이 되었다. 그때 양순은 중대장이었다. 5월 18일 12시에 내 아들 양순이 죽었다."
 
1943년 카자흐스탄에서 숨진 홍범도 장군은 1963년 건국훈장에 추서됐다. 하지만 그간 홍 장군 가족의 독립운동사는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 이와 관련, 보훈처 관계자는 "독립유공자 포상은 기본적으로 본인이나 유족의 신청이 원칙인데, 먼 이국땅에 사는 유족들이 벌써 3대가 넘어가다 보니 신청 건수 자체가 계속 줄고 있다"며 "정부가 주도해 자료 등을 토대로 발굴 작업한 결과가 이번 포상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마찬가지로 의병 활동을 하다가 1921년 21살의 나이로 병사한 차남 홍용환 선생은 이번 포상 대상에서 빠졌다. 보훈처 관계자는 "이번에 함께 심사를 했지만, 자료가 미비해 포상이 보류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고려인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광주고려인마을의 '월곡동 복합아카이브센터' 개관 당시 공개된 사진. 1950년대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하는 고려인과 우리말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고려인마을 제공=연합뉴스]

지난해 12월 고려인 역사와 문화를 알리는 광주고려인마을의 '월곡동 복합아카이브센터' 개관 당시 공개된 사진. 1950년대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하는 고려인과 우리말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 [고려인마을 제공=연합뉴스]

현재 정부는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홍 장군 유해 봉환은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역사 바로 세우기' 차원에서 처음 추진됐으나, 현지 동포들이 '카자흐스탄 동포들의 상징'과 같은 곳이라며 보존을 희망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묘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며 유해 봉환 재추진 분위기가 형성됐다. 보훈처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으로 연기된 카자흐스탄 대통령 방한에 맞춰 유해 봉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수유리 독립유공자 묘역 등 국가관리

한편 이날 보훈처는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수유리 독립유공자 합동묘역'과 경기도 안성시 공설묘지에 있는 '전몰군경 합동묘역'을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한다고 밝혔다. 전국에 산재된 합동묘역 중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된 첫 사례다.
 
현재 수유리 묘역에는 김창숙ㆍ손병희ㆍ신익희ㆍ여운형ㆍ이시영ㆍ이준 등 독립유공자 32명이 안장돼 있고, 안성 묘역에는 6ㆍ25 참전용사 58명이 안장돼 있다.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되면 묘역 개ㆍ보수와 전담 관리직원 배치, 안내ㆍ편의시설 설치 등이 이뤄진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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