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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칼럼] 바이든, 노련하고 복잡한 낙관주의자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쓰디쓴 교훈을 남기고 트럼프 광기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남은 교훈은 대통령제 민주주의의 성패는 결국 대통령 한 사람의 자질과 개성이 좌우한다는 점, 미국의 혼란은 곧 세계의 혼란을 부채질한다는 점이었다.
 

트럼프, 리더의 중요성 다시 일깨워
바이든은 노련한 중도 낙관주의자
온건하지만 다면적이고 집요해
미국의 귀환, 정치의 귀환 시대

편집증의 리더, 트럼프가 미국 민주주의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일일이 거론하는 것은 이제 식상한 일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의 혼란을 틈타 권위주의 바이러스가 중유럽, 남미 등 곳곳에서 더 기승을 부려왔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움츠러든 것이 지난 4년의 흐름이었다.
 
자아도취형 리더 트럼프가 물러가면서, 새 리더의 개성과 성품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세 번의 도전 끝에 당선된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성품, 세계관의 특성은 무엇인가? 아일랜드인의 후예다운 끈기와 집념인가? 베이징의 질문일 것이다. 노동계급 집안 출신다운 격의 없는 담백함인가? 서울, 도쿄, 베를린의 질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의 성품을 논하기 전에, 미국 대통령의 성품과 세계관을 꿰뚫어보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사례를 찾아 오래전 얘기로 거슬러 가보자.
 
50여 년 전인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지난해 11월 선거처럼 엄청난 내우외환 속에 치러졌다. 당시 5만여 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베트남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면서 초강대국 미국의 위신은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미국 내부에서는 반전(反戰) 시위를 하던 대학생들이 주 방위군 총에 맞아 사망하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민권운동을 이끌던 킹 목사가 암살당하는 비극이 이어졌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따놓은 듯 했던 로버트 케네디의 암살은 위기를 최악으로 밀어 넣었다.
 
극도의 분열과 혼란 속에 1968년 선거에 당선된 닉슨 대통령의 개성, 욕망, 성품을 가장 예민하게 읽어낸 인물은 베이징의 중난하이에 칩거하던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이었다. 닉슨이 후보 시절 발표한 ‘베트남 이후의 아시아’라는 외교 에세이를 읽고서 마오 주석은 닉슨이 중국과 관계개선에 큰 관심이 있음을 알아채고 관계 부서에 전략 검토를 지시한다. (주재우 『한국인을 위한 미중 관계사』)
 
닉슨의 에세이에 미중 데탕트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지만, 마오는 글의 이면에 담긴 닉슨의 실용주의, 역사를 바꾸려는 야심과 전략적 사고를 알아보았다. 오늘날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G2 시대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마오쩌둥은 가고 없지만, 정치학자들은 정치 리더들의 성품과 개성을 추정하는 분석방법을 발전시켜왔다. 미국 학자들이 발전시켜 온 방법론을 따라서, 필자와 리더쉽 연구자 전진아씨는 바이든이 취임사에서 구사하는 문장 형식을 통해 바이든의 성품과 세계관을 추정해보았다. 내용을 요약하기보다는 연설문에서 구사되는 문장 형식의 분석을 통해서, 우리는 연설가의 정치의 본질에 대한 관념, 정치의 예측 가능성과 우연의 작용에 대한 인식, 목표를 추구하는 전략과 전술 등을 추정할 수 있다. (자세한 방법은 http://profilerplus.org)
 
취임사의 문장 형식을 통해서 드러나는 바이든의 정치관은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중도였다. 동시에 그는 타협의 예술로서의 정치의 가능성을 믿는 낙관주의자로 드러났다. 연설문에서 바이든은 “역사는 이상과 추레한 현실의 끝없는 투쟁”이라고 역설하기도 하였다.
 
중도 낙관주의 리더들의 공통적 특징으로 다음 몇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이들은 정치의 세계에 영원한 갈등은 없다고 본다. 갈등과 대립은 인간 본성에서 나온다기보다는 인간의 이해력의 부족에서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 간 갈등의 폭발은 주로 리더들 사이의 오해와 착각에서 격발된다고 본다. 글로벌 영향력을 두고 경쟁하는 중국에게는 일단 긍정적 신호인 셈이다. 또한 미중 갈등의 격화에 노심초사하는 우리에게도 희망의 신호랄 수도 있다.
 
둘째, 중도 낙관주의자들은 정치의 세계에 영원한 갈등은 없다고 믿지만, 상대를 다루는 방법은 타협과 견고한 의지 양자를 결합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갈등보다 타협에 약간 더 무게를 두기는 하지만 관계가 틀어져 교착 상태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바이든의 정치적 심성은 정치 경험이 짧았던 오바마의 소극적 이상주의나 부시의 공세적 현실주의보다 훨씬 복잡하다. 온건하지만 다면적이고, 유연하지만 집요하다.
 
정리하자면, 트럼프 시대의 폐막과 더불어 그간 미국 패권의 쇠퇴를 은근히 기대하던 패권 숙명론자들은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미국 유권자들은 경험이 풍부한 중도 낙관주의 리더를 선택함으로써 미국의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주었다.
 
모두가 미국의 역량과 의지를 슬그머니 의심하는 시점에, 미국인들은 권력정치 세계의 현실과 이상 사이의 모순과 역설, 아이러니를 두루 이해하는 리더, 타협과 힘의 구사를 동시에 추구하는 리더를 내세웠다. 바이든 리더십의 출범은 미국의 귀환이면서 또한 가능의 예술로서의 정치의 귀환이다.
 
장훈 본사 칼럼니스트·중앙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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