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파와 눈보라로 정전과 단수 사태를 겪은 미국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2월 17일 주민들이 프로판 가스를 사기 위해 가스통을 들고 충전소 앞에 줄을 서 있다. 이들은 눈보라와 한파 속에서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다. 이 지역에서 장작과 프로판 가스는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유일한 에너지원이 됐다. AP=연합뉴스
텍사스, 한파로 가스관 얼고 풍력 발전 정지
경험 못한 한파에 정전·단수까지 고난의 행군
지중해 지역도 한파·눈…예루살렘 6년 만의 눈
인도, 히말라야 빙하 녹아 떨어지며 댐 붕괴
마을·교량 휩쓸어 200여 명 숨지거나 실종
인류 감당 힘든 기후변화 재앙 곳곳서 속출
미 바이든 대통령 탄소제로 전략 힘 받을 듯
미국에선 정전 원인 놓고 정치적 논란까지
빌 게이츠, 탄소제로 에너지 원자력에 관심

2월 9일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가 호수에 떨어지면서 물이 넘쳐 홍수가 발생한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 티몰리 지역. 댐 2곳이 붕괴되거나 손상을 입었으며 홍수로 인한 급류에 마을과 다리가 휩쓸려가면서 200여 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미, 이상한파·폭설로 일시 문명 단절

미국을 덮친 이상 한파와 폭설로 정전과 단수 사태를 겪은 텍사스 샌마커스에서 한 남자가 바베큐 틀에 불을 지펴 냉동 피자를 녹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월 11일의 경우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와 조지아, 사우스캐롤라이나와 노스캐롤라이나, 서부의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 남부를 제외하고 거의 전 지역이 영하의 날씨로 떨어졌다. 특히 중서부 지역과 남부 텍사스의 북부 지역은 기온이 영하 18도까지 떨어졌다. 그 사이의 지역은 기온이 영하 17도에서 0도 사이였다.

이상 한파로 전기와 물 공급이 일시적으로 끊긴 미국 텍사스 주 흇스턴에서 2월 18일 주민들이 공원 급수시설에서 물통에 물을 받고 있다. AP=연합뉴스
친환경 에너지원 동파 vs 가스관 동결

미국 텍사스 주의 그렉 애보트 주지사가 2월 18일 주도인 오스틴에 있는 재해 상황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 텍사스 주 애빌린의 주민들이 2월 16일 장작을 구입해 나르고 있다. 장작은 50km 떨어진 곳에서 트럭으로 실어왔다. 정전 사태로 프로판 가스와 장작이 일시적으로 에너지원이 됐다.AP연합뉴스
텍사스 주가 이 정도 한파를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분위기지만, 온화한 기후의 미국 남부의 주가 이 정도를 대비하지 못했다고 비난할 수가 있느냐는 논쟁도 벌어진다.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 2월 18일 6년 만에 가장 큰 규모로 눈이 내렸다. 유대교와 이슬람이 모두 성지로 여기는 성전산에 흰눈에 덮혀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따뜻한 지중해 지역 한파와 폭설

온화한 지중해 지역의 그리스 아테네에도 한파와 폭설이 내렸다. 고대 그리스 유적인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눈에 덮였다. AP=연합뉴스
온화한 기후로 이름난 그리스 아테네에도 2월 16일 폭설이 내려 파르테논 신전과 거리가 눈에 덮였다. 이 때문에 교통이 마비되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일시 중지됐다.

영국 런던 트라팔가르 광장의 분수대가 2월 9일 한파로 얼어있다. AFP=연합뉴스
영국·프랑스도 한파와 눈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앞이 2월 10일 눈에 덮여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7일 인공위성으로 촬영한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지역의 빙하. AP=연합뉴스
인도 빙하 홍수로 200여 명 인명 피해
2월 7일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갑자기 홍수가 발생해 댐과 수력발전 시설 한 곳이 완전히 붕괴되고 다른 한 곳은 부분적으로 무너졌다. AP·AFP 통신과 BBC·CNN 방송, 현지 인디아익스프레스 등의 보도를 종합하면 사고는 치명적이었다. 홍수로 마을과 도로 등이 휩쓸리면서 사고 초기 200여 명이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 공사 중인 터널에 갇힌 사람 중 일부만 구조되고 대부분 숨진 채 발견되거나 시신조차 수습하지 못했다.

