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9월 24일 플로리다주 잭슨빌의 세실 공항에서 지지자들 앞에서 연설하고 있다. 트럼프 시대는 미국 국내는 물론 국제 정치에서도 깊은 상처를 남겼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1차대전부터 현대 대테러전까지
60만 이상 목숨 잃으며 전쟁 치러
전비 7400조원 쓰며 국제사회 영향력
군국주의·나치즘·파시즘·공산주의 눌러
유럽 동맹 만들려 마셜 플랜 143조원
북미·유럽 묶어 가치동맹 나토 체제로
냉전에서도 승리하며 유일 강국으로
트럼프, 희생·비용·과정을 물거품으로
눈앞 당파성·팬덤에 매몰, 역사 무시
연방의회 난입만큼 국제사회 악영향
CNN, 유럽신뢰 회복에 수십 년 예상
바이든, 유럽 신뢰 복구 외교에 총력

오는 20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릴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의 서측 계단에서 18일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는 지금까지 없었던 대통령

지난 2017년 5월 25일 벨기에 브뤼셀의 나토 본부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에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들을 세워둔 채 군사비 지출을 늘리지 않는다고 대놓고 비난했다. 트럼프는 역대 미국 대통령이 나토에서 해왔던 집단방위 공약 재확인도 하지 하지 않았다. 사진에 나타난 정상들의 표정에 어둡다. AP=연합뉴스
국내 물론 국제질서와 미국 가치도 훼손
트럼프가 떠나도 그의 임기 중 국제사회가 겪은 고통은 트라우마로 남을 것이다. 이는 쉽게 복원되기도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CNN은 “(트럼프가) 쓰레기통에 처박은 유럽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 것”이란 우울한 전망을 했다. 트럼프가 대부분 유럽국가인 나토 동맹국들을 채무자로 모욕하고, 유럽과 함께했던 이란 핵 합의(JCPOA), 세계와 손잡았던 파리기후변화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후폭풍이다. 이제 트럼프가 벌인 행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청구서가 날아올 차례다.
트럼프가 임기 중 추락 직전까지 몰아간 ‘미국’ 브랜드의 가치가 어떤지는 측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지난 한 세기 남짓한 시간 동안 그 브랜드를 구축하고 글로벌 일극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데 어떤 비용을 들였는지를 살피면서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트럼프가 흔들어놓은 미국의 패권과 국제질서는 도대체 어떻게 형성됐는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결정하면서 19세기 이래 전통적으로 취해왔던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미국을 국제질서의 추죽국가로 바꾼 우드로 윌슨 대통령. 사진=미 의회 도서관
1차대전 계기 고립주의->국제질서 주축
이 과정에서 미국은 특히 유럽을 민주주의 동맹으로 이끄는 데 공을 들였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년)에서 독일 제국과 그 동맹이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라는 다민족 전제군주 국가를 무너뜨렸다. 1917년 미국의 참전을 결정하고 전후 베르사유 회담에 참여했던 우드로 윌슨 대통령(1856~1924년, 재임 1913년~1921년)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을 내세웠다. 승전한 연합군은 다민족 국가였던 이 두 제국을 해체하고 ‘개념적’ 민족 개념에 맞춰 갈기갈기 찢고 분할했다. 그렇게 만든 국경선이 현재 발칸을 포함한 중유럽·동유럽과 중동·북아프리카 대부분 지역에 남아있다. 1차대전 참전으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의 행위자로 나섰다.

제2차 대전에서 군국주의와 나치즘, 파시즘을 격파한 미국은 영국, 소련과 함께 전후 질서의 새 판을 짰다. 사진은 얄타회담에 모인 연합국 지도자들. 사진 앞줄 왼쪽부터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지도자.. 사진=미국 국립 문서보관소
2차대전서 군국주의·나치즘·파시즘 격파

1941년 12월 7일 일본의 진주만 공격 뒤 선전포고 문서에 서명하는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사진=미국 국립문서보관소
이어 그해 12월 7일 일본 해군이 진주만을 공격하자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일본과 동맹인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 총통이 11일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자 몇 시간 뒤 미국도 독일에 선전포고하고 공식적인 전쟁에 들어갔다.
2차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1611만 명의 병력을 동원해 전쟁의 핵심이 됐다. 미국은 2차대전에 참전한 결과 독일의 나치즘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그리고 군국주의 무너뜨리고 전후 새로운 세계를 구축했다.
마셜 플랜 143조원 쏟아 유럽을 동맹으로

2018년 11월 1일 나토 훈련에 참가한 노르웨이군의 전차. EPA=연합뉴스
나토 창설, 소련에 대응해 냉전 승리
냉전은 차갑지만은 않았다. 열전으로도 진행돼 막대한 희생을 치렀다. 한국전쟁(1950~1953년)과 베트남전(1955~1975년)이 그것이다. 미국은 대한민국을 지켰지만, 베트남에선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하지만 냉전은 1991년 12월 소련의 붕괴로 막을 내렸다. 냉전에서 승리하고 소련을 무너뜨린 미국은 글로벌 유일 패권 국가로 자리 잡았다. 적을 잃어버린 나토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키는 가치 동맹으로 존속했다. 나토 체제는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유용한 역할을 했다.

