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권석천의 퍼스펙티브] ‘문재인 보유국’ 시대, 합리적 유권자는 존재하는가

한국 정치가 빠진 상호 혐오의 함정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9. 2020도9836 박○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당파적 양극화가 일상 파고들어
정치 지식·관심 높을수록 더 편향”
정치인들, 부추기며 악순환 심화
우리의 민주주의는 희망적일까

지난 14일 오전 대법원 2호 법정. 법정 앞 게시판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선고 순서는 어디쯤일까. ‘8. 박○○ 병역법 위반’과 ‘10. 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사이였다. 한낱 종이일 뿐인 ‘오늘의 공판 안내’가 그 어떠한 사람도 헌법과 법률 아래 있음을 선언하고 있었다.
 
“피고인 박근혜. 상고인 검사. 주문, 상고를 기각한다.” 이제 모두 끝난 것인가. ‘국정농단’이란 엄청난 폭풍이 지나간 지금, 우린 어떤 교훈을 얻었는가. 씁쓸하게도,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건 전직 대통령들을 사면해주느냐, 마느냐의 정치적 논란뿐이다.
  
‘친문 vs 반문’ 두 동강 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왼쪽은 지난 24일 ‘달고나커피동호회’의 문 대통령 생일 축하광고. [트위터 캡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 반대는 점점 더 격렬해지고 있다. 왼쪽은 지난 24일 ‘달고나커피동호회’의 문 대통령 생일 축하광고. [트위터 캡처]

“대통령의 의무를 저버린 채 헌법과 법률을 위반함으로써 대의민주제와 법치주의를 훼손했다.” 2017년 3월 헌법재판소가 현직 대통령을 파면했다. “제 머리는 통합과 공존의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청사진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같은 해 5월 취임한 새 대통령은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3년 8개월이 지난 현재, 정치적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친문(親文)이냐, 반문(反文)이냐에 따라 페이스북 친구가 갈리고, 트위터 팔로워가 나뉜다. 자신들과 성향이 다른 이들을 향해선 거친 조롱과 분노를 토해낸다. 이런 현상은 2019년 조국 사태, 지난해 추윤(추미애 법무장관-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을 거치며 증폭됐다. 토론으로 시시비비를 가려야 할 사안들마저 정치적 공방에 휩쓸려 들어간다.  
 
지난해 8월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하며 문 대통령 이름에 신발을 던지는 모습. [뉴스1]

지난해 8월 보수단체 회원들이 집회를 하며 문 대통령 이름에 신발을 던지는 모습. [뉴스1]

조국 사태 때였다. 한 변호사가 사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쪽이 조금 더 잘못을 했다고요? 뭐,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정치적으로는 잘못한 게 아닙니다. 큰 싸움을 하는 중이잖아요. 정권이 한 번은 더 가야 정리될 문젭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도 친문 대 반문 구도다. 문재인 대통령 생일이던 지난 24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과 우상호 의원(민주당)이 소셜미디어에 축하 메시지를 올렸다.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입니다!!!’ ‘지금껏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던 대한민국과 대통령….’ 국민의힘 후보들은 ‘문재인 보유국은 위험하고 침체된 대한민국’(나경원) ‘문비어천가’(오세훈)라고 맞받아쳤다.
   
유권자들은 얼마나 합리적일까
 
왜 이런 일들이 벌어질까. ‘당파적 양극화의 비정치적 효과.’ 지난달 한국정치학회보에 실린 논문이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 등이 지난해 총선 직후 명지대 미래정치연구소에서 실시한 유권자 인식조사 데이터를 분석했다. 지지하는 정당과 그렇지 않은 정당에 대한 정서적 양극화의 효과를 따져보기 위해서였다.
 
정치적 성향 관련 진술에 대한 응답은

정치적 성향 관련 진술에 대한 응답은

그 결과는 비관적이다. 지지 정당과 상대 정당에 대해 느끼는 감정적 태도의 차이가 클수록 상대 진영에 속한 사람들을 차별하고(‘내 집단 선호’), 그들의 지적·도덕적 능력에 의구심을 품는 것(‘집단 우월감’)으로 나타났다. “당파적 양극화의 심화가 단순히 정치적 쟁점을 둘러싼 논쟁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영위하는 삶의 곳곳에 침투해 있음을 실증적으로….” 특히 정치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러한 경향은 두드러졌다.
 
