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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 생각의 공화국] 자극적 사실만 발굴·전시하는 건 ‘역사’ 아닌 ‘팩트 포르노’

역사란 무엇인가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역사란 무엇인가? 정치적으로 왜곡하면 처벌받기도 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섣불리 잘못 다루면 유명 강사도 TV 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하는, 역사란 무엇인가? 인간은 순간을 살 수도, 영원을 살 수도 없기에 역사가 필요하다. 순간도, 영원도 살아낼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언어로 만든 목발이 바로 역사다.
 

인간은 순간도,영원도 살 수 없어
언어로 만들어 낸 ‘목발’이 역사
역사는 선택한 사실에 의한 이야기
역사가, 사실에 근거한 얘기 써야

순간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순간이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저것 생각할 필요 없이 매 순간의 정념에만 충실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만 있다면 과거의 치기 어린 실수들도 더이상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어제의 ‘뻘짓’도 머릿속에 남아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 어떤 트라우마도 자신에게 깃들지 못할 것이다. 순간을 사는 존재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고 아무것도 다짐하지 않을 것이다. 기억이 없으니, 기억하는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짐하지 않으니, 다짐대로 살아갈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순간을 사는 존재는 당장의 자극에 반응하는 기계일 뿐이다. 사멸할 때까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반응 기계.
 
영원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영원이 전부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것도 변하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더이상 이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두 손을 꼭 잡고 영원 속에 박제되면 얼마나 좋을까. 닥쳐올 변심과 변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것이다. 오고야 말 종말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더이상 노화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다. 세월의 풍화를 막기 위해 이것저것 수선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으니, 연륜이 쌓인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세월을 통해 풍화되어갈 ‘나’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이 아니다. 삼키고 뱉을 필요조차 없는 초월적인 신일 뿐이다. 영원히 사멸하지 않는 저 너머의 존재.
 
순간을 살 수도, 영원을 살 수도 없는 존재를 역사적 존재라고 부른다. 역사적 존재는 역사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순간에 반응하기만 하는 존재에게 의미란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가는 자극일 뿐이다. 영원을 사는 존재에게 의미란 없다. 삶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는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과거를 기억하는 필멸자인 인간만이 역사를 통해 자신이 살아갈 의미를 찾는다.
 
역사적 존재로서 인간은 영화 ‘메멘토’(2001)의 주인공 레너드 셸비와 같다. 레너드 셸비는 10분이 멀다 하고 반복해서, 어딘지 알 수 없는 낯선 호텔방에서 소스라치며 깨어난다. 아내가 살해당해서 생긴 트라우마로 인해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하지 못하기에, 기억이 지워진 새로운 인생을 10분마다 새로 시작해야 한다. 자신이 좀 전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는 채로 어딘지 알 수 없는 낯선 장소에서 거듭 깨어나야만 한다. 10분만 지나면 기억이 소거되는 그를 사람들은 비웃는다. 너는 너 자신이 누구인지조차도 모른다구! (You don’t know who you are!)
 
자기 자신이 누군지 알기 위해서 셸비는 필사적으로 기록한다. 자신이 갔던 장소, 자신이 만났던 사람, 그리고 그들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메모지에 적고, 폴라로이드 사진기로 찍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몸에 문신으로 새긴다. 이제 10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10분 뒤 어느 낯선 호텔방에서 다시 깨어나면, 이 메모와 사진과 문신들을 보면서 처음부터 새로이 자신과 세상을 알아 나가야 한다. 과연 누가 친구이고 누가 적인지. 누구를 믿고, 누구에게 복수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간이라면 모두 레너드 셸비와 마찬가지로 기억상실과 씨름한다. 인간 뇌의 기억용량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이라면 모두 기억상실을 겪는다. 레너드처럼 우리도 무엇인가를 기억했다가 잊어먹고, 또 잊어먹고, 메모를 통해 간신히 지난 일을 상기해낸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었다면, 나는 똑같은 실수를 거듭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은 기억의 동물인 동시에 망각의 동물이다.
 
