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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눈물 훔치며 넘었던 그 고갯길, 이청준의 ‘눈길’을 걸었다

작가 이청준의 고향인 전남 장흥 진목마을. 마을에서 시작한 길이 사진에서 보이는 고개를 넘너 산 뒤로 이어진다. 밤새 눈 내린 어느 겨울날 새벽. 고등학생 이청준이 어머니와 발자국을 남긴 눈길이자 어머니 홀로 눈물 훔치며 되밟은 고갯길이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작가 이청준의 고향인 전남 장흥 진목마을. 마을에서 시작한 길이 사진에서 보이는 고개를 넘너 산 뒤로 이어진다. 밤새 눈 내린 어느 겨울날 새벽. 고등학생 이청준이 어머니와 발자국을 남긴 눈길이자 어머니 홀로 눈물 훔치며 되밟은 고갯길이다. 드론으로 촬영했다.

좀처럼 눈이 쌓이지 않는 고장이라고 했다. 남도 끝자락 이 마을에선 허공의 눈은 종종 볼 수 있어도 땅바닥의 눈은 보기 힘들다고 했다. 겨울 끝머리, 그 남도 마을에 춘설치고 제법 큰 눈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소문하니 그 고갯길도 꽤 눈이 쌓였을 것이라 했다. 인적 드문 숲길이어서 인연이 닿으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발자국을 남길 수 있겠다 싶었다. 
 
2월 17일 이른 아침 촬영 장비 챙겨 남도로 향했다. 전남 장흥군 회진면 진목마을. 소설가 고(故) 이청준(1939∼2008)의 고향이자 소설 ‘눈길’의 현장이다. 그 옛날 동트기 전 ‘까까머리’ 이청준이 어머니와 나란히 걸었던 길, 읍내 차부로 아들을 바래다주고 당신 혼자 눈물 뿌리며 돌아왔던 길. 그 사연 많은 길을 걸었다. 10년쯤 전부터 넘었던 고갯길이나, 이번에야 눈 쌓인 그 길에 발자국을 남겼다.
 

이청준의 눈길

이청준의 그 눈길에 모처럼 눈이 쌓였다.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눈길을 걸으러 갔다. 첫 고개를 넘어 드론을 띄웠다. 별볼일 없는 산길도 길이어서, 모퉁이마다 사무치는 사연이 쟁여 있다.

이청준의 그 눈길에 모처럼 눈이 쌓였다. 눈이 녹기 전에 서둘러 눈길을 걸으러 갔다. 첫 고개를 넘어 드론을 띄웠다. 별볼일 없는 산길도 길이어서, 모퉁이마다 사무치는 사연이 쟁여 있다.

‘눈길’은 이청준이 1977년 발표한 자전소설이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는 명작으로, 작가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1957년 겨울날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광주에서 유학 중이던 이청준은 어머니 홀로 계신 고향 집이 팔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무슨 일인가 싶어 내려왔더니 어머니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집에서 저녁을 해준다. 이튿날 새벽 모자는 시오리 고갯길을 걸어 읍내로 간다. 밤새 내린 눈이 쌓인 날이었다. 아들은 버스를 타고 광주로 가고 어머니는 혼자 눈길을 걸어 돌아간다.  
 
언뜻 소소한 일화로 읽힌다. 하나 여기엔 서글픈 사연이 숨어 있다. 집은 더이상 이청준의 집이 아니었다. 객지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하룻밤이라도 집에서 재우고 싶어 어머니가 주인에게 부탁했었다. 짐짓 모른 체했던 아들도 실은 눈치로 알고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와 아들은, 꼭 필요한 대화는 삼간 채 만났다 헤어졌다. 아들 떠나보내고 혼자 그 눈길을 되밟을 때 당신의 처참한 심경이 소설 막바지 통곡처럼 쏟아진다. 
 
“눈길을 혼자 돌아가다 보니 그 길엔 아직도 우리 둘 말고는 아무도 지나간 사람이 없지 않았겄냐. 눈발이 그친 그 신작로 눈 위에 저하고 나하고 둘이 걸어온 발자국만 나란히 이어져 있구나.… 굽이굽이 외지기만 한 그 산길을 저 아그 발자국만 따라 밟고 왔더니라.…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 울기만 했겄냐. 오목오목 디뎌논 그 아그 발자국마다 한도 없는 눈물을 뿌리며 돌아왔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부디 몸이나 성히 지내거라.” 
이청준 생가. 옛날 가세가 기울어 팔았던 그 집. 장흥군청이 사서 관리하고 있다. 이청준 소설에는 엄청나게 큰 집처럼 묘사되지만, 소설처럼 넓지는 않다. 마루에 방명록이 있다. 방명록을 들추다 선생을 기리는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청준 생가. 옛날 가세가 기울어 팔았던 그 집. 장흥군청이 사서 관리하고 있다. 이청준 소설에는 엄청나게 큰 집처럼 묘사되지만, 소설처럼 넓지는 않다. 마루에 방명록이 있다. 방명록을 들추다 선생을 기리는 추모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이청준은 한동안 고향을 찾지 않았다. ‘눈길’을 비롯해 ‘선학동 나그네’ ‘축제’ ‘흰옷’ ‘잃어버린 절’ 등 고향을 소재로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오랜 세월 고향 땅을 밟지 않았다. 고향 마을을 찾아서도 옛날 그 집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이청준이 제집에 다시 들어간 건, 장흥군청이 집을 사서 생가로 복원한 2005년 이후의 일이었다. 누구에게나 상처로 남은 풍경이 있게 마련이다. 불행히도 이청준에겐 그게 고향이고 집이었다. 
 

