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1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고(故) 노회찬 의원 묘소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을 올린 뒤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졸속 논란이 더 커지는 건 법안 통과된 뒤에도 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이 법안의 본질적 내용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헌법과 형법상의 과잉금지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한국경총 성명서)고 보는 반면 노동계는 “(적용 대상에서 빠진)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사람도 아니냐”(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고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은 발의부터 처리까지 정치적 동기에 따라 진행돼 왔기 때문에 졸속 처리는 예고된 것”(김태기 단국대 교수)이라고 평가한다.
1호 공약을 위해 사생결단식으로 덤벼든 정의당, 우왕좌왕하며 시간에 쫒긴 민주당,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표심잡기를 위해 뒷짐을 진 제1야당이 만들어낸 입법 참사라는 것이다.
정의당의 사생 결단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 총선에서 법안 단독 발의선(10석)도 채우지 못한 정의당은 21대 국회 중대재해법을 당론 1호 법안으로 내세워 사활을 걸었다. 급진적 노동 의제로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도였다.
법안 심의에 참여할 법사위원이 없는 정의당이 택한 방법은 시민단체를 방불케하는 장외 압박이었다. 거대 양당이 논의에 나서지 않자 지난 9월 7일 제정 촉구 1인 시위에 돌입했고 류호정 의원은 항의의 표시로 산업복 차림으로 시정 연설차 국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앞에 서기도 했다. 지난달 10일부터 강은미 원내대표가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함께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정의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법사위 소위가 진행되는 내내 회의실 앞에서 피케팅을 펼쳤다.
불지른 뒤 불구경한 국민의힘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 단식 농성장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 고(故)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중대재해법 통과 직전 열린 8일 의원총회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면서 “김태흠 의원 등이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항의성 발언을 했지만 주 원내대표는 ‘나는 합의한 적 없다’며 사실상 법사위에 책임을 돌렸다”고 전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달 14일 단식 중인 정의당 지도부와 피해 가족들을 찾아 법 제정 의사를 보였지만, 이달 4일 중소기업단체협의회 단체장들을 만나서는 “과잉 입법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당·정 막판 고육지책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고(故)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유가족에게 무궁화장 훈장증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태일 열사의 셋째 동생 전태리, 첫째 동생 전태삼, 문 대통령, 둘째 동생 전옥순. [청와대사진기자단]](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101/10/8045f1b7-f841-48b8-834c-3a136aeb8d80.jpg)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고(故)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유가족에게 무궁화장 훈장증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태일 열사의 셋째 동생 전태리, 첫째 동생 전태삼, 문 대통령, 둘째 동생 전옥순. [청와대사진기자단]
이후 이 대표가 “중대재해법의 이른 시기 제정"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로 정부안이 국회에 도착한 것은 법안소위 논의 시작 나흘 뒤인 지난달 28일이었다.
누더기 법안…책임은

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정의당 의원들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러나 정치권 밖의 시선은 싸늘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이번 중대재해법은 입법 과정에서 여야가 대변하는 이해관계가 여럿 얽히고 설켜 애초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고 실제 필요한 입법은 하지 못했다”며 “입법 준비기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재개정을 논의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허점을 개선할 논의가 재개될 전망이 요원하다는 것도 문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짧게는 4·7 재보궐 선거, 길게는 차기 대선이 걸린 상황에서 노사 대립이 분명한 이 법을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건 여야가 모두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새롬·김기정 기자 saerom@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