레너드 셸비는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10분이 지나면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을 것이기에, 원하는 것만 기록하고자 한다. 인간이라면 모두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무엇을 선택하는가. 고통스러웠던 순간, 무의미했던 순간을 애써 돌이켜 보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본가에서 무심코 발견한 어린 시절 일기장 내용은 얼마나 낯선가. “나는 세수할 때 일부러 푸푸 소리를 낸다.” “햄버거는 고기보다 빵이 중요하다.” “초월적인 빤스를 가져와라.” 이런 개소리를 썼던 어린이가 ‘나’일 리 없다. 낯설고 불편한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고 싶은 자식은 애써 그 일기장을 소각하려들 것이다. 그러나 그 기억이 소중한 늙은 부모는 고이 그 낡은 일기장을 간직하려 들 것이다.
 
레너드 셸비는 기억을 조작하기도 한다. 10분이 지나면 모든 기억은 사라지고 메모만이 남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레너드. 그는 일부러 거짓을 메모로 남겨둔다. 10분이 지나 다시 깨어난 자신은 그 메모를 보고, 그 내용이야말로 사실이라고 믿고 행동하게 될 테니까. 이처럼 레너드는 미래의 자신을 위하여 기억을 적극적으로 조작하기까지 한다. 과연 레너드뿐일까? 인간은 종종 기억을 조작한다. 싫은 기억을 회피하거나, 선택적으로 기억하는 일을 넘어, 기억을 적극적으로 조작하기도 한다. 세상에 널려 있는 그 많은 위서(僞書)와 망상(妄想)과 거짓 뉴스를 생각해보라.
 
레너드 셸비는 자기 자신에게조차 거짓말을 한다. 아내가 남에게 살해당했다는 사실조차 레너드 자신이 조작한 가짜 기억에 불과하다는 것이 나중에 드러난다. 결국 레너드는 스스로 창조한 거짓말을 동력으로 해서 애써 살아간 것이다. 이것이 꼭 나쁜 일이기만 한 것이었을까? 그 거짓말 덕분에 셸비는 열심히 살 수 있었다. 아무 트라우마도 없는 또 다른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는 열심히 살래야 할 수가 없다. 그는 트라우마가 없기에 복수할 대상이 없고, 복수할 대상이 없으므로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다. 자신에게 남겨진 숱한 메모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만다.
 
어지러운 메모 더미 속에서 삶의 미아가 되지 않으려면 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 제법 쓸모 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절한 메모를 잘 골라내야 한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위해 거짓 메모도 사용할 수 있지만, 역사가는 사실을 적은 메모만 사용해야 한다. 작가와 달리 역사가들은 어떤 사료가 가짜이고 어떤 사료가 진짜인지를 가려내고자 밤을 지새운다. 사실을 무시하고 역사를 쓰는 사람은 작가일지언정 역사가는 아니다.
 
거짓으로부터 사실을 판별해냈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들이 지금껏 몰랐던 사실을 발굴해냈다고 해서 역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을 자극할 만한 사실을 잔뜩 발굴해서 전시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역사가 아니라 팩트 포르노다. 인간은 순간을 살 수도 영원을 살 수도 없기에, 이야기가 필요하다. 평범한 개인도 한 해가 끝나면 지난해의 의미를 반추하며 그 해의 이야기를 쓴다. 한 시대가 끝나면 지난 시대의 의미를 반추하는 이야기를 쓴다. 여느 작가와는 달리, 역사가는 사실에 근거하여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비로소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그 대답은 어떤 이야기를 쓰느냐에 달려 있고, 그 이야기는 무엇을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레너드 셸비가 아내 살해사건 이후 기억상실증에 시달리듯, 인간은 출생이라는 사고 이후 기억상실증에 시달린다. 삶 자체가 하나의 사고다. 삶이라는 사고로 인해 인간의 기억은 짧고 불완전한 것이 되었다. 이 세상에 던져진 후에, 인간은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무엇인가를 기억해야만 하는 존재, 기억하는 과정에서 기억 대상을 선택하고, 편집하고, 조작할 수도 있는 존재, 따라서 진짜 증거를 찾아 헤매야 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셰익스피어 비극 『리어왕』 1막 4장에서, 리어왕은 말한다. “깨어 있는 것인가. 내가 누구인지 말해 줄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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