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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조선 시대 왕비의 기 살려주던 경복궁 양잠 이벤트

기자
이향우 사진 이향우

[더,오래] 이향우의 궁궐 가는 길(33)

조선의 왕은 친경을 하며 백성의 농사짓는 노고를 알고 왕비는 친잠으로 길쌈하는 아낙의 노고를 알았다. 지금도 경복궁에서는 매년 5월이 되면 왕비의 친잠례 행사가 재현되고 있다.
 
선잠단은 선잠제(先蠶祭)를 지내던 제단으로 조선조 정종 2년(1400)에 건립되었으며 서울의 동교(東郊) 동소문 밖, 지금의 동대문 밖에 있었다. 그리고 성종 대에는 ‘친잠단(親蠶壇)’의 터를 창덕궁 후원에 살펴 정하게 하였다’고 적고 있는데, 이는 후원에 뽕나무를 심어 왕비가 친잠례를 거행하기 위한 채상단(採桑壇)을 설치한 것이다. 성종 8년(1477) 3월 왕비가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채상단에 나가 친잠례를 행했다.


왕비의 권위 알리는 친잠례

조선의 왕비는 선잠단에서 양잠의 신 서릉씨(西陵氏)에게 제사를 지내고 양잠을 직접 시연하는 친잠례를 내외명부를 거느리고 행하였다. 물론 왕비는 만백성의 어머니이니까 그 모범을 보이는 의식이었겠으나 실상은 친경이나 친잠은 어디까지나 의례로 행하던 상징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리고 친잠례는 왕비가 모처럼 집 밖으로 나가 자신의 권위를 한껏 내세울 기회이기도 했다.
 
역대 제왕들 대부분 왕비 이외에 후궁을 여럿 거느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가 역사서나 드라마에서 왕의 총애를 입은 후궁의 위치가 마치 왕비의 권위를 능가하는 듯한 행동이나 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러나 이 친잠례에서의 위계는 아주 엄격해 의식에 있어서 복색(服色)이나 절차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왕비를 정점으로 행해지기 때문에 친잠례를 행하면서 그 위계질서가 다시 부각되는 것이다. 아마도 조선 시대의 왕비는 친잠례로 자신의 권위를 후궁이나 왕실 사람에게 명확하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영조는 경복궁에서 친잠례를 행하도록 명령해 정순왕후가 나이 많은 후궁과 혜경궁을 비롯한 왕실 여인들로부터 하례를 받도록 했다. 영조는 또 이날 축문의 두사(頭辭)에는 친잠례를 행하는 주인공이 조선국 왕비 김씨(朝鮮國王妃金氏)라고 일컫게 했다. 많은 내외명부 여인은 왕비의 발아래 머리를 조아려 절을 해야만 했고, 어린 왕비는 자신의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근정전 내정에서 왕비가 백관의 하례를 받은 후 왕과 왕비가 강녕전에 앉아 혜빈과 세손빈, 내외명부의 알현을 받고 창덕궁으로 돌아왔다.


아미산의 두꺼비

교태전 아미산. [사진 Satomi Abe on flickr]

교태전 아미산. [사진 Satomi Abe on flickr]

 
교태전 뒤쪽으로 돌아가면 나지막한 아미산(峨嵋山)이 나온다. 아미산은 교태전 뒤뜰에 왕비를 위해 조성한 인공 화계(花階)이다. 경회루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꾸민 작은 동산에 사철 즐길 수 있는 꽃과 나무로 아름다운 조경을 꾸몄다. 원래 아미산이라는 이름은 꽤 여럿 등장하는데 가장 유명한 곳은 중국 산동성 박산현에 있는 명산으로 도교에서는 신선이 사는 선경으로 그려졌다. 아미산의 아랫단 화계에는 두꺼비가 조각된 연꽃모양의 물확이 두 개 있다. 서왕모(西王母)가 준 불사약을 먹고 달로 도망가 두꺼비가 된 항아(姮娥)의 전설로 두꺼비는 달을 상징하고 이곳이 곧 신선 세계인 선경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미산 중턱 가운데에는 또 다른 두 개의 큰 못이 있다. 석조형식의 연못으로 ‘노을이 내려앉는 연못’ 낙하담(落霞潭)이 동쪽에, ‘달을 머금은 연못’ 함월지(含月池)가 서쪽에 있다. 이제쯤은 우리의 시적인 감성도 꽤나 무르익었을 터이니 마음으로 고운 석양빛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달빛을 머금은 연지를 살펴보자. 실은 네모난 작은 돌확을 두 개 조각해 놓고 거기에 낙하담, 함월지라 새겼다. 그 작은 못에 붉은 노을이 비치고 은빛 달이 비치는 그림으로 선경의 시상을 떠올리기 바란다. 왕비 또한, 매일 이 작은 못에 지는 노을과 동산에 머무는 달빛을 보며 선경의 항아가 되었을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아미산의 굴뚝

