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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하다던 중대재해법…여야는 다섯번만 머리를 맞댔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1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고(故) 노회찬 의원 묘소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을 올린 뒤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의당 김종철 대표가 10일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고(故) 노회찬 의원 묘소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법)을 올린 뒤 추모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212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중대재해법)이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본회의를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그러나 여야가 제정안 세부 논의를 위해 머리를 맞댄 건 다섯 차례 뿐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정의당 지도부가 산업재해 사망자 가족과 집단 단식 투쟁이라는 극단책을 펴자 지난달 24일 가까스로 법안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올렸다. 그마저도 보이콧하던 국민의힘은 두번째 소위(지난달 29일)때야 모습을 드러냈다.
 
졸속 논란이 더 커지는 건 법안 통과된 뒤에도 재계와 노동계의 반발이 법안의 본질적 내용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헌법과 형법상의 과잉금지원칙과 책임주의 원칙에도 위배된다”(한국경총 성명서)고 보는 반면 노동계는 “(적용 대상에서 빠진)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사람도 아니냐”(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고 외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대재해법은 발의부터 처리까지 정치적 동기에 따라 진행돼 왔기 때문에 졸속 처리는 예고된 것”(김태기 단국대 교수)이라고 평가한다. 
 
1호 공약을 위해 사생결단식으로 덤벼든 정의당, 우왕좌왕하며 시간에 쫒긴 민주당,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중도층 표심잡기를 위해 뒷짐을 진 제1야당이 만들어낸 입법 참사라는 것이다.     

 

정의당의 사생 결단

10일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고(故)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묘소를 찾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안’이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으로 내용이 좀 변화됐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중대재해에 대한 차별도 함께 막는 법안을 반드시 만들어서 노 대표님을 다시 찾아뵙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5인 미만 사업장 등이 적용 대상에서 배제된 걸 재개정하겠단 의미다. 그는 8일 중대재해법 본회의 통과 직후 “제대로 된 중대재해법을 완성할 때까지 싸움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알렸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지난 총선에서 법안 단독 발의선(10석)도 채우지 못한 정의당은 21대 국회 중대재해법을 당론 1호 법안으로 내세워 사활을 걸었다. 급진적 노동 의제로 ‘민주당 2중대’라는 오명에서 탈피하기 위한 시도였다. 
 
법안 심의에 참여할 법사위원이 없는 정의당이 택한 방법은 시민단체를 방불케하는 장외 압박이었다. 거대 양당이 논의에 나서지 않자 지난 9월 7일 제정 촉구 1인 시위에 돌입했고 류호정 의원은 항의의 표시로 산업복 차림으로 시정 연설차 국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 앞에 서기도 했다. 지난달 10일부터 강은미 원내대표가 고(故)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와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함께 단식투쟁에 돌입했고, 정의당 지도부와 의원들은 법사위 소위가 진행되는 내내 회의실 앞에서 피케팅을 펼쳤다. 
 

불지른 뒤 불구경한 국민의힘

시간을 벌던 거여를 코너에 몬 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여의도연구원 주최의 정책간담회에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를 초청해 “초당적 협력”을 거론했다. 당내에선 “중도 포섭을 위한 좌클릭 정책의 일종”(원내 당직자)이란 평가가 나왔지만 3주 뒤 임이자 의원이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기업의 책임 강화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한 게 끝이었다. 여권에 불을 지른 셈이지만 그 뒤론 불구경만 하는 모습이었다. 내부에서 “기존 보수정당 스탠스로는 합의가 안 된다. 민주당에 독박을 씌우자”(법사위 보좌진)는 기류가 강해지면서 누구 하나 나서지 않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 단식 농성장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 고(故)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마련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 단식 농성장에서 심상정 정의당 의원, 고(故) 김용균의 어머니 김미숙씨, 고(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와 대화하고 있다. 뉴스1

익명을 원한 법사위 관계자는 “당 지도부나 원내 지도부 차원의 전략 지시가 전무했다. 지난주 화요일(4일) 오전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법사위원 간 간담회가 사실상 처음이자 유일한 협의였지만 구체적 의견은 모으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의 한 의원은 “중대재해법 통과 직전 열린 8일 의원총회 분위기가 매우 좋지 않았다”면서 “김태흠 의원 등이 주호영 원내대표에게 항의성 발언을 했지만 주 원내대표는 ‘나는 합의한 적 없다’며 사실상 법사위에 책임을 돌렸다”고 전했다. 주 원내대표는 지난달 14일 단식 중인 정의당 지도부와 피해 가족들을 찾아 법 제정 의사를 보였지만, 이달 4일 중소기업단체협의회 단체장들을 만나서는 “과잉 입법이 없도록 하겠다”며 다른 태도를 보였다. 
 

당·정 막판 고육지책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지난해 9월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해마다 2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산업현장에서 희생된다”며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이 그 (해결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때만 해도 당내에선 산업안전보건법(산업법)의 처벌 수위 상향으로 타협하려는 기류가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16일 장철민 의원이 산재사망 3명 이상시 최대 100억 과징금을 매기는 방안을 골자로 한 산안법 개정안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다음날 문 대통령이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산업재해로 아까운 목숨을 잃는 일이 끊이지 않는다"며 '노동 존중 사회'를 강조하자 중대재해법이 다시 탄력을 받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고(故)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유가족에게 무궁화장 훈장증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태일 열사의 셋째 동생 전태리, 첫째 동생 전태삼, 문 대통령, 둘째 동생 전옥순.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12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고(故) 전태일 열사 훈장 추서식에서 유가족에게 무궁화장 훈장증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전태일 열사의 셋째 동생 전태리, 첫째 동생 전태삼, 문 대통령, 둘째 동생 전옥순. [청와대사진기자단]

 
이후 이 대표가 “중대재해법의 이른 시기 제정"입장을 밝혔지만, 실제로 정부안이 국회에 도착한 것은 법안소위 논의 시작 나흘 뒤인 지난달 28일이었다. 
 

누더기 법안…책임은 

아무도 만족할 수 없는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날 법사위원인 송기헌 민주당 의원은 “누구나 보편적 정의를 기대하지만 현실은 편면적(片面的) 정의일 수밖에 없다. 어느 쪽에 서 있느냐에 따라 정의의 얼굴은 달라지기 때문”이란 글을 썼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백혜련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하나의 법을 가지고 이렇게 오래도록 심사했던 것은 법사위 5년 차지만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정의당 의원들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오종택 기자

백혜련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원회 위원장(왼쪽)이 지난 7일 국회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후퇴한 내용으로 합의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정의당 의원들 앞으로 지나가고 있다. 오종택 기자

 
그러나 정치권 밖의 시선은 싸늘하다.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경영학)는 “이번 중대재해법은 입법 과정에서 여야가 대변하는 이해관계가 여럿 얽히고 설켜 애초의 취지를 크게 벗어났고 실제 필요한 입법은 하지 못했다”며 “입법 준비기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재개정을 논의하는 건 맞지 않다”고 말했다. 허점을 개선할 논의가 재개될 전망이 요원하다는 것도 문제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짧게는 4·7 재보궐 선거, 길게는 차기 대선이 걸린 상황에서 노사 대립이 분명한 이 법을 다시 논의 테이블에 올리는 건 여야가 모두 원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심새롬·김기정 기자 saer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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