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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없는 ‘여인국’ 모쒀족, 아이 낳으면 여자 집서 키워

[중국 기행 - 변방의 인문학] 윈난성 소수민족

모쒀족은 루구호 일대에 모여 산다. [사진 유광석]

모쒀족은 루구호 일대에 모여 산다. [사진 유광석]

10여 년 넘게 중국 여행을 하다 보니 그 넓은 대륙에서 어디를 가면 가장 좋으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는 중국 여행 티켓이 단 한 장이라면 윈난을 먼저 가라고 답한다. 몸에 밴 도시의 편리함을 내려놓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편의성이 적당히 받쳐 주는 가깝고도 먼 오지를 추천하는 셈이다. 그 가운데 나만의 ‘샹그릴라로 가는 여정’이 있다.
 

루구호 일대 거주, 가모장제 지켜
여자 집서 남녀관계 맺는 ‘주혼’

창문 벽 타고 들어가 하룻밤 보내
남자는 해뜨기 전 자기 집으로 가

남녀 가정 이루지 않고 교제만 할 뿐
어머니 남자 형제가 아버지 역할

윈난의 관문 쿤밍에서 출발하여 토림, 루구호, 석두성, 리장 위룽설산과 하바설산, 샹그릴라대협곡, 메이리설산(6740m)에 이르는, 느긋한 일정으로 2주 정도 걸리는 코스를 여러 번 여행했었다. 토림(土林)은 억겁의 세월이 대지를 기묘하게 깎아 낸 각양각색의 흙기둥들이 즐비한 지질공원이다. 붉은 기운이 도는 밝은 황토색 흙기둥이 파란 하늘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다. 정말 아름답다.
 
토림 다음은 루구호(瀘沽湖)라는 고원의 호수다. 그곳으로 가는 산길부터가 매력적이다. 굽이굽이 끝도 없이 휘돌면서 고도를 높여 올라간다. 차를 세우고 돌아보면 땅덩어리가 이렇게나 클까 싶은 생각이 든다. 산 아래 계곡에 안긴 마을에서 밥 짓는 연기가 올라오기라도 하면 이곳이 샹그릴라가 아닐까 하는 몽상이 젖어 오기도 한다.
  
성적으로 문란할 거란 생각은 오해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족 상당수는 여성이 대를 잇는 가모장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 유광석]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족 상당수는 여성이 대를 잇는 가모장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 유광석]

그렇게 온종일 차를 달려야 루구호에 도착한다. 수면이 해발 2685m, 수심은 평균 40m, 깊은 곳은 105m나 된다. 3770m 거무신산(格姆神山)에 올라가면 루구호 전체를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다.  
 
루구호 일주도로는 44㎞ 정도. 예쁜 카페에서 차 한잔 즐기고 물가에서 물수제비도 뜨면서 하루를 만끽할 수 있다. 호수 안쪽으로 뻗은 작은 반도의 끝에서 거무신산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과연 신산이라 할 만하다. 여행객의 피로감이 차올라도 호수 위로 쏟아지는 별들이 잠을 막아서기도 한다. 늦잠에 뒤척이다가 아침 창밖으로 보이는 루구호의 물안개는 또 어떠한가. 잠에서 버쩍 깨어서는 곧바로 몽환에 빠지지만, 그 순간에는 샹그릴라라는 말이 떠오르기도 한다.
 
아침 국수라도 한 그릇 하고 호숫가를 둘러보면 아름다운 루구호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모쒀(摩梭)족을 만나게 된다.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목록에는 없지만 그들의 신분증에는 엄연히 ‘모쒀인’이라고 명기돼 있다. 루구호 서남부의 윈난성 모쒀족은 나시족(納西·리장의 소수민족)으로, 루구호 동북부의 쓰촨성 모쒀족은 몽골족으로 분류된다. 모쒀족은 독자적인 민족으로 분류해 달라고 청원했으나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족 상당수는 여성이 대를 잇는 가모장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 유광석]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족 상당수는 여성이 대를 잇는 가모장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 유광석]

모쒀족은 ‘여인국’이란 다소 자극적인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모쒀족 상당수는 모계-가모장제-대가족을 이루어 살아왔다. 가문의 어른은 여자이고 여자에서 여자로 대를 잇는다. 아이를 낳으면 남편 없이 여자가 키운다. 수천 년 동안 쌓여 온 가부장제의 편견으로는 이들의 습속과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
 
모쒀족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주혼(走婚)이라는 혼인제도가 있다’는 것이다. 말 자체가 틀렸다. 주혼은 여자 집에 상대 남자가 찾아와 밤을 같이 지내고, 해 뜨기 전에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모쒀족 특유의 남녀관계를 말한다. 주혼은 남녀의 교제이지 혼인이 아니다. 남녀가 동거하여 가정을 이루고 가족성원들이 권리와 의무로 한데 묶이는 결혼이, 이들에게는 아예 없다는 것이다. 여자는 아이를 출산하면 자기 집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키운다. 생물학적 아버지가 누군지 알지만,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남자어른의 조력이 필요하지만 그것은 어머니의 남자형제가 수행한다.
 
