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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덕' '밀덕' 부르는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의례 첫 전시

 
국립고궁박물관이 오는 3월 1일까지 조선 왕실의 군례를 엿볼 수 있는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를 개최한다.   사진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조선 갑옷과 투구 등.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이 오는 3월 1일까지 조선 왕실의 군례를 엿볼 수 있는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를 개최한다. 사진은 독일 라이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 조선 갑옷과 투구 등.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2005년 국립고궁박물관 개관 이래 34번째 특별전인데, 역대 어느 전시보다 가장 ‘남성적’이다. 조선이 문약(文弱)한 나라였다는 선입견을 씻고 군례가 국조오례의 하나였던 500년 역사를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김충배 전시홍보과장)

국립고궁박물관, 군례의 종류·성격 소개
독일박물관 대여유물 등 176건 한자리에

 
19일 개막한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는 일반적으로 고궁박물관 전시하면 연상되는 왕실의 화려·섬세한 유물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제목처럼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태조 이성계가 무관 출신이고 휘하의 왕자·장수들도 사병(私兵) 성격이 강한 군사들을 육성해 개국한 것을 고려하면 왕조 출범에서 군사력은 중요한 기반이었다. 유교를 국시로 공표한 조선은 이 같은 군사력 과시를 국가의례의 형태로도 발전시켰다. 군례는 길례(吉禮, 제사의식)·가례(嘉禮, 혼례)·흉례(凶禮, 장례)·빈례(殯禮, 사신접대)와 함께 국가의 5대 의례에 속했다. 이번 전시에선 이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군사들이 착용한 갑옷과 투구, 무기와 다채로운 군사 깃발 등 176건의 다양한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전시장 중앙에 조선 19세기 갑주(갑옷과 투구) 여섯벌이 도열해 있다. 배경 스크린 속 영상은 군례 중에서 왕이 직접 지휘하는 군사훈련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대열의(大閱儀)를 재현해 촬영한 것이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 전시장 중앙에 조선 19세기 갑주(갑옷과 투구) 여섯벌이 도열해 있다. 배경 스크린 속 영상은 군례 중에서 왕이 직접 지휘하는 군사훈련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대열의(大閱儀)를 재현해 촬영한 것이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장 중앙을 차지한 게 총 6벌의 갑주(갑옷·투구 세트)다. 19세기 제작으로 추정되는데 장수와 일반 군졸 복장이 뚜렷이 구분된다. 장수용의 붉은 융 갑옷은 바깥에 두정(둥글고 볼록한 머리의 못)을 촘촘히 박았고 안으로는 갑찰(비늘 모양의 가죽 조각이나 쇳조각)을 둘러 방호력을 높였다. 임지윤 학예연구사는 “조선 전기만 해도 철이나 가죽 갑찰이 옷 바깥으로 드러난 형태였는데 후기엔 옷감 안쪽에 갑찰을 달고 금속 두정을 박아 고정하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고 했다. 일부 갑주엔 이 같은 갑찰이 없는데 실전이 아니라 의례용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속으로 봉황 무늬를 장식한 화려한 투구도 눈길을 끈다.
 
이들 갑주들은 대형 영상 화면을 배경으로 왕의 시선에서 바라보듯 도열해 있다. 배경 영상은 군례 중에서 왕이 직접 지휘하는 군사훈련으로 가장 규모가 컸던 대열의(大閱儀)를 재현해 촬영한 것이다. 이런 군례를 행할 때 군 통수권자인 왕의 복장 일체와 이를 뒷받침하는 군복 차림 철종 어진(御眞)도 이번 전시를 통해 진귀하게 공개됐다. 이 밖에도 왕이 군사를 동원해 사냥하는 형태의 군사훈련인 강무의(講武儀), 자연현상에 대해 군사력으로 상황을 안정시켜 일상을 회복하려 했던 상징적 군례인 구일식의(救日食儀, 해를 구하는 의례)와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 나쁜 기운을 쫓는 의례), 왕과 신하가 활쏘기로 화합하는 의례인 대사의(大射儀), 전쟁의 승리 과정을 적은 노포와 적의 잘린 머리 등을 거리에 내걸어 승리를 대대적으로 알리고자 한 선로포의(宣露布儀)와 헌괵의(獻馘儀) 등과 관련된 유물이 소개된다.
 
현존하는 어진(왕의 초상화) 중 유일하게 군복을 입고 있는 제25대 국왕 철종의 전신 초상화가 전시된 모습. [연합뉴스]

현존하는 어진(왕의 초상화) 중 유일하게 군복을 입고 있는 제25대 국왕 철종의 전신 초상화가 전시된 모습. [연합뉴스]

또 눈여겨 볼 것은 전시장 한쪽 벽면을 통째로 채운 30여장의 깃발들이다. 오늘날과 같은 통신체계가 없을 당시 혼란한 전투 상황에서 군사명령을 전할 땐 시청각 신호에 의존해야 했다. 이런 신호체계를 형명(形名)이라 일컫는데, 각종 깃발과 악기라고 이해하면 된다. 벽면 한가운데 자리한 압도적인 크기(가로 3.5m, 세로 4m)의 교룡기(국왕을 상징하는 깃발)를 비롯해 5방위를 나타내는 황룡(중앙)·청룡(동)·백호(서)·주작(남)·현무(북)기가 한자리에 모였다. 각각의 수호신을 그린 이들 형형색색 깃발은 군사의 사기를 북돋우는 한편 국왕의 군사권을 상징하는 역할을 했다. 북·징·나각(소라껍질)·나발 등 신호용 악기들도 함께 만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를 통해 선보이는 조선의 군사신호 체계인 '형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깃발이 왕을 상징하는 교룡기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 '조선 왕실 군사력의 상징, 군사의례'를 통해 선보이는 조선의 군사신호 체계인 '형명;.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깃발이 왕을 상징하는 교룡기다. [사진 국립고궁박물관]

전시는 1부 ‘조선 국왕의 군사적 노력’과 2부 ‘조선 왕실의 군사의례’로 이뤄졌다. 일반적인 군비발달 혹은 전쟁사 소개가 아니라서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두차례 전란이 어떤 군사적 변화를 낳았는지에 관심을 둔다면 기대를 충족하기 어려울 듯하다. ‘역덕’(역사 애호가)이나 어지간한 ‘밀덕’(군사 애호가)이 아니고선 각종 의례 유물 나열이 주는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구한말 이후 대한제국 군대가 신식 무기를 갖춘 서양식 군대로 바뀌면서 전통 군사의례가 사실상 소멸했고 오늘날 우리가 ‘국군의 날’ 행사 등에서 만나는 군사의례와는 천양지차가 있단 점도 고려돼야 한다. 임경희 학예연구관은 “군사의례 자체가 연구된 게 극히 드물고 근현대 격변기를 거치면서 남아 있는 유물도 많지 않다. 이번 전시는 입문 내지 개론이며 이를 바탕으로 추가적인 연구와 고증이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장수용 갑주 네벌 가운데 상태가 뛰어난 세벌은 독일 라히프치히 그라시민족학박물관 소장품이다. 이밖에 함부르크 로텐바움박물관 소장품 등 총 40여 점이 독일에서 건너왔다. 독일은 1883년 한독수호통상조약 체결 이후 조선에 본격 진출해 각종 생활 물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이번에 대여·전시되는 유물은 모두 국내에서 처음 공개되는 것들이다. 전시장 한쪽엔 디지털기술을 활용한 활쏘기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3월1일까지 사전 예약을 통해 무료 관람할 수 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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