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강수 논설위원
‘민정수석 왕따’ 사건 전말 밝히면
대통령 인사 의중 드러날까 걱정
권력의 최후 무기인 침묵 택한 듯
탄식도 권력을 쥔 쪽에서 나오면 결이 다르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가 마이크가 켜진 줄 모르고 “부산을 또 가야 되겠네. 허 참~”이라며 혼잣말을 한 데선 목가적 내음이 난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의 통과 불발로 다시 부산에 가서 설명해야 하는 게 귀찮다는 의미로 들린다.
허 참~ 소리는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북한군 병사의 ‘헤엄 귀순’은 기강해이에 빠진 군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좀체 잡히지 않으면서 K방역은 탈색됐고, 민생은 고난의 행군의 연속이다. 사법부 안의 진영 대결과 분열상도 극심하다. 이 나라가 ‘허 참~ 공화국’이라도 된 듯하다.
근래 장탄식의 주연은 신현수 민정수석이다. 박범계 장관이 검사장급 인사에서 그를 패싱한 게 화근이었다. 신 수석이 반(反)윤석열 계열의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추미애 라인 대검 참모진을 바꿔 검찰총장의 수사 지휘권을 정상화하려다 벽에 부닥친 게 요체다. 신 수석의 한 측근은 “처음부터 불안한 (청와대) 입성이었다. 대통령이 직접 도와달라는데 공직자가 어떻게 거절하느냐며 들어가더라. 그래도 몇 달은 버틸 줄 알았는데 임명 후 40여일만에 사달이 났다”고 말했다. 인사 패싱만으로는 문재인 대통령의 신뢰를 받는 신 수석 전격 사의 미스터리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사적 모멸감보다 더 중요한 공적 문제가 ‘대통령 패싱’ 의혹이다. 법무부가 인사 발표를 먼저 하고 하루 뒤 대통령이 사후 승인했다면 법 절차 위반이다.
“신 수석이 중대한 절차적·법적 하자를 확인하고 사석에서 장관 감찰까지 거론한 것은 맞다. 하지만 박 장관이 밀어붙인 인사안은 문 대통령과도 이해관계가 일치한다. 어쩌면 신 수석이 미운 오리새끼로 왕따를 당한 것일 수 있다. 일단 복귀하되 사의 철회는 아니라고 못박은 건 사실 관계는 다 드러났지만 대통령에게 누가 되진 않겠다는 의미로 안다.”(청와대 관계자)
실제로 월성 원전과 선거개입 사건의 정점엔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 말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두 가지 수사의 칼날을 막거나 속도라도 늦추려면 방패가 필요하고 윤 총장의 고립무원 상태도 유지하는 게 낫다. 이 점에서 문 대통령도 법무부 인사안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결국 청와대가 “인사 재가 과정은 통치 행위”라며 함구하는 이유는 투명하게 공개할 경우 청와대 내 권력 구도와 암투, 문 대통령의 속내가 바깥에 날것 그대로 드러날 수 있어서일 것이다. 하지만 감추면 감출수록 의혹은 커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건이 그랬다. 문 대통령은 이번에도 침묵을 택했다. “침묵은 권력의 최후 무기다”(샤를 드골), “권력은 그 내면을 간파당해선 안된다”(엘리아스 카네티, 『군중과 권력』)는 가르침을 따랐다. 어느 쪽이 득이 될지 지금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간에도 문 대통령의 선택적 침묵은 몇 차례 논란이 됐다. 김학의·장자연 사건에 대해선 권력형 비리로 규정, 재수사를 공개 지시하고도 박원순·오거돈·안희정의 성폭력 문제에 대해선 끝까지 외면하고 회피한 게 대표적이다. 검찰의 산 권력 수사 과정을 짚다보면 문 대통령의 가장 큰 실수는 대통령 선거 공약 이행을 위한 정책 지시를 장·차관급 공무원들에게 내릴 때 “헌법과 법률의 적법절차를 지켜서 하라”는 전제적 지시를 생략한 게 아닐까 싶다. 현행범 체포 때 고지하는 미란다 원칙처럼 이 또한 법률로 제정해 놓는 건 어떨까. 검찰의 수사권을 박탈하기 위해 무리하게 제정 추진되는 법들보다 훨씬 나을 것 같다. 허 참~.
조강수 논설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