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국가면제’ 인정 추세, 한국 패소 가능성 있어 외교로 풀어야

위안부 배상 판결 후폭풍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사건에서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린 이후 한·일 간의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 세워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 [뉴시스]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사건에서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린 이후 한·일 간의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사진은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집에 세워져 있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흉상. [뉴시스]

한국 법원이 최근 내린 위안부 배상 판결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만약의 경우 모든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가운데 모처럼 해빙 기운이 도는 한·일 관계에 다시 한파가 휘몰아칠 조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4일 이임하는 도미타 고지(富田浩司) 주한 일본대사와 만나 “한·일 양국이 건설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관계를 조기에 복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향후 한국 법원의 위안부 추가 판결과, 운신의 폭이 매우 좁은 한·일 양국 정부의 ‘강 대 강’ 대치로 긴장과 갈등의 수준이 더욱 고조될 수 있다.
 

국제사법재판소, 독일 주권면제 인정
유럽인권재판소, 피해자 청구 기각

국제법·외교적 현실 무시한 판결
한·일 관계 파탄 부를 잠재적 폭탄
사태 악화 막을 솔로몬 지혜 필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8일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소한 사건에서 원고 승소의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일본이 12명의 피해자들에게 1억원씩 배상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반인도적 행위에는 ‘국가면제(주권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판결은 2005년 8월 총리실 산하 민관공동위원회의 판단처럼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므로 일본의 책임이 남아 있다”는 논리에 입각했다. 이런 논리라면 독립운동으로 처벌받았거나 징병으로 끌려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소송도 가능해진다. 판결의 파장은 그렇게 심각하다.
  
일본, ICJ 제소 등 보복 조치 공언
 
일본이 항소를 포기했기 때문에 판결은 오는 23일 확정된다. 판결의 집행절차가 시작되면 일본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의 제소를 포함해 ‘모든’ 보복조치를 취하겠다고 공언했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외상은 지난 9일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다. 모테기 외상은 방문 중인 브라질, 세네갈, 케냐의 외교장관들에게도 한국 법원 판결의 부당성을 알리는 등 국제적인 여론전을 펴고 있다. 일본은 오는 20일 조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의 협조를 구할 수도 있다. 그만큼 이 문제는 한·일 관계의 파탄을 가져올 수 있는 잠재적 폭탄이다.
 
일본은 그동안 수차례의 사과와 위안부 합의로 이 문제는 해결됐다고 본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서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과문을 읽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죄했다. 일본은 ‘군의 관여’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배상도 했다. 일본은 책임의 이행조치로 10억엔을 화해치유재단에 출연했다. 일본이 제공한 자금으로 생존 피해자와 유족 92명에게 총 44억원이 지급됐다.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번복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해 버렸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 유엔에서 아베 총리에게 화해치유재단의 해산을 통고하면서 일본에 대해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거나 재협상을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재단을 해산하면서 합의의 파기를 부인한 정부의 입장은 모순이다. 그러나 어쨌든 위안부 합의는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양국 사이에 존속한다고 볼 수 있다. 판결이 나온 후 우리 외교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지만, “2015년 위안부 합의가 양국의 공식 합의라는 것을 상기한다”고 했다.
 
일본은 총리의 사과문에서 사실상 국제법적 ‘국가책임’을 인정했다. 더구나 양국은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에 명시적으로 합의했다. 따라서 양국이 합의한 내용을 우리 정부가 뒤집은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과 ‘금반언의 원칙’에 위배된다. 그런 정치적 판단은 국익에도 반한다. 게다가 사법부가 판결을 집행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질 것이다. 잘못된 판단은 부메랑이 돼 국가적 손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판결의 집행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판결의 집행은 일본의 재산에 대한 압류가 필요한데, 그런 조치는 ‘외교 관계에 관한 비엔나협약’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2000년 이후 미국·영국·벨기에·네덜란드·독일·그리스·프랑스 등 각국의 법원은 대부분 국가면제를 이유로 피해자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미국 항소법원의 2001년 ‘샘슨 대 독일’ 사건, 2003년 ‘황금주 대 일본’ 사건이 대표적인 경우다.
 