굴뚝의 각 면에는 용면이나 불가사리 등의 벽사(辟邪) 문양과 함께 십장생, 사군자, 만자문, 당초문등의 길상문을 구워 박아서 자칫 칙칙해지기 쉬운 굴뚝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표현했다. [중앙포토]

굴뚝의 각 면에는 용면이나 불가사리 등의 벽사(辟邪) 문양과 함께 십장생, 사군자, 만자문, 당초문등의 길상문을 구워 박아서 자칫 칙칙해지기 쉬운 굴뚝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표현했다. [중앙포토]

 
석지가 있는 화계 윗단에는 굴뚝 4기가 세워져 있다. 아미산에서 우리는 여성을 위한 공간답게 정성 들여 꽃담 치장을 한 굴뚝과 담장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처음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그 조형물이 굴뚝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붉은 벽돌을 사람 키보다 조금 높게 육각형으로 쌓고 그 위에는 기와를 얹어 지붕을 만들고 가운데에는 연기가 빠지는 연가(煙家)를 4개 얹었다. 온돌에서 빠져나온 연기가 땅 밑의 긴 연도(煙道)를 통해 화계위의 굴뚝으로 빠져나가도록 연결해서 열효율을 높이고 굴뚝 위의 연가는 집으로 연기가 역류하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굴뚝의 각 면에는 용면이나 불가사리 등의 벽사(辟邪) 문양과 함께 십장생, 사군자, 만자문, 당초문 등의 길상문을 구워 박아서 자칫 칙칙해지기 쉬운 굴뚝을 아름다운 조형물로 표현했다. 아미산 굴뚝 각 면에는 여러 그루의 매화가 봄소식을 알리는 새의 노래와 한폭에 담겨있는 화조도가 그려져 있다. 굴뚝의 꽃담에 어우러진 매화와 새와 복을 부르는 박쥐와 학이 동산을 꾸미고 있다. 굴뚝을 저토록 아름답게 치장하고 보물로 지정해서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민족이 세계에 또 어디에 있을까 싶다.
 
조그만 동산을 꾸며놓고 신선이 사는 아미산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우리 조상들의 시감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그뿐이랴 낙하담과 함월지는 노을이 깃든 못과 달이 잠긴 연못이니 얼마나 큰 자연인가. 아주 차원 높은 차경(借景) 문화이다.
 
또한 이곳 아미산에서 우리는 그렇게 단순히 경치만을 즐기기 위해 아미산을 쌓은 것 같지 않은, 뭔가보다 더 큰 의미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아미산은 백두대간의 정기가 흘러 백악에 다다라 꽃피운 한 송이 매화의 형상이 아닌가. 그 아미산 동편에 교태전의 뒤편으로 연결된 건순각(建順閣)이 있다. 왕비의 산실로 쓰였던 곳이다. 한반도를 타고 흐르는 백두대간의 정기가 한북정맥을 타고 삼각산에서 백악으로 이어지고 다시 아미산에 다다른다. 그리고 왕비는 이곳에서 백두대간의 정기를 이어받은 왕세자를 낳는다는 왕조의 소망을 구상으로 건순각이 그곳에 있다.
 
조각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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