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혜영
“누구나 성폭력 피해자·가해자 될 수 있어
존엄 회복, 일상 돌아가려 공개 문제 제기”
성추행 김종철 정의당 대표 사퇴
김 대표, 저녁식사 뒤 부적절 접촉
당홈피·SNS “배신감, 당 해체하라”
안희정·오거돈·박원순 이어 충격파
둘의 입장문과 배 부대표 회견을 종합하면, 사건이 벌어진 건 지난 15일 서울 여의도 저녁식사 직후였다. 식사 자리엔 둘뿐이었다. 김 대표는 입장문에서 “이 자리는 제가 청해 만든 자리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차량을 기다리던 중 피해자가 원치 않고 전혀 동의도 없는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행했다”고 밝혔다.
배 부대표는 “사건 당일 장 의원이 김 대표에게 항의했고 김 대표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했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이후 장 의원 측에 ▶당 대표직을 사퇴하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받겠으며 ▶정의당 당기위원회에 스스로 제소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장 의원 측은 ‘셀프 제소’ 방식이 아닌 대표단 회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장 의원이 배 부대표에게 사건 발생 사실을 알린 건 사흘 뒤인 18일이었다.
젠더 폭력 근절 외쳤던 김종철 성추행 … 정의당 “참담하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왼쪽)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5일 사퇴했다. 사진은 지난 4일 회의 모습. [중앙포토]](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1/26/9e687744-bdc0-44ab-a251-91ce940bef3a.jpg)
김종철 정의당 대표(오른쪽)가 같은 당 장혜영 의원(왼쪽)을 성추행한 사실을 인정하고 25일 사퇴했다. 사진은 지난 4일 회의 모습. [중앙포토]
25일 성추행 사건 소식을 처음 접한 대표단 회의 분위기는 “많이들 놀랐고 참담해했다”(정호진 수석대변인)고 한다. 정의당은 이날 곧바로 김 대표 직위해제 및 당기위 제소를 결정했고, 김윤기 부대표가 직무대행을 맡기로 했다. 하지만 선출 3개월 만에 당 대표 하차로 정의당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정의당 홈페이지에는 “창피해서 당원을 못 하겠다. 배신감을 느낀다” “다른 정당도 아닌 정의당에서 가해자가 당 대표라는 사실이 참담하다” 등의 비판 댓글이 이어졌다. 정의당 소셜미디어에는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가해자인 40대 김 대표와 피해자인 30대 장 의원은 20대인 류호정 의원과 함께 ‘포스트 심상정 체제’의 중심을 이루는 트로이카였다. 고(故) 노회찬 대표의 마지막 비서실장이었던 김 대표는 지난해 10월 당직 선거에서 배진교 의원을 제치고 대표로 선출됐다. 2019년 10월 영입인사로 정의당에 합류한 장 의원은 류 의원과 함께 김종철 체제의 핵심을 이뤘다.
성평등과 젠더 문제는 이들이 ‘민주당 2중대’ 논란에서 벗어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기 위해 내세운 핵심 정체성이었다. 이 때문에 지난해 7월 성추행 논란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조문을 장 의원이 거부했을 때도 김 대표는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노력을 정의당이 외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 정의당에서 당 대표가 성 비위로 사퇴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더 컸다. 정 수석대변인은 일단 “성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 당분간 정의당은 김윤기 직무대행체제가 유지될 전망이다. 정 수석대변인은 “김 대표의 임기가 상당히 많이 남아 당규에 따라 당 대표 보궐선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있어서는 안 될 성추행 사건이지만, 은폐나 책임 회피 등으로 흐르는 여느 권력형 성범죄와는 전개 과정이나 문제 해결 방식이 달랐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장 의원이 스스로 피해자 신분을 드러내고 더 나아가 일상화된 성범죄를 사회가 직시해야 한다고 한 대목은 울림을 줬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국회의원조차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용기 있게 고백한 것 자체가 수많은 피해자에게 용기를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의원은 입장문에서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하고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원한 한 여성단체 인사는 “장 의원의 외침은 성범죄에서 ‘가해자=악마’ ‘피해자=미약하고 슬픈 존재’라는 단순 도식을 넘어서 피해자가 어떻게 일상을 회복하고 가해자에게는 어떻게 정당한 책임을 지울 것인가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고 했다.
장혜영 의원
연세대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던 2011년 11월 당시 무한경쟁을 비판하는 ‘이별 선언문’이라는 대자보를 학교에 내걸고 자퇴하면서 화제가 됐다. 이후 발달장애를 가진 동생 장혜정씨의 자립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이 되면’을 제작했다.
송승환 기자 song.seunghwa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