오늘 걷는 눈길 

이청준 눈길의 두 번째 고개를 내려오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낼 때의 설렘도 잠깐. 그 옛날 어머니가 뿌렸던 눈물이 자꾸 떠올랐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깊은 숲에 울음소리처럼 울렸다.

이청준 눈길의 두 번째 고개를 내려오고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낼 때의 설렘도 잠깐. 그 옛날 어머니가 뿌렸던 눈물이 자꾸 떠올랐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깊은 숲에 울음소리처럼 울렸다.

진목리는 갯마을이다. 뒷산에 참나무가 많아 진목(眞木) 마을이었다. 득량만 바다가 훤히 내다보이는 볕 바른 갯마을에서 이청준은 태어났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 중학생부터 타향 생활을 했으니 고향에 머문 시절은 15년이 채 안 된다. 그럼에도 그는 고향 장흥을 배경으로 30편의 작품을 남겼다.  
영화 '천년학' 촬영지. 이청준 고향 마을 진목리 어귀에 있다. 자동차로 5분 거리다. 영화 '천년학'은 이청준 소설 '청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삼았다. 촬영지 오른쪽으로 관음봉이 누워 있는데 관음봉 자락의 물 그림자가 학처럼 보였다고 한다.

영화 '천년학' 촬영지. 이청준 고향 마을 진목리 어귀에 있다. 자동차로 5분 거리다. 영화 '천년학'은 이청준 소설 '청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삼았다. 촬영지 오른쪽으로 관음봉이 누워 있는데 관음봉 자락의 물 그림자가 학처럼 보였다고 한다.

이청준은 5남3녀 중 넷째였다. 어렸을 때 형제 둘이 죽었고, 아버지도 1946년 돌아갔다. 이청준은 여덟 살부터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문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서울대에 입학하고서 잠잘 데가 없어 강의실을 전전하며 쪽잠을 청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청준 묘소. 이청준 고향 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멀리 득량만 바다가 보이는 야트막한 해안 언덕배기다. 사진 맨 앞의 봉분에 이청준의 어머니 김금례 여사가 누워있다. 아래 오른쪽 묘가 이청준의 묘고, 옆의 묘는 이청준의 아내 남경자씨의 가묘다.

이청준 묘소. 이청준 고향 마을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다. 멀리 득량만 바다가 보이는 야트막한 해안 언덕배기다. 사진 맨 앞의 봉분에 이청준의 어머니 김금례 여사가 누워있다. 아래 오른쪽 묘가 이청준의 묘고, 옆의 묘는 이청준의 아내 남경자씨의 가묘다.

이청준의 어머니는 1994년 95세를 일기로 돌아갔다. 말년에 치매로 고생했었다고 한다. 장편 『축제』가 어머니 상을 치렀을 때 이야기다. 이청준의 아호가 ‘미백(未白)’이다. 노모 앞에 하얗게 센 머리를 보이기가 송구해 스스로 ‘아직 희지 않다’는 뜻의 미백이라 불렀다. 이청준은 2008년 7월 31일 돌아갔고, 고향 마을 근처 어머니가 누운 자리 바로 아래에 누웠다. 마을 어귀 갯가에 영화 ‘천년학’ 촬영지가 남아 있다. 이 영화의 원작이 이청준 단편 ‘선학동 나그네’다. 
이청준 눈길 두 번째 고갯마루에서 내다본 천관산.

이청준 눈길 두 번째 고갯마루에서 내다본 천관산.

눈길은 2012년 장흥군청이 복원했다. 이청준 생가에서 옛날 대덕읍 버스 정류장이 있던 연지삼거리까지 약 4.5㎞ 길이다. 고개 두 개를 넘는 산길이다. 쉬엄쉬엄 2시간 가까이 걸린다. 산을 돌아가는 도로가 난 뒤로 잊힌 길이 됐으나 예전에는 회진면에서 대덕 읍내로 가려면 죄 이 고개를 넘었다. 두 번째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장흥의 명산 천관산(724m)이 훤히 내다보인다.
 
10년쯤 전 복원된 눈길을 걸었을 땐 한여름이었다. 길숲 풀 냄새가 기억난다. 이 겨울 끄트머리 다시 길을 걸을 땐 눈에 발자국을 새겼다. 옛날 어머니처럼 발자국을 되밟아 돌아오진 않았다. 그래도 그 찬 새벽의 설움은 느낄 수 있었다. 뽀드득뽀드득 눈 밟는 소리가 어머니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이청준의 눈길 지도. 그래픽=허윤주

이청준의 눈길 지도. 그래픽=허윤주

 
장흥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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