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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커] 현물 압도하는 선물 시장.. 세계화 그 이상을 바란다

[출처: 셔터스톡]

 

[파커’s Crypto Story] 최근 자산운용규모 약 8900조원의 세계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펀드 포트폴리오 안에 비트코인 선물 상품을 투자적격 대상에 올리면서 암호화폐 선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때마침 국내외 주식시장도 선물 매도 개념과 유사한 공매도 이슈가 잇달아 터지면서 이른 바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가 다시 언급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상황에서 암호화폐 시장은 금융의 선진화를 위해 어떤 길을 걸어나가야 할까요. 오늘은 조금 불편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 선물이 현물을 장악했다

암호화폐가 제도권 선물 시장에 처음으로 정착한 시기는 2017년 12월입니다. 당시 CBOE(시카고옵션거래소)가 12월 10일에 비트코인 선물을 론칭하자, CME(시카고상품거래소)도 같은 달 18일 비트코인 선물을 시장을 개설했습니다. 이후 2019년 9월에 등장한 실물인수도 방식의 디지털 자산 선물 시장 백트도 비트코인 선물을 내놨습니다. 백트는 세계 최대 증권거래소인 뉴욕증권거래소의 모회사 ICE(인터콘티넨탈익스체인지)와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보스턴컨설팅그룹이 합작해 만든 거래소였습니다. 이 가운데 CBOE는 2020년 3월 비트코인 선물 서비스를 중단했고, 백트는 기업인수목적회사 VPC와의 합병을 통해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추진 중입니다.

 

다만 2020년 전반기만 해도 제도권 비트코인 선물의 실적은 좋지 않았습니다. 시장을 선점한 비트멕스·바이낸스·후오비 등의 민간 암호화폐 마진 거래소가 우위를 차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20년 후반기부터 제도권의 거래소 규제와 함께 기관 진입이 시작되면서 제도권 비트코인 선물 시장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2020년 4분기에는 CME의 비트코인 선물 미결제약정 수가 민간 암호화폐 거래소를 일시적으로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제도권과 민간을 통합한 비트코인 선물 시장의 성장률은 더욱 놀랍습니다. 블룸버그의 2019년 10월 보도에 따르면 당시 상위 13개 거래소의 암호화폐 선물 시장 규모는 현물 시장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조차도 당시에는 놀라운 성장세로 기록됐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비트코인 선물 시장만 놓고 보더라도 전체 암호화폐 현물 시장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 됐습니다. 2021년 1월 28일 기준으로 비트코인 월간 선물 거래량은 1조 7700억 달러규모에 육박합니다. 반면 알트코인까지 포함한 현물 시장의 월간 거래량은 약 6270억 달러입니다. 말그대로 선물이 현물을 장악한 상황입니다.  

 

