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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서 노래하면 日서 듣는다…사투리도 쓰는 '고래의 비밀'

아름다운 '고래의 노래'를 부르기로 유명한 혹등고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국제자연보호연맹·국제포경위원회·세계자연기금

아름다운 '고래의 노래'를 부르기로 유명한 혹등고래.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소·국제자연보호연맹·국제포경위원회·세계자연기금

어둡고 고요한 바다를 가로질러 뱃고동처럼 낮은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듣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이 소리의 주인공은 혹등고래입니다. 몸길이 11~16m, 체중은 30톤 넘게 나가는 이 거대한 동물의 노래가 우리를 편안하게 해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애니띵] 요즘 뜨는 ASMR '고래의 노래'

유튜브에선 바닷속 고래의 울음소리를 녹음한 영상이 힐링 콘텐트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한 시간 동안 고래 울음소리만 반복되는 한 영상(Underwater Whale Sounds)은 800만 회 넘게 재생됐죠. 8년 전 올라온 영상이지만 최근까지도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습니다. 반복되는 소리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의 유행에 힘입어 고래 울음소리도 때아닌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고래 울음소리를 들으며 편안함을 느낄까요? 또 고래가 울음소리를 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음이 편안해지는 고래 ASMR을 영상으로 확인하세요.
 

'고래의 노래' 명상·심리치료 음악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혹등고래. AP=연합

수면 위로 떠오르는 혹등고래. AP=연합

고래 울음소리의 인기는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60년대 후반 미국의 해양생물학자 로저 페인은 혹등고래의 울음소리에 리듬감 있는 패턴이 반복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사람이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말이죠.  
 
페인은 1970년 하와이 혹등고래 울음소리를 녹음한 음반 '혹등고래의 노래'(Songs of the Humpback Whale)를 발매했습니다. 약 34분 분량의 이 음반은 미국에서 12만5000장 넘게 팔리는 등 성공을 거뒀습니다. 고래의 울음소리는 최근까지도 명상이나 심리치료용 음악으로 자주 이용되고 있죠.
 
고래의 노래가 안정감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전문가들은 고래가 내는 낮은 주파수의 소리에 사람의 뇌가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정의필 울산대 IT융합학부 교수는 "저주파 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뇌파도 주파수가 낮아지면서 잠자는 상태와 비슷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소리로 소통하고 사투리까지 쓴다

대왕고래의 울음소리는 최대 188dB(데시벨)로 비행기 엔진 소리보다 크다. IFAW

대왕고래의 울음소리는 최대 188dB(데시벨)로 비행기 엔진 소리보다 크다. IFAW

고래는 다른 고래들과 소통하기 위해 일정한 패턴의 소리를 계속 냅니다. 수면 아래로 23m만 잠수해도 태양 빛의 99%가 사라지는 어두운 바닷속에서 소리는 고래들의 거의 유일한 의사소통 수단이죠.
 
사실 사람은 고래가 의사소통을 위해 내는 소리의 대부분을 들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주파수 영역대는 약 20~2만Hz(헤르츠)이지만, 고래가 멀리 떨어진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내는 소리의 주파수는 이보다 낮기 때문이죠. 지구 상에서 가장 큰 동물인 대왕고래는 저주파를 이용해 800㎞ 넘게 떨어진 다른 고래와 대화를 나눕니다. 만약 인천 앞바다의 고래가 소리를 내면 일본 오사카 앞바다에 있는 고래가 들을 수 있다는 뜻이죠.
 
몇 마리씩 짝을 지어 생활하는 고래는 무리마다 서로 다른 '사투리'를 쓴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2015년 캐나다 댈하우지대학 연구팀은 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두 향유고래 집단이 내는 소리를 비교했는데요. 같은 지역에 사는 고래들이라 해도 속한 집단에 따라 소리의 높낮이와 음색이 다르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공해에 묻히는 고래의 노래

고래의 음파 소통을 방해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공해들. IFAW

고래의 음파 소통을 방해하고 생존을 위협하는 공해들. IFAW

하지만 고래의 노래는 점차 잦아들고 있습니다. 인간이 일으킨 공해 때문이죠. 음파가 유일한 소통 수단인 고래에게 바닷속 소음공해는 치명적인 장애물입니다.  
 
대형 선박의 엔진 돌아가는 소리, 수중 물체를 찾는 음파탐지기(SONAR), 바닷속 석유나 천연가스 탐사에 쓰이는 '공기 대포' 등이 고래의 울음소리를 뒤덮고 있습니다.
 
지난 5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The Soundscape of the Anthropocene Ocean)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인간의 해상 이동량이 늘면서 주요 항로의 저주파 소음은 32배 증가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로 인해 해양동물들이 짝짓기와 먹이 찾기, 포식자 회피 등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죠.
지난 2018년 스페인 남쪽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향유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The Telegraph

지난 2018년 스페인 남쪽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향유고래의 뱃속에서 발견된 플라스틱 쓰레기들. The Telegraph

매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고래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0월 발표된 호주 정부 과학기관 CSIRO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해저에 약 1440만 톤의 미세플라스틱이 쌓여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2018년에는 스페인 남부 해변으로 떠밀려온 향유고래의 사체에서 비닐봉지, 그물, 병뚜껑 등 29㎏에 달하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발견되기도 했죠.
 
인간에게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주는 고래의 노래를 어쩌면 더는 들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인간처럼 말하고, 듣고, 살아가는 고래. 그들에게 조용하고 깨끗한 바다를 돌려주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때 아닐까요.
 
박건 기자, 이수민 인턴 park.kun@joongang.co.kr
영상=왕준열·우수진·황수빈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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