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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호의 퍼스펙티브] 북한·중국 눈치 보느라 국방력 강화 기회 잃고 있다

실패로 끝난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우리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됐다. "북핵을 이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는 운명 말이다. 이로써 우리는 중대 결단을 내려야 처지에 몰렸다. 북한의 핵 위협에 마냥 끌려다닐지, 아니면 다른 대안을 찾을 것인지.
이와 관련, 최근 각국의 외교·안보 전문가들이 중요한 해법을 제시해 관심을 끌고 있다. 유럽이 그렇듯 태평양 지역에서도 미국과 동맹국들이 핵 운용을 협의해 결정하는 '아시아 핵계획그룹 (Asian Nuclear Planning Group:ANPG)을 창설하자는 것이다.

워싱턴서 '북핵 관리론' 고개 들어
북한은 뒷전, 중국 경계는 최우선
'태평양억지구상', 안보 강화 도움
"핵운용, 미국과 동맹 협의" 제안도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는 중대 변화가 일어났다. 정상 간 담판을 통해 북한 비핵화를 추구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고 동맹과의 협조 속에서 전통적인 상향식 협상을 선호하는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트럼프 때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외교 정책을 펴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 주변에서는 어떤 변화가 예상되며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당일인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첫 기자회견을 열고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한국(Korea)란 단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로이터=연합]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취임 당일인 지난 1월 27일(현지시간) 첫 기자회견을 열고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한국(Korea)란 단어는 한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로이터=연합]

 
"북핵, 해결 아닌 관리 대상"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의 국무부 브리핑룸. 바로 전날 취임한 토니 블링컨 신임 국무장관이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무부 수장의 소신을 직접 들음으로써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적 지향점을 가늠할 의미 있는 자리였다. 블링컨이 가장 먼저 언급한 건 예멘 내전이었다. 그 뒤로 러시아·UAE·아프가니스탄 및 중국과 인도 문제가 거론됐다. 그러나 20분간의 기자회견 내내 '한국(Korea)'이란 단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2018년 4월에 있었던 마크 폼페이오 전임 국무장관의 첫 기자회견은 완전히 달랐다. 벨기에 브뤼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본부에서 이뤄진 기자회견의 주제는 두 개였다. 다름 아닌 NATO와 북핵 문제였다. 12분간의 회견 중 한국이란 단어는 9번이나 등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 비핵화를 어떻게 여기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8일 외교 전문지인 포린어페어스 웹사이트에는 주목할만한 글이 실렸다. '외교정책 해결론에 반대되는 사례'라는 제목의 글로 '왜 바이든 행정부는 글로벌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관리해야 하는가'라는 부제가 붙었다. 글의 핵심은 클린턴 이래 모든 미 행정부가 국제적 난제들을 억지로 풀려다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사안들은 해결 아닌 관리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필자는 북핵 문제를 대표적 사례로 꼽았다. 요컨대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해 보겠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논지와 함께 주목할 대목은 필자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상원 의원 시절, 외교담당 보좌관으로 5년 넘게 도왔던 리처드 폰테인 신(新)미국안보센터(CNAS) 대표라는 사실이다. 그가 바이든의 외교 브레인이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북핵 관리론'은 미 행정부의 현 시각을 반영하거나, 적잖은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게다가 미 외교의 투톱인 블링컨 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외교안보보좌관 모두 이란 핵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끈 장본인들이다. 이 때문에 북핵 정책 역시 모든 핵 프로그램 신고, 핵 활동 동결, 일부 핵탄두 폐기와 일부 제재 해제 순으로 진행되는 이란식 해법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블링컨은 지난 2018년 뉴욕타임스에 "북핵 문제에도 단계별 접근 방식인 이란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 글을 기고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에 착수하지 못했던 이란과는 달리 북한은 이미 30~60개의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이에 대한 부정적 의견도 많다. 게다가 이란 핵 외에도 중국 견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및 예멘 내전 사태에다 최근의 미얀마 내분까지 겹치면서 북핵 문제는 미 외교 순위에서 뒤로 밀릴 공산이 크다. 
지난 2013년 4월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두 나라 해병대가 경북 포항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지난 2013년 4월 한·미 연합훈련에 참가한 두 나라 해병대가 경북 포항시 해안에 상륙하고 있다. 사진=송봉근 기자

 
중국 견제 위해 2조4300억
특히 중국 견제는 트럼프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에서도 최우선 현안으로 통한다. 실제로 미 의회는 지난해 12월 '국방수권법'을 통과시키면서 '태평양억지구상 (Pacific Deterrence Initiative)'이란 이름으로 중국 견제를 위해 22억 달러(2조 4300여억원)의 예산을 추가 편성했다. 이 예산은 태평양 지역 내 중국에 대한 미국과 동맹국들의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따라서 이 돈은 동맹국과의 군사 훈련 강화와 함께 미사일 방어체계 증강 및 비행장·항구시설 확충 등에 쓰이게 돼 있다. 
2016년 9월 미 공군 전투기가 초계비행을 위해 오산 비행장에서 이륙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2016년 9월 미 공군 전투기가 초계비행을 위해 오산 비행장에서 이륙하고 있다. 사진=오종택 기자