오는 20일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식이 열릴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의 서측 계단에서 18일 미국 육군 군악대가 팡파레 리허설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00년간 미국 군인 희생 60만 이상
미국 보훈부(VA)와 미 의회 조사국(CRS)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미국이 패권을 확보하고 미국이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계산해봤다.
먼저 인적 손실이다. 미국 보훈부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전사자는 1차대전(미국 참전 기간 1917~1918년)에서 11만 6516명, 2차대전(1941~1946년)에서 40만 5399명, 한국전쟁(1950~1953년)에서 3만 6574명, 베트남전(1964~1973년)에서 5만 8220명, 걸프전(1990~1991년)에서 2586명, 아프가니스탄전(2001~2014)에서 2349명, 이라크전(2003~2010년)에서 4418명 등으로 합치면 60만 명에 이른다. 2차대전 중 소련이나 중국처럼 1000만 명 이상의 희생을 본 국가도 있다. 하지만 미국은 진주만 공격을 제외하면 한결같이 미국 영토가 직접 공격받지 많은 상태에서 참전한 전쟁이다. 미국은 국토방위가 아닌 전제군주정·나치즘·파시즘·군국주의·공산주의·테러세력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60만 명의 군인이 희생된 셈이다.

지난 18일 미국 워싱턴 연방의사당 위로 경찰 헬기가 날고 있다. 연방의회는 미국의 패권국가로 성장하는 동안 전비와 국제원조 자금을 풍부하게 제공했다. AP=연합뉴스
미, 유일 패권국 되기까지 전비 7400조 원
2020년 명목 금액 기준 국제통화기금(IMF) 추정 국내총생산(GDP)을 보면 미국이 20조8072억 달러, 중국이 14조8607억 달러, 일본이 4조9105억 달러, 독일이 3조7805억 달러, 영국이 2조6382억 달러다. 가치 추산 시기가 조금 다르지만, 이 통계와 비교하면 미국이 패권 국가가 되기까지 지출한 전쟁 비용이 얼마나 큰지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다. 참고로 한국의 2020년 GDP는 1조5867억 달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8년 3월 8일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철강 노동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외국산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각각 25%와 10%의 고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보이고 있다. 관세 부과 대상에는 미국의 동맹국인 캐나다와 유럽국가들이 포함됐다. UPI=연합뉴스
역사 맥락 대신 지지자 살핀 트럼프

2018년 6월 9일 캐나다에서 열린 G7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 배격 입장이 담긴 공동성명을 거부하고 버티는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다른 나라 정상들이 설득하고 있지만 요지부동이다. AP=연합뉴스

2017s년 5월 26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개최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왼쪽)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다른 정상들의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달리 이날 트럼프는 혼자 골프 카트를 타고 별도로 이동했다. 사진=마크롱 대통령 트위터
G7 볼멘 트럼프 때문에 '고난의 행군'

20일 취임식을 앞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 취임 뒤 트럼프 시대에 소원해진 유럽과의 관계 회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AFP=연합뉴스
유럽과 관계 회복이 바이든의 책무
CNN은 트럼프 집권 시절 유럽을 ‘쓰레기통에 처박혔다’고 생각하지만, 그 시간은 유럽에 ‘자유롭고 독립적인 길’ 걸을 기회이기도 했다. 미국과의 동맹 체제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관계를 설정할 모티브가 될 수 있었다.
이를 막고 유럽을 미국의 동맹으로 묶어두는 일이 바이든의 책무가 됐다. 자칫 트럼프가 전임 오바마의 정책을 폐기하는 ABO(Anything But Obama·오바마 빼고 무엇이든) 정책을 펴며 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했듯이,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을 되돌리는 ABT(Anything But Trump·트럼프 빼고 무엇이든) 전략을 선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 과정에서 유럽과의 관계 재설정이 바이든 외교의 1순위로 부상할 수 있다. 한국·일본·인도·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이스라엘·이란 등 중동에 대해서도 고루 신경을 쓰려 하겠지만, 자칫 최우선 순위에서 밀릴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CNN의 전망처럼 중요한 동맹인 유럽과의 관계 회복에 수십 년이 걸리는 건 바이든에게 악몽이기 때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