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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어느 아빠의 편지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아이가 올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갑니다. 입학통지서를 받고, 예비소집일 날 곧 아이가 다닐 학교 운동장을 밟아봤습니다. 초등학생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집니다. 학교에선 돌봄 교실 신청서를 주었습니다. 찬찬히 훑어보다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재직증명서, 다섯 글자 때문입니다.
 
남들이 손쉽게 내는 재직증명서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지방 건설현장에서 막노동하며 홀로 아이를 키웠습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현장 일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해고 통보가 왔습니다. 그나마 운 좋게 퇴직금이 쥐어졌습니다. 고민하다 오토바이를 샀고, 배달 플랫폼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토바이 핸들을 잡고 배달에 나섰지만 난생처음 해보는 일, 길은 헷갈리기만 했습니다.
 
한부모 가정이면 돌봄 교실에 들어갈 수 있다지만, 주민센터에선 그나마 소득이 있어 ‘한부모 가정’으로 인정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재직증명서를 받기 위해 회사에 용기를 내 물어봤습니다. ‘정규직원은 아닌데 재직증명서 비슷한 건 발급이 가능하다’는 말에 부탁을 했습니다. 하루 이틀 사이에 금방 나온다던 서류는 일주일이 지나도 오질 않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전화 연결이 안 된다’는 매정한 기계음만 나옵니다. 당장 하루 일당 받는 건설현장이 생겨 나간다 해도, 재직증명서 발급은 불가능합니다.
 
곧 봄입니다. 이제부터 할 수 있는 선택은 세 가집니다. 하나, 재취업이 될 때까지 백수가 되어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아이와 미래 없이 산다. 둘,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 위탁 보육(보육원)을 보낸다. 셋, 비관하며 생을 마감한다.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돌보며 일을 해 생계를 유지하고, 재취업을 할 수 있을까요? 정말 정부는 아이를 낳아서 키우라는 건지, 굶어 죽으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종이 한 장을 꽉 채워 보낸 한 독자의 편지다. 최근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올해 초등 돌봄 교실과 마을 돌봄을 통해 약 46만명의 아이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뒤질세라 행정안전부는 ‘정부24’ 홈페이지에서 초등 돌봄을 손쉽게 신청하란 발표도 내놨다. 하지만 현실은 이렇다. 정부는 돌봄 신청이 클릭 몇 번에 다 될 것처럼 말하지만, 죽을 힘을 다해 살고 있는 이 아빠는 지금 벼랑 끝에 서 있다. 
 
김현예 내셔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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