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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금고지기' 사위도 망명···"딸의 좋은 미래 위해 결심"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이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고지기’ 역할을 했던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장의 사위가 가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정착했다. 39호실은 외화벌이를 관장하고 벌어들인 외화를 관리하는 노동당 부서다.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실장 사위 2019년 입국
자녀 미래와 신변 위협 압박에 한국행 택한듯
"대북제재로 근로자 추방하자 대사관 운영 난관"
김정일 동창인 장인은 김씨 3대 외화 금고지기
태영호 "39호실장은 궁정경제 책임, 실세 중의 실세"
전일춘은 은퇴 후 고급아파트에서 일반아파트로

2019년 국내에 입국한 류현우(가운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가 2015년 5월 이수용 당시 외무성 부상과 방북한 오만 외무성 대표단의 면담에 배석했다. [연합뉴스]

2019년 국내에 입국한 류현우(가운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 대사대리가 2015년 5월 이수용 당시 외무성 부상과 방북한 오만 외무성 대표단의 면담에 배석했다. [연합뉴스]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관의 대사대리를 지내다 2019년 9월 한국에 온 류현우(한국 도착후 개명한 이름) 씨는 25일 통화에서 “딸의 밝은 미래를 위해 한국행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단 류씨는 장인에 대해선 응답을 피했다. 가족과 관련된 특정 정보에 대해서도 "개인사"라며 언급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한국행을 선택한 이유가 따님 때문인가.
그렇다. 자녀(딸)에게 좀 더 좋은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다.
전일춘 전 실장이 가시아버지(장인)가 맞나.
전화로 얘기하기는 좀 그렇다.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 문제도 있고, 전화상으로 얘기하기가 어렵다. 
  
 영국 주재 북한 대사관 공사를 지내다 한국에 온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은 "그 분(류현우씨)의 장인은 실세 중의 실세였다고 알고 있다"며 "북한에서 39호실 실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자리이자 측근 중 측근으로 쉽게 말해 왕실의 궁정경제를 책임지는 권력의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태 의원은 전일춘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관계에 대해선 "서로 동창으로 인간적으로도 절친한 관계로 알고 있다"며 "김정은 후계 구도가 서기 전부터 막역한 사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사회는 2017년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에 따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2371)로 대북제재를 강화했다. 그 일환으로 각국의 노동자와 대사들을 대거 추방하는 조치를 했는데, 류씨는 그해 말부터 한국에 입국할 때까지 2년여 동안 공석이었던 대사를 대신해 대사역할(대사대리)을 한 것으로 정부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이태리 대사대리를 지내다 한국에 온 조성길 씨와 유사한 역할을 하다, 비슷한 시기에 한국에 온 셈이다.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 실장 [조선중앙TV 캡처]

전일춘 전 노동당 39호 실장 [조선중앙TV 캡처]

 
대북 소식통은 “북한 외무성은 현지에서 운영자금을 스스로 조달하는 경우가 많다”며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각국이 대사와 북한의 돈줄 역할을 한 근로자들을 추방하자 현지 공관에선 긴축재정을 해야 하고, 대사를 대리로 맡은 참사관들의 부담이 가중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 머물던 고위층의 탈북이 개인적 이유와 함께 대북제재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류 씨가 머물던 쿠웨이트의 북한 대사관 역시 2019년 규모를 줄여 쿠웨이트의 번화가에서 외곽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물품이 분실돼 류 씨가 곤란한 상황을 겪었다는 소문이 탈북자들 사이에 돌기도 했다. 이와 관련 류 씨는 통화에서 "엉뚱한 얘기"라며 일축했다.  
북한의 전일춘(원안) 전 노동당 39호실장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광복지구상업중심 현지지도에 동행해 보고를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이틀 전이다. [연합뉴스]

북한의 전일춘(원안) 전 노동당 39호실장이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광복지구상업중심 현지지도에 동행해 보고를 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사망 이틀 전이다. [연합뉴스]

류씨는 국내 입국 시기는 물론 과정에 대해서도 말을 아꼈다. 단, 정부 당국자는 "류씨가 쿠웨이트 주재 한국 대사관을 찾아왔고, 한국행을 분명히 원한 것으로 안다"며 "북한에서 그의 망명 사실을 알 경우 '추격조'가 나설 수 있고,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어 신속하게 한국행이 이뤄졌다"고 귀띔했다. 조성길 대사대리가 서방 망명을 타진한 지 8개월여 만에 한국에 온 것과 달리 류씨의 국내입국은 일주일이 채 걸리지 않았다는 게 당국자의 설명이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평양외국어대 아랍어과를 졸업한 류 씨는 군 복무를 마치고 외무성에 들어가 북한의 ‘우방’으로 꼽히는 시리아 등지에서 해외 생활을 했다. 북한은 정치적으로 이집트, 시리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지만, 아랍을 담당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쿠웨이트 근무를 선호한다고 한다. 2016년 현재 4000명이 넘는 북한 근로자가 쿠웨이트에 파견돼 활동하는 등 외화수입이 짭짤해서다. 북한은 한때 쿠웨이트에 비정기 항공 노선을 운영하기도 했다. 
 
전일춘 전 39호 실장(원안)이 2012년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당시 국방위 제1위원장)의 평양 중앙동물원 현지지도를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일춘 전 39호 실장(원안)이 2012년 5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당시 국방위 제1위원장)의 평양 중앙동물원 현지지도를 수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는 “지금은 노동자들이 대부분 철수했지만 북한은 1960년대 초반에 쿠웨이트에 무역사무소를 설치했고, 70년에는 무역대표부로 격상하는 등 쿠웨이트와 경제 교류에 무게를 뒀다”며 “무역대표부는 무역성(현 대외경제성)에서 운영하는데, 외무성에서도 외화 조달을 위해 쿠웨이트에 2003년 상주대사관을 개설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외무성의 선호지중 하나인 쿠웨이트에 류 씨가 부임하는데 전일춘 전 39호실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류 씨의 부인이 김일성종합대 경제 관련 학과를 졸업했지만 남편을 따라 근무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은 쿠웨이트에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전 전 실장이 ‘뒷배’가 됐을 수 있다는 얘기다.
 
1941년생으로 파악된 전일춘 전 실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 보다 한 살 많지만, 김 위원장과 당 고위 간부의 자제들이 다니는 남산고급중학교 동기로 알려져 있다. 그는 김일성 시대인 1980년대엔 정무원(현 내각)의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과 대외경제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친 뒤 당으로 옮겨 39호실 부실장과 실장을 역임했다. 
 
2015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에 동행하는 모습이 북한 매체에 나왔는데, 전 전 실장이 북한 최고지도자 3대(代)에 걸쳐 외화를 관리한 셈이다. 대북 소식통은 “전일춘이 39호실장으로 승승장구한 데는 김정일 위원장과 동기였다는 배경보다 북한의 목숨줄과 같은 외화 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라며 “특히 90년대 후반 북한이 극심한 외화난을 겪을 때 체제가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역할 했다는 점을 평가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당국은 그가 2017년을 전후해 세대교체의 일환으로 현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그는 은퇴한 뒤 북한 당국이 제공했던 고급 아파트에서 일반 아파트로 이사했고, 일반 주민들과 차이 없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정용수·박현주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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