남녀관계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공동의 노동이나 이웃 간의 교류에서, 마을 축제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사전에 서로 약속해야만 남자가 여자 집으로 찾아올 수 있다. 여자의 방은 2층이고 남자는 그 창문 아래에서 미리 약속한 신호로 노크한다. 여자가 창문을 열어 주면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보통이다. 관계가 끝나는 것도 간단하다. 여자가 창문을 열어 주지 않거나, 남자의 물건 하나를 창밖에 걸어 둔다. 남자가 여자의 집을 찾아가지 않아도 그것으로 그만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당당하게 다가가고, 남자는 여자에게 당당하게 어필한다.
 
가부장제 남자들은 섣부른 상상으로 ‘모쒀족 여자들은 성적으로 문란할 것’이라고 넘겨짚곤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남녀교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오래가기도 하고 짧게 끊어지기도 한다. 동시에 여러 상대와 교제하는 것은 품위 없다고 여기기 때문에 흔하지 않다. 남녀관계를 가족은 물론 누구에게든 드러내지 않는다. 뜨겁지만 조용한 사생활로 다룬다. 어머니라 할지라도 성인 자녀들의 남녀관계에 간섭하지 않는다. 자녀가 성장하여 13세가 되면 성인 의복을 입혀 주며 성년식을 치른다. 딸은 어머니의 옷을, 아들은 외삼촌의 옷을 물려받는 게 보통이다. 이날부터 딸들은 화방(花房)이라고 하는 자기만의 방을 따로 배정받는다.
  
성평등·페미니즘 살펴볼 소수민족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족 상당수는 여성이 대를 잇는 가모장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 유광석]

중국 윈난성의 소수민족인 모쒀족의 여성들. 모쒀족 상당수는 여성이 대를 잇는 가모장제를 유지해 오고 있다. [사진 유광석]

습속이 이러하니 남자가 여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게 없다. 남자가 여자를 희롱해도 남자니까 무방하고, 여자니까 부끄러워해야 하는, 그런 젠더의 불평등이나 차별은 없다. 애초에 여자로 태어났으니 경시하고, 여자로 성장하니 억압당하는 일이 없다. 여자를 신체적으로 학대하는 할례나 전족은 물론 얼굴을 가리는 복장도 없고, 그와 유사한 습속도 없다. 성관계 한 번으로 여자를 올가미에 걸린 사냥감으로 취급하는 일이란 이들에게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물론 남녀의 사회적인 역할 구분은 있다. 여자는 농사와 가사 등 가정 안팎의 일을 주도한다. 남자는 큰 힘을 쓰는 가사, 타지역을 오가거나 장사나 종교와 같은 대외적인 일을 맡고, 가족 안에서는 가모장, 곧 어머니나 누이를 충실하게 보좌한다.
 
나도 여러 차례 이 지역을 여행했고 관련 자료를 읽었지만 이들의 가족구성과 일상을 실감 나게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여자남자 관계는 찬찬히 음미할 가치가 있다.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방편이 될 수 있고, 우리가 사는 공동체의 미래에 관한 영감을 얻을 수도 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우리는 수천 년 동안 가부장제로 살아왔다. 남자들을 위해 여자를 낮추고 희생시키는 체제였다. 갓 태어나 성별을 확인하는 순간부터 어른들은 외면하기 일쑤였다. 성장하면서 여자는 여자이기 때문에 이러이러해야 한다는 가정에서의 억압, 교육상의 억압, 습속과 문화의 억압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으로 가해졌다. 어머니의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은 가부장제라는 틀 안에서만 허용된, 사실은 여자의 희생을 강요하면서 미화한 것이 적지 않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성평등이 보편적 당위로 인정되고 그에 따라 사회 구석구석이 서서히 또는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이 불거지기도 한다. 장노년층은 가부장제의 습성에 매인 채 세태에 뒤떨어진 훈계로 자신을 스스로 소외시키기 일쑤다. 중년들은 장노년보다는 성평등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강하게 거부하는 게 태반이다. 젊은 층은 공감이나 불만, 무관심이나 냉소 등등 여러 반응을 보인다. 남자들은 성평등이 과속이거나 역차별이라 불만을 토로한다. 여자들은 불충분하다고 주장하고, 남자들의 반발에 미러링으로 강하게 반박하기도 한다.
 
지금 한국에서 성평등은 시대의 당위이고 뒤집을 수 없는 흐름이다. 그러나 중장노년 남성들은 시대 변화에 부적응하는 사례가 상당하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수천 년 동안 기득권을 누렸고 개인으로서도 50년 이상 충분한 혜택을 누렸으니 이제라도 여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게 온당하지 않을까. 앞장서서 페미니스트가 되기는 어렵다고 해도 최소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할 줄은 알아야 한다. 루구호는 성평등과 페미니즘에 대해 조용히 사유하고 성찰하는 지점이 될 수 있다. 모쒀족의 일상을 세세하게 보여주는 『어머니의 나라』(추와이홍 지음)와 『아버지가 없는 나라』(양 얼처나무, 크리스틴 매튜 지음)라는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루구호의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 모쒀족과 우리나라의 여자들을 함께 읽어 보자. 그러면 루구호가 샹그릴라로 다가올 수도 있다.
 
윤태옥 중국 여행객
중국에 머물거나 여행한 지 13년째다. 그동안 일년의 반은 중국 어딘가를 여행했다. 한국과 중국의 문화적 ‘경계를 걷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 엠넷 편성국장, 크림엔터테인먼트 사업총괄 등을 지냈다. 『중국 민가기행』 『중국식객』 『길 위에서 읽는 중국현대사 대장정』 『중국에서 만나는 한국독립운동사』 등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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