스가 일본 총리

스가 일본 총리

다만, 대량학살이나 고문과 같은 반인도적 범죄는 주권면제가 인정되지 않는다. 2013년 영국이 케냐에 대해, 또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 대해 사과하고 배상한 것이 그런 경우다. 그리스 대법원도 2차대전 중 발생한 ‘디스토모’ 대량학살 사건의 2001년 판결에서 국가면제를 부인하고 피해자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그리스 대법원의 판결은 법무부의 반대로 집행이 유보됐다. 유럽인권재판소도 피해자의 청구를 기각했다. 2012년 국제사법재판소의 ‘페리니’ 사건도 독일의 국가면제를 인정했다. 따라서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되면 일본이 이길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 대통령 재임 때인 2012년 10월 이동관 전 외교통상부 특임대사와 사이토 쓰요시(齋藤勁) 관방 부장관은 위안부 문제의 잠정안에 의견을 모았다. 일본 대사가 총리의 사죄 편지를 피해자들 앞에서 읽고, 1인당 300만엔을 지급한다는 안이었다. 그러나 당시 일본 집권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배하면서 실현되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은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만 인정하겠다고 했다.
 
특히 역사 수정주의로 과거사를 부정한 아베는 고노 담화를 수정하는 등 강경한 태도를 취했다. 그는 2013년 12월 야스쿠니신사 참배로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실망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 아베는 총리 재임 시에 야스쿠니신사에 공물만 봉납했다. 그런 아베로부터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책임을 인정받은 것은 그만큼 협상을 잘한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996년과 98년 유엔에서 ‘쿠마라스와미’ 보고서와 ‘맥두걸’ 보고서가 공표된 후,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인 관심사가 됐다. 미국도 동맹국인 일본에 전시 성폭력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라고 압박했다. 2013년 12월 방한한 바이든 부통령은 박 대통령에게 위안부 협상을 돕겠다고 했고 실제로 아베에게 수차례 협조를 요청했다. 오바마 대통령도 아베를 설득했다. 위안부 합의의 이면에는 그런 한·미 공조가 있었다.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는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2019년 12월 27일 헌재는 위안부 합의의 헌법소원에 대해 만장일치로 각하 결정을 내렸다. 위안부 합의는 조약이 아닌 정치적 합의이기 때문에 헌법소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헌재가 발을 빼면서, 이 문제는 종결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번 판결로 사정이 바뀌었다. 법원은 ‘사법 자제의 원칙’도 고려하지 않았다. 특정직 공무원인 법관은 외교적으로 잘못된 판결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은 사법부가 행정부의 입장을 존중해 중요한 외교적 사건을 판단한다. 영국 법원은 ‘행정부 확인서’를 외교부로부터 받아 재판을 진행한다. 반면 한국의 사법부는 종종 민감한 외교적 사건도 독자적으로 처리한다.
  
일본 국유재산 압류 등 집행 쉽지 않아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의 변화무쌍한 태도에 난감해 한다. 그래서 한국이 수위를 바꾸며 반복적으로 새로운 사과를 요구하는 것을 ‘골대를 옮기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한다. 스포츠 경기에서 골대를 옮기는 것은 정상적인 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것은 반칙 같은 비신사적 행위의 차원을 넘는 심각한 문제다. 우리는 일본이 언필칭 한국의 국제법 위반을 비난하는 이유를 새겨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일본의 잘못도 있다.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기본관계조약과 청구권협정에서 과거사 문제를 적극적으로 청산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제국주의 시대의 흘러간 역사라고 버틸 문제만은 아니었다. 극우 정치인들은 잊을 만하면 식민지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됐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문제가 아예 날조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계속되는 총리의 사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은 이런 태도 때문이다.
 
한국 정부와 여당은 난감한 입장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과 올여름 도쿄 올림픽에 맞춰 한·일 관계를 복원하려고 했지만 마땅한 해법이 없다. 여권은 전 정부의 사법적폐를 비난했고 삼권분립을 내세워 징용배상 판결의 후속 처리도 실기했다. 그런 상황에 법원은 국제법과 외교적 현실을 무시한 판결을 내렸다. 물론 정치적·사법적 판단을 국제관계의 시각으로만 비판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법원마저 반일감정을 의식한 정무적 판단을 했다면 그 책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외교적 문제는 외교로 푸는 게 정답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4일 강창일 신임 주일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한 뒤 “때때로 문제가 생겨나도 그로 인해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야 할 양국 관계 전체가 발목 잡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일 외교 당국자 회의도 조만간 열릴 것으로 보여 위안부 문제가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사태가 더 나빠지기 전에 막아야 한다. 어쨌든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창위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선데이 배너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