앞서 지난해 6월 한국정치학회보엔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유권자의 정치 관심은 언제나 바람직한가?’ 하상응 서강대 교수 등이 2014년과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 설문 자료를 분석했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이념 성향과 맞는 정권이 들어섰을 때 정부를 신뢰하고, 성향과 맞지 않는 정권이 들어서면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주의 이론이 상정하고 있는 합리적 유권자(rational voters), 정부 정책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유권자는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정치 관심 높을수록 성향별‘정부 신뢰’영향력도 커져

정치 관심 높을수록 성향별‘정부 신뢰’영향력도 커져

편향성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유권자들에게서 유독 강하게 드러났다. “이념 성향이 뚜렷한 유권자가 정치에 관심이 높게 되면 정보량이 더 많아지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설득당하지 않을 것이다.” 논문은 “대의민주주의 실현에 필수 요인인 합리적 유권자를 어떻게 육성해야 하는지 새로운 고민을 던져준다”고 했다.
 
합리적 유권자가 사라진다는 것은 ‘좋은 정치’의 기반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눈치 빠른 정치인들은 편리한 선택을 한다. 자신이 합리적인 정치인임을 과시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성 지지자들과 동질적임을 똑똑히 보여줘야 선거에 유리하다. 진영 내부가 아닌 외부의 비판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자랑스러운 ‘훈장’이다.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흔들린다
 
수요가 공급을 부른다. 지지층이 목소리를 높이면 정치인들은 그들의 구미에 맞는 시각과 논리를 제공한다. 대중은 자신들의 믿음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확증 편향), 믿음과 맞지 않는 정보들은 무시하거나(비확증 편향), 믿음에 맞게 재해석한다(부메랑 효과). 당파적 양극화의 악순환이다.
 
더욱이 진영의 구심력은 ‘어떤 가치를 지향하느냐’에서 생기지 않는다. ‘누구를 혐오하느냐’에서 생긴다. 한국 사회에서 음모론과 요설과 막말이 판치는 이유다. 이런 상태가 장기화하면 어떻게 될까. 결국 대의민주제가 허물어지지 않을까. 미국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 등이 쓴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미국 민주주의의 가드레일이 흔들리고 있다”며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당파적 양극화는 정책 차이를 넘어서, 인종과 문화에 걸친 본질적 갈등으로까지 뻗어 있다. 민주주의 붕괴에 관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진실이 있다면, 그것은 극단적인 양극화가 민주주의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민주주의는…』은 ‘게이트 키퍼(gatekeeper·문지기)’인 기성 정당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를 통해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재판관을 지낸 한 법조인은 제도화를 강조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후 새로운 정부의 과제는 정상궤도에서 이탈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인적인 적폐청산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모든 사안이 정치적 블랙홀 속에 빨려 들어가다 보니 정작 중요한 제도화의 타이밍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제라도 제도화에 힘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차기 정권, 차차기 정권엔 보수든, 진보든 극단주의자들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검찰은 남용, 정치는 이용, 언론은 편승
 
검찰은 남용했고, 대중은 열광했고, 법원은 방조했고, 정치는 이용했고, 전문가는 비겁했다. 나 자신을 포함한 언론은? 부끄럽지만 어느 한쪽에 편승했다. 이 추세대로 가다간 “온갖 광대와 괴물이 웃고 뒹굴며 오는 것”(드라마 ‘이어즈 앤 이어즈’)을 막기 힘들다.
 
2021년 한국 민주주의는, 박근혜 시대와는 다른 의미에서, 위기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셤의 법칙에 합리적인 유권자들이 고개 숙여선 안 된다. 말하지 않으면 투명인간이 되는 시대다. 선량한 지지자들도 ‘우리 편의 선의’에만 기대지 말아야 한다. 지지하는 정당에도 합리적 의심의 잣대를 대야 한다. 왜 그래야 하냐고?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경고로 답을 대신하고자 한다.
 
“범죄적 정치 체제는 범죄자가 아니라,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을 발견했다고 확신하는 광신자들이 만든 것이다.”
 
국정농단 사건이 남긴 교훈…포탄은 같은 곳에 떨어지지 않는다
“한번 포탄이 떨어진 곳에는 다시 떨어지지 않는다.”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파기환송심 재판에서 전문심리위원으로 지정된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이 삼성의 준법감시 제도를 점검하면서 했던 말이다. 해당 사건에서 문제된 위법행위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새로운 위험을 유형화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강 전 재판관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의 주심이었다는 사실이다. 탄핵심판을 하면서 갖게 된 문제의식을 준법감시 제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한 게 아닐까. 국정농단 사건을 보자. 만약 최서원씨가 청와대 비서관이나 행정관 직책을 가지고 있었다면 상당부분은 문제가 안 되지 않았을까. 청와대 시스템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국정농단’과 똑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더라도 비슷한 일들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구조 아닌가.
 
사건은 늘 예상치 못했던 곳,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믿었던 곳에서 터진다. 똑같은 잘못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란 다짐에 그쳐선 안 된다. ‘다르지만 비슷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물어야 한다. 가장 무서운 확증 편향은 ‘우린 선의로 움직이니까 문제가 없을 것’이란 확신이다.
 
권석천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