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엔 뒤꿈치가 부서진 채 발견됐던 왕비 신발 한쌍은 수십년에 걸친 연구와 복원을 통해 현재 거의 완전한 형태를 찾았다. [사진 국립공주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c1542298-a50d-4342-a7bd-a3d028af3d4a.jpg)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엔 뒤꿈치가 부서진 채 발견됐던 왕비 신발 한쌍은 수십년에 걸친 연구와 복원을 통해 현재 거의 완전한 형태를 찾았다.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발굴 50년, 역사를 바꾸다] ⓷·끝
대표적인 성과가 왕비의 금동신발이다. 왕비의 발치에서 나란히 발견된 한쌍은 출토 당시 뒷부분이 파손돼 앞부분만 남아 있었다. 젊은 학예사들이 잔존물 속 깨알 같은 파편들을 모아 한땀한땀 끼워 맞춘 덕에 2017년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특히 미세하게 남아있던 직물 연구를 통해 금동신발 안에 금사(金絲)를 엮은 신발을 별도로 신었던 것도 입증됐다. 최근 전북 고창과 전남 나주에서 각각 출토된 백제 금동신발 2건이 처음으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예고되면서 삼국 특유의 금동신발 장례 문화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무령왕릉 발굴 당시 왕비 발치에서 은제장식과 함께 발견된 금동신발 한쌍(표시 부분).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a0e64dc2-9a93-4ff2-b199-0e24c66c0744.jpg)
무령왕릉 발굴 당시 왕비 발치에서 은제장식과 함께 발견된 금동신발 한쌍(표시 부분).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 뒤꿈치가 부서져 없어진 채 발견됐던 왕비 금동신발 한쌍.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a7ca1e04-6a8e-4559-9957-81e3cceaf601.jpg)
1971년 무령왕릉 발굴 당시 뒤꿈치가 부서져 없어진 채 발견됐던 왕비 금동신발 한쌍. [사진 국립문화재연구소]
![무령왕릉 발굴 당시 바닥 잔존물에 섞여 수거됐던 왕비 금동신발의 파편들. [사진 국립공주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afeb0587-a425-4c56-97b7-8315254d5493.jpg)
무령왕릉 발굴 당시 바닥 잔존물에 섞여 수거됐던 왕비 금동신발의 파편들.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뒤꿈치가 부서져 없어진 채 발견됐던 왕비의 금동신발을 1985년 합성수지를 이용해 일부 복원했던 모습. [사진 국립공주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99e852b3-dec6-4ead-892a-b4df1e4ab28e.jpg)
뒤꿈치가 부서져 없어진 채 발견됐던 왕비의 금동신발을 1985년 합성수지를 이용해 일부 복원했던 모습.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발굴 당시만 해도 국내엔 제대로 훈련받은 문화재 보존과학자가 없었다. 당시 정부의 긴급 호출을 받아 김유선 박사(원자력연구소)를 반장으로 한 보존과학반이 꾸려졌지만 자연과학자 중심의 응급 보존처리엔 한계가 있었다. 일부 금속품의 녹 처리가 잘못돼 원형이 훼손되거나 추가 정보를 얻을 가능성이 사라지기도 했다. 1973년 처음 나온 무령왕릉 보고서는 “조속히 연구실험기기, 시설, 숙련기술자들이 마련돼 장기적인 계획 밑에 모든 문화재가 다루어질 여건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이는 경주 천마총(1973)·황남대총(1974) 발굴과 맞물려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가 됐다. 76년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과학실이 마련되면서 무령왕릉 관련 과학연구에서 앞서 가던 일본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특히 적외선 조사 등을 통해 91년 무령왕릉 출토 목관의 수종이 일본에 자생하는 금송(金松)이란 사실을 확인(경북대 박상진 교수)한 것은 우리 보존과학에 의한 대표 성과로 꼽힌다.
![무령왕릉 발굴 당시 무덤 안에서 유물을 수습하는 모습. 아래쪽에 봉황머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의 왕비 베개가 보인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eee83baf-3f12-4eab-b742-3b5198baaf10.jpg)
무령왕릉 발굴 당시 무덤 안에서 유물을 수습하는 모습. 아래쪽에 봉황머리가 떨어져 나간 상태의 왕비 베개가 보인다. [중앙포토]
![무령왕릉 발굴 당시 출토 유물 모습. 뒤쪽에 보이는 게 왕비 베개에 부착됐다가 따로 떨어져서 발견된 봉황머리 한쌍이다.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c4092ce9-b887-4766-8b10-86dd7a17654a.jpg)
무령왕릉 발굴 당시 출토 유물 모습. 뒤쪽에 보이는 게 왕비 베개에 부착됐다가 따로 떨어져서 발견된 봉황머리 한쌍이다. [중앙포토]
최근엔 컴퓨터단층촬영기(CT), 나노 CT 등 첨단 장비에 힘입어 무령왕과 왕비의 베개 및 발받침의 연륜연대 측정이 시도되고 있다. 연륜연대란 나무의 나이테가 일 년에 하나씩 증가하는 것에 착안해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인데 나이테 두께나 조직의 치밀함은 나무가 자라는 지역의 기후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주박물관 곽홍인 학예연구사는 “수종과 기후 분석을 통해 문물 교류의 흐름을 추정할 수 있다”면서 “범죄 사실을 과학수사로 밝혀내듯 보존과학을 통해 그간 문헌 연구 성과를 뒷받침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무령왕릉 왕비 베개의 CT 이미지 중 입체사진. [사진 국립공주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b1097311-e91b-45a6-b395-91678f2cc87f.jpg)
무령왕릉 왕비 베개의 CT 이미지 중 입체사진.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 왕비 베개의 CT 이미지 중 정면도. [사진 국립공주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08184cee-b7a3-4694-8036-ae5d1dc639bd.jpg)
무령왕릉 왕비 베개의 CT 이미지 중 정면도.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관재를 활용해 관 형태를 복원한 모습. [사진 국립공주박물관]](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d7dff283-c0ed-4a78-aae8-e85540d8c44a.jpg)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과 왕비의 관재를 활용해 관 형태를 복원한 모습. [사진 국립공주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