2월 9일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에서 발생한 빙하 홍수로 부번적으로 붕괴된 댐이 왼쪽에 보인다. 오른족은 구조작업에 나선 사람들과 장비. AP=연합뉴스
현지에 급파돼 사고 원인을 조사한 인도 국방연구개발기구의 LK 신하는 “공중 정찰 결과, 이번 사고는 우선 보기에 거대 빙하지대의 끝에 매달려있던 빙하가 빙하 호수로 떨어져 다량의 물이 좁은 계곡으로 넘치면서 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인도 현지 매체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인도 북부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 녹은 빙하가 호수에 떨어지면서 물이 넘쳐 홍수를 일으켜 댐이 붕괴되고 200여 명의 인명피해를 냈다. EPA=연합뉴스
가디언은 과학자들은 겨울철에 빙하가 떨어진 것이 대단히 이례적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빙하 용해는 앞으로 몇 년 안에 이 지역에서 큰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경고는 계속 있어왔다. 2019년 조사 결과 히말라야 산악지역의 빙하 용해 속도는 2000년보다 2배로 높아져 매년 50㎝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도 자왈할라 네루 대학의 환경대학원의 AP 디브리 박사는 “히말라야는 고산지대에 물을 (빙하 형태로) 담고 있는 수탑 같은 곳”이라며 “지구 온난화가 진행돼 히말라야 상층부가 따뜻해지면 빙하가 빠른 속도로 녹게 된다”고 설명했다.

2월 7일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에서 발생한 빙하 홍수로 실종된 사람들의 사진. AFP=연합뉴스
비도 안 왔는데 고산지대 겨울 홍수
둘째, 홍수가 갑자기 발생했다는 사실이다. 경고나 사전 징후도 없이 갑자가 급류가 상류에서 흘러내려와 인간이 만든 시설인 댐과 수력발전소, 그리고 사람들의 거주하는 마을을 휩쓸었다. AP통신에 따르면 우타르칸드 주 수력발전소 직원인 상그람 싱은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들린 직후 급류가 흘러내려와 아래쪽에서 일하던 동료를 휩쓸어갔다”고 말했다.
셋째, 당시 비도 눈도 내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산지대에는 봄이 되면 눈 녹은 차가운 물이 흘러내리는 게 일상적이지만 이번 홍수는 겨울에 발생했다. 이처럼 고지대에서, 겨울철에, 감자기. 거대한 급류를 형성하며 홍수가 발생해 대형 인명사고가 난 것은 이례적이라고 AFP 통신은 지적했다.
홍수의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고산에 있던 거대한 빙하가 눈사태처럼 아래쪽의 빙하호수에 갑자기 떨어졌고, 이에 따라 빙하 호수가 넘치면서 이어지는 알라크난다와 다울링강가의 두 하천에 홍수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이 강들은 거대한 갠지즈 강의 상류를 형성한다. 결국 고산의 빙하가 호수에 떨어지고 호수 물이 넘치면서 갠지즈 강의 상류 하천에 빙하 홍수가 발생했다는 설명이다. 이 과정에서 아래쪽에 있는 댐이 불어난 수량에 무너지면서 다시 부차적인 피해를 일으킨 것으로 본다.

