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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설에 재난지원금 푼다는 아저씨, 재원은 자녀 용돈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78)

 
요즘은 도서관이 휴관이라 시간이 여유롭다. 이웃집에서 놀러 갔더니 술판이 벌어져 있다. 주인 내외의 기분이 매우 좋다. 아들이 이혼하고 방황할 때 위로가 되고 짝이 되어준 새 며느리 자랑을 하는 중이다. 십년이 넘도록 한결같이 시부모님을 존경하고 아이 잘 키우고 제 남편을 보필하며 잘 살아주니 오래 사는 세상에서는 이혼·재혼을 안 좋게 볼 일이 아니라는 거다.
 
명절에 못 가니 맛있는 거 사 잡수시라며 돈도 보냈다고 자랑한다. 이곳에 이사 와서 나도 몇 번 마주쳤지만 정말 마음도 표정도 예쁘고 선하다. 자식들이 짝을 찾아 출가하면 임무 완수한 부모라는 것은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결혼을 시키고 나면 더 큰 가슴 졸임이 시작되는데, 거의 ‘성인 돌봄’ 급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금성과 화성서 온 우주인으로 만나 통하는 않는 언어로 가족이란 모임을 만든 셈이니 죽을 때까지 투덕거린다. 모두 영화의 주인공이다.
 
며느리와 사위가 하는 전화는 내 자식이 하는 것보다 더 반갑다. 없는 살림에 늘 투덕거리고 의견이 안 맞아 실랑이를 벌이지만 종내에는 각자의 배우자, 특히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 같다. [사진 pxhere]

며느리와 사위가 하는 전화는 내 자식이 하는 것보다 더 반갑다. 없는 살림에 늘 투덕거리고 의견이 안 맞아 실랑이를 벌이지만 종내에는 각자의 배우자, 특히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 같다. [사진 pxhere]

 
명절이 가까워져 오니 나의 며느리도, 사위도 전화가 오고 방문을 한다. “어머니, (아이들 안부 등 미주알고주알) 코로나로 힘드시지만 건강 잘 챙기세요. 남편이 열심히 일하고 돈 잘 벌고 있으니 조만간 용돈 듬뿍 쏠게요. 기대하셔요.” 언제나 예쁘게 말해주는 며느리가 참 고맙다. 사위는 가족이 된 지 10년이 넘었건만 늘 손님 모드다. 명절에도 일을 한다며 출근길에 들러 수줍은 청년이 연애편지 전하듯 봉투 하나 손에 쥐여 주고는 쑥스럽게 인사만 하고 돌아선다. 며느리가, 사위가 하는 전화나 방문은 내 자식이 하는 것보다 더 반갑다. 없는 살림에 늘 투덕거리고 의견이 안 맞아 실랑이를 벌이지만 종내에는 각자의 배우자, 특히 부인이 하자는 대로 하는 것 같다. 배우자의 전화는 어떻게 살든 잘살고 있다는 뜻이 담겨서 좋다. 현명한 방법이다.
 
요즘같이 죽을 만큼 지치고 힘든 때에 자식들은 부모께 보낼 명절 봉투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다. 부모도 이 난국에 자식이 힘들까 봐 더 걱정이다. “그동안 자식에게 받아 모은 용돈을 이번엔 내가 재난금으로 풀기로 했지. 허허” 이웃 아저씨의 멋진 계획에 고개를 끄덕인다. 삶이 흔들리고 버석거릴 만큼 지친 마음에, 나 역시 여유와 충만한 기운을 줄 수 있는 통 큰 어른이 되고 싶다. 음식으로 온기를 나눌 수 없는 상황이니 가끔은 돈의 힘으로 사랑을 나눌 때이다. 작년 추석 명절 때 풍경은 어땠는지 도서관 가서 찾아본 신문 사회면엔 명절 증후군 스트레스 소식이 별로 없다. 그나마도 다행이다.
 


70~80년대 고속 성장 시절에는 일하느라 귀향은 꿈에서나 이루어졌다. 밤을 새워 일하다가도 공중전화로 달려가 부모께 전화하곤 했다. “많이 힘들지?”, “미안하다”, “고맙다” 이런저런 말씀 한마디 안 하시고 들어주시기만 할 뿐인데도 목소리를 듣고 나면 힘이 났다. 해질녘에, 하늘이 높을 때, 아플 때, 지칠 때 등 힘들 때만 생각나는 부모였다.
 
내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참 무뚝뚝했다. 그런데 돌아가시고 난 후 지금까지도 아버지만 생각하면 기운이 난다. 동생들도 모두 그렇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물질적인 사랑보다 마음으로 전해지는 사랑의 힘이 참 크다는 것을 느낀다. 성장한 자식들이 부모를 찾고 생각할 때는 그가 힘없는 어린애 상태에 있다는 증거라고 한다. 뒤집어 부모가 자식의 전화를 기다리는 것은 그들이 힘없고 외로운 상태라고도 하겠다. 서로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은 그나마 행복한 일이다.

 
사는 게 그런 거고, 그런 게 가족이라는 말, 공감한다. [사진 영화 '비밀과 거짓말' 포스터]

사는 게 그런 거고, 그런 게 가족이라는 말, 공감한다. [사진 영화 '비밀과 거짓말' 포스터]

 
긴 연휴인 만큼 ‘비밀과 거짓말’이란 영화를 소개한다. 명절 전에 시간 나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주인공 모두 사회라는 울타리에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가족은 작은 일 하나에도 섭섭하고 타협이 안 되고 미워하고 살벌하게 투덕거린다. 영화의 클라이맥스엔 “주위의 모두를 기쁘게 해주면서 정작 가장 가까운 가족끼린 왜 이러냐” 절규하는 덩치 큰 주인공을 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사는 게 그런 거고 그런 게 가족이라는 말, 공감한다. 그래도 단단하게 쌓아 올린 깊은 사랑은 어떤 난관도 이겨낸다는 것을 보여준다.
 
힘든 시기에 다시 다가온 명절이다. 음식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역사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 건네주는 돈의 힘과 따뜻한 위로, 격려가 필요하다. 그래도 울적하면 웃음이 나는 영화를 또 보자. 호화로운 음식만으로 눈요기가 되는 오래된 대만영화 ‘음식남녀’다. 두 편 다 가족영화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보다 보면 말이 되고 반전의 묘미에 웃음을 준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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