여기서 주목해야 할 대목은 PDI를 우리 국방력 강화에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동맹국의 신뢰를 얻기 위해 큰돈을 쓰겠다고 나선만큼 국내 미군 시설을 확충하거나 첨단무기 개발 등에 도움을 얻을 길이 열린 셈이다. 실제로 국방수권법에는 일본과 장거리 대함 순항미사일을 공동 개발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일본으로서는 미국의 지원 아래 최첨단 순항미사일을 확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일본이 개발 중인 신형 극초음속 대함 순항 미사일. [방위장비청 제공]

일본이 개발 중인 신형 극초음속 대함 순항 미사일. [방위장비청 제공]

반면 한국은 이런 절호의 기회를 십분 이용하지 못할 게 분명하다. 이 예산은 동맹국과의 군사훈련 강화에도 쓰게 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키리졸브, 을지프리덤가디언 등 대규모 한·미 야외 훈련이 중단된 터라 한국군과 미군이 함께 호흡하며 한·미동맹의 방위력을 키울 기회가 사라졌다. 현 정부는 북한과 중국 눈치를 보느라 중단된 연합훈련을 되살리는 데 주저하고 있다. 
 
2020년 5월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추가 배치된 사드 발사대.  [사진= 국방부 영상공동취재단 제공]

2020년 5월 경북 성주군 사드 기지에 추가 배치된 사드 발사대. [사진= 국방부 영상공동취재단 제공]

"아시아 핵계획그룹 창설해야"
이렇듯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의 무게 중심이 북핵 해결에서 중국 봉쇄로 이동하는 가운데 최근 주목할만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 시카고국제문제연구소(CCGA) 주관 아래 각국 전직 고위 관리 16명으로 이뤄진 외교·안보 TF팀은 1년간의 토의 끝에 지난 11일 ‘아시아 핵계획그룹(ANPG)' 창설이란 대응책을 내놨다. 이들은 북핵 위협에 맞서기 위해서는 미국과 아시아 동맹국들이 머리를 맞대고 구체적인 핵 운용 정책들을 논의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제시한 ANPG는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미국을 위시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로 이뤄진 '핵계획그룹(NPG)'을 본뜬 것이다. NPG는 유럽에 배치된 전술핵을 어떻게 운용할지, 미국과 나토 동맹국들이 협의하도록 만들어진 기구다. 따라서 아시아판 NPG가 만들어지면 한국·일본·필리핀·호주 등 미 동맹국들도 태평양 심해에서 돌고 있을 핵 탑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앞으로 배치 가능성이 있는 중·단거리 핵미사일, 그리고 유사시 미 본토에서 공수해 올 전술핵 등의 운용 논의에 참여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 위협에 노출된 동맹국들로서는 미국의 핵우산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서 크게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문재인 정부가 이 같은 ANPG 창설 방안을 흔쾌히 수용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특보는 "중국을 자극할 게 분명해 문 정부가 꺼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핵계획그룹(NPG)
 핵계획그룹(NPG)은 나토 회원국 국방부 장관들로 이뤄진 기구로 핵무기 운용을 비롯한 핵전략을 공동 논의하기 위해 1966년 발족했다. 이에 따라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벨기에·터키 등 나토 5개국에 배치된 190기의 미 전술핵을 언제, 어떻게 쓸 것인지 등도 여기에서 다뤄진다.
 
NPG가 출범하게 된 건 옛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완성했기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는 미국 핵무기의 유럽 배치만으로도 소련의 공격을 억제하는 데 충분하다고 서유럽 국가들은 믿었다. 그러나 소련이 ICBM을 이용, 미국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게 되자 유럽 국가들은 불안해하기 시작했다. 소련이 공격해 올 경우 미국이 본토 피폭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럽을 지켜줄 것인지 자신할 수 없었던 까닭이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 중이던 영국 외의 유럽 강국 중 프랑스는 결국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 1960년 핵실험에 성공한다. 반면 독일은 2차 대전을 일으킨 원죄로 핵무기 개발에 나서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로 인해 독일을 위시한 여러 나토 회원국들이 효과적인 방안을 요구, 미국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내놓은 게 바로 NPG였다.  
 
NPG가 발족했지만, 유럽 내 전술핵의 최종적인 사용 결정권은 미국에 있다. 그럼에도 이들 무기를 언제, 어떻게 쓸 것인지, 그리고 어디에 배치할 것인지 등의 구체적 운용 방안을 양측이 사전에 협의함으로써 유럽 내 미국 동맹국들의 불안이 크게 줄어든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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