2015년 4월에 촬영된 인도 북부 히말라야의 빙하지대.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매년 50cm씩 줄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히말라야에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재앙은 이론이 아닌 현실이다. AP=연합뉴스
“지구온난화 인한 기후변화가 사고 원인”
이번 홍수로 대규모 피해를 입은 조시마트 지역의 사회활동가인 아툴 사티는 “히말라야 지역은 아이처럼 손상받기 쉽고, 허약한 지역”이라며 “지질학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지역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댐과 도로를 건설하면서 문제가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우타라칸드 지역은 인도 환경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가디언과 타임스 오브 인디아에 따르면 이 지역 여성들은 1973년 무분별한 산림 벌채에 항의하고 환경과 생태계를 보존하는 ‘칩코 안돌란’ 운동을 시작했다. ‘나무를 끌어안는다’는 뜻의 이 운동은 인간 사슬을 연결해 자연 훼손에 반대하는 활동을 벌여온 데서 비롯했다. 간디의 독립투쟁 정신과 방식을 계승한 ‘비폭력·무저항’ 환경운동의 효시로 평가된다.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 주의 차몰리 지역 주민들이 2월 8일무너진 댐을 보고 있다. 이 댐은 전날 발생한 빙하홍수로 붕괴됐다. EPA=연합뉴스
“빙하지대 댐·고속도로 건설도 문제”
라비 초프라 위원회는 해방 2000m 이상의 고지대에는 댐이나 보, 수력발전소를 짓지 못하도록 권고했다. 해발 2000m는 빙하가 녹아 바위와 토사가 불안정한 상태로 존재하는 ‘이상 빙하 지역‘이기 때문에 댐과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지적이었다. 그럼에도 지역 정부는 이 지역에 댐을 계속 건설하다 이번에 사고가 났다. 이번에 사고가 난 지역도 바로 ‘이상 빙하 지역‘에 있다. 초프라 박사는 “기후변화로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갈수록 잦아질 것으로 우려되는데도 개발 프로젝트가 계속되면서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환경 재앙의 재발을 막으려면 인도 정부가 과학자와 환경활동가들의 충고와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식 당일에 파리기후변화 협약 복귀를 위한 행정 명령에 서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환경 재앙이 속출하면서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내건 ‘탄소제로’ 전략이 힘을 받는 분위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환경과 에너지 분야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의 정책을 완전히 갈아엎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취임식이 열렸던 지난 1월 20일 날 당일에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에 복귀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은 이런 의지를 잘 보여준다. 이제 탄소 배출 감소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청정에너지 분야에 앞으로 4년간 2조 달러를 투입해 ‘탄소 배출 제로 정책’을 추진한다. 전력 분야는 2035년까지 탄소배출을 제로로 목표로 대대적인 개편할 계획이다.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에너지를 확보하는 방안을 크게 두 가지다.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이든지, 탄소 배출이 전혀 없는 원자력을 확충하는 길이다. 아니면 둘다 동시에 추구하는 방법도 있다. 마이크로소트프 창업자인 빌 게이츠 회장은 인터뷰와 기고, 그리고 『빌 게이츠, 기후변화를 피하는 법(김영사)』라는 책을 출간하면서 탄소제로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했다. 2050년까지 탄소제로를 달성하지 못하면 환경 재앙으로 인류가 절멸할 것이라는 경고까지 했다. 게이츠 회장은 원자력을 대표적인 탄소 제로 에너지원으로 제시했다.

빌 게이츠 빌앤드멜린다 게이츠 재단 이사장은 백신과 탄소제로를 통해 인류 활력을 모색한다. 로이터=연합뉴스
원자력은 탄소배출이 전혀 없는 대표적인 ‘탄소 제로 에너지원’이다.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 같은 재생에너지는 날씨에 따라 가동률이 들쑥날쑥 하는 ‘출력 간헐성’과 이에 따른 정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거액을 들여 탄소배출이 적은 천연가스를 이용한 대체 발전 시설을 준비해야 한다. 경국 비용이 많이 들고 전력 공급도 불안정해진다. 탄소배출 제로를 이루려면 재생에너지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원자력 발전을 확충하는 수밖에 없다.
미국 에너지부는 최근 들어 안전성이 높은 소형모듈원자로(SMR·Small Modular Reactors)의 개발과 도입에 적극적인 투자를 해왔다. 2021년을 뒤흔든 글로벌 환경 재앙, 특히 미국의 원유·천연가스 생산지로 이름 높은 텍사스의 정전 사태를 보며 바이든 행정부는 더욱 합리적인 탄소 제로 정책에 박차를 가할 수밖에 없다. 그 파급효과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환경 재앙의 시대를 목격한 인류는 이제 새로운 탄소 제로 기술 개발과 산업화의 시대를 열 수밖에 없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