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범 디자인 평론가
왕조의 통치공간에서
촛불시위의 장소까지
역사적 의미 누적된 광장
재구조화 앞서 재의미화
![공사가 진행 중인 광화문광장의 재구조화 조감도. [사진 서울시]](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6182fb3e-0dc7-4a42-b4f0-aaf476ec9bcd.jpg)
공사가 진행 중인 광화문광장의 재구조화 조감도. [사진 서울시]
물리적 공간에 일정한 사건이 일어나서 의미가 발생할 때 공간은 장소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곳이 누구에게는 그냥 평범한 공간이지만 어떤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남아 있는 곳, 소중한 사람과의 인연이 서려 있는 곳, 그런 곳은 모두 우리 삶에서 소중한 장소인 것이다. 개인만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장소는 중요하다. 공동체의 기억이 서려 있는 곳은 공동체의 장소가 된다. 광장은 그 대표적인 곳이다.
지난해 11월 경실련을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일방적인 공사 착공을 즉각 중단하라’는 제하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는 그동안 중단되었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을 재개해 올해 5월 준공을 목표로 공사를 진행 중이다. 시민단체들은 시장 유고 상태에서 이처럼 공사를 밀어붙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비판한다. 현 광장은 오세훈 전 시장 시절에 만들어진 것인데, 세계 최대의 중앙 분리대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이에 2011년 당선된 박원순 전 시장은 처음부터 광화문광장을 재조성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전문가들의 논의와 함께 국제 설계 공모를 실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결과물 역시 이런저런 지적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자 박 시장은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하고 재공론화 과정을 밟게 되었다.
![광화문광장 지하에 조성된 세종과 충무공 전시관 안내판. [사진 최범]](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2/25/8f2d94df-e834-40de-ab7c-c9fc12305ab7.jpg)
광화문광장 지하에 조성된 세종과 충무공 전시관 안내판. [사진 최범]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에는 왕조의 통치 공간이었고 일제 시대에는 식민 지배의 중심이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세종과 이순신이라는 민족 영웅의 동상이 세워지면서 권위주의적 공간이 되었다. 이후 광장은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민주주의의 장이 되었고 마침내는 현 정권을 탄생시킨 촛불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렇듯 광화문광장은 역사적 의미가 누적된 장소다. 따라서 광화문광장의 재구조화에는 차도냐 보행공간이냐, 6차선이냐 7차선이냐 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문제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광화문광장에 대한민국 70년의 장소성을 부여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에 부여된 장소성을 비판적으로 읽어내고 지울 것은 지우고 쓸 것은 다시 쓰는 과정이 필요하다. 콩코르드광장이 얼마나 많은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지를 떠올려보라. 그런데 지금까지 광화문광장에 대한 모든 논의는 ‘공간 만들기’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제 광화문광장을 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공간 만들기를 넘어서 ‘장소 만들기(place making)’를 해야 한다. 이것은 광화문광장에 새겨진 의미를 비판적으로 읽어내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최범 디자인 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