# 난색 표하는 제도권·업계·커뮤니티

이러한 파괴력에도 불구하고 선물과 같은 파생상품을 대하는 시선은 대부분 조심스러운 편입니다. 미국은 제도권 차원에서 비트코인·이더리움을 제외한 암호화폐 선물 론칭에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미국 민간 암호화폐 거래소의 경우에는 코인베이스가 CFTC(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지침을 자체적으로 해석해 지난 11월 마진 거래(레버리지 최대 3배)를 중단하기도 했죠. 다른 나라도 대부분 선물 거래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편입니다. 주요 국가 가운데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나라가 바로 영국인데요. 영국은 지난 10월 암호화폐에 대한 일반 소비자의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파생상품 전면 금지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스위스·싱가포르와 같은 금융 진보 국가들도 인가된 거래소 내의 선물 거래를 허용하는 등 다른 나라에 비하면 온건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나, 개인에게는 진입장벽을 두는 식의 제한적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 역시 비슷한 입장입니다. 바로 얼마 전인 1월 26일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은 유튜브 생중계로 열린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아직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가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되지 않았다.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가 제도권 자산으로 편입되지 않은 상황에서 파생상품 기초자산으로 고려하는 것은 시기상조로 판단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국내 업계 및 커뮤니티에서도 선물에 대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조심스럽습니다. 국내 주요 거래소 관계자들에게 이와 관련한 답변을 직접적으로 요구했으나 “아직 명확한 규제안이 나오지 않아 답변을 드리기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만 “투자자 보호를 위해 선물 시장에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좋으나, 향후 시장의 성장을 고려했을 때 헷지(Hedge)와 유동성 확장 차원에서라도 선물 도입이 논의되면 좋겠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더욱 확대됐을 때 한국에 암호화폐 선물 시장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이용하는 기관 및 기업들은 해외 업체에 지속적으로 많은 거래비용을 지불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커뮤니티 역시 선물 투자가 가지는 리스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 본질은 리스크·자유·책임… 세계화를 넘어선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때마침 암호화폐 시장 바깥에서도 선물을 비롯한 금융 제도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지난 3월 코로나19로 인해 공매도가 폐지된 이후 공매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순수한 개념에서의 공매도는 선물은 아닙니다. 하지만, 하락에 헷지할 수 있다는 점에선 유사한 부분이 있는데요. 그동안 한국 공매도 제도는 개인에게 20억 미만의 대차거래를 금지시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실제로 공매도 금지 이후 주가가 상승을 거듭하자 개인들 사이에서 비판은 더욱 거세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해외에서도 눈여겨볼만한 소식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 게임스탑 주가 폭등 이 대표적 사례인데요. 기관들의 게임스탑 공매도에 반발해 투자자들이 주식을 대거 사들여 기관을 무릎 꿇린 것입니다. 이에 대한 숏 스퀴즈 현상으로 게임스탑 주가는 어제 하루에만 134.8% 가량 폭등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사례는 기관의 입장에선 거품이라는 우려를 표할 수 있는 사건입니다. 그러나 개인과 제도의 관점에서 보면 금융 패러다임의 변화를 알리는 이벤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개인이 금융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각국 제도권도 이전과는 다른 관점을 가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입니다. 투자자 보호 차원에서의 규제는 중요하지만, 기울어진 운동장을 수평으로 맞추려고 하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살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또한 파생상품에 대한 개인들의 이해도가 부족해 금지한다는 말을 하기에도 이전보다 금융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참여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이제는 개인에게도 전보다 더 나은 금융의 자유와 함께 책임을 부여해보면 어떨까요. 필요 이상의 규제는 개인에게 투자자 보호가 아니라 불평등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선물을 비롯한 파생상품의 경우에도 기본적으로 리스크가 큰 투자상품임을 모르는 개인은 없습니다. 앞으로는 지나친 투자자 보호보다는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기조로 금융 자유화를 추진하는 것도 새로운 패러다임에 걸맞은 방법이라고 생각됩니다. 기관 수요가 아니더라도 선물과 같은 헷지 상품은 상황에 따라 개인에게도 합리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만드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책임 없는 무조건적인 자유화 역시 독이 됩니다. 이를 위한 합리적인 컨센서스가 구축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컨센서스는 이전과 같은 국지적인 컨센서스로 그쳐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미 국경 없는 금융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국지적으로 암호화폐를 규제해도 국경 바깥에서의 규제가 그대로 적용되지 않아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모순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A나라에서 자국 암호화폐 사업자들과 투자자들에게 선물 투자를 금지한다고 해도 A나라 바깥의 시장 참여자들은 여전히 관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규제 무풍 지대의 시장 참여자만 많은 수혜를 누리게 됩니다. 느슨한 국제 회의 이상의 강력한 초국가·탈국가적 협의체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또한 주식 시장에서의 서킷 브레이커와 같은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암호화폐는 전세계 모든 참여자들과 컨센서스를 일치시켜야 그 제도가 완성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특정 암호화폐에 서킷 브레이커를 도입한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같은 암호화폐에 대한 서킷 브레이커를 시행하지 않으면 가격 괴리 등의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암호화폐는 단순 세계화를 넘어선 그 이상의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듯 합니다.  

 

박상혁 기자 park.s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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