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평점 사회’

평점사회
별점 1개 테러에 자영업 잇단 폐업
대리 기사, 평점 따라 콜 배치 달라
“평점이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워”
소비자 길라잡이 순기능 있지만
무료 서비스 강요 등 ‘갑질’ 악용
가짜 리뷰 작성 650만원 부르기도
과거 영화, 도서를 중심으로 이뤄진 평점 리뷰가 각종 서비스업을 평가하는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평점으로 속앓이하는 자영업자와 노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리뷰를 이용해 과도한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비방 목적 등 ‘갑질’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15일 대구의 한 간장게장 식당 업주는 유명 유튜버의 허위 리뷰로 폐업을 결정하며 “유튜버들의 허위사실 유포를 막아달라”고 국민청원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다.
긁어 부스럼 될까 적극 대응 잘 안 해

배민커넥트
대부분의 업주들은 평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김씨는 “업주가 자칫 놓칠 수 있는 부분을 고객이 지적함으로써 서비스 개선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며 “같은 시설을 이용하는 고객이 작성한 것이다 보니 좋은 리뷰는 웬만한 홍보보다 효과가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배달 전문 음식점 업주인 이씨 역시 “매출도 매출이지만 좋은 평가를 보며 일에 대한 보람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며 “선의의 경쟁을 위해서라도 당연히 유지돼야 할 제도”라고 말했다.
문제는 평점이 단순히 평가 기능을 넘어 ‘권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이다. 평점을 볼모로 추가 서비스를 요구하거나 보복성 리뷰를 남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다수의 서비스 제공자들은 허위 리뷰를 발견해도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들까 우려해 적극적인 대응을 피한다. 이들 사이에서 ‘코로나19보다 무서운 평점’이란 말이 나온다. 강상용 법무법인YK 변호사는 “평점을 이용한 악의적인 비난과 테러 행위는 엄연히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에 해당한다”며 “하지만 이미지 타격과 당장의 생계로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장씨는 “카카오 전용 기사들끼리 이야기해보면 평점에 따라 콜 배치가 다르다는 걸 체감한다”며 “별점이 낮아지면 최대 1주일 근무 정지를 당하는 경우까지 있어 평점 관리에 다들 애를 쓴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좋은 리뷰를 대신 달아주는 마케팅 업체도 성행한다. 업체는 리뷰 1건당 혹은 특정 키워드당 가격을 받고 ‘가짜 리뷰’를 작성해준다. 대구에서 네일아트 전문점을 운영하는 양성준(29)씨는 “업체로부터 300만원만 내면 리뷰로 대신 홍보해주겠다는 제안 등을 적지 않게 받았다”며 “고객들에게 금방 들통날 것 같아 결국 거절했지만, 사업 초반엔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실제 유명 리뷰 대행업체에 직접 문의한 결과 “평점뿐만 아니라 블로그 체험단 후기, 소셜미디어(SNS) 해시태그까지 달아주는 조건으로 650만원”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포털 사이트와 주요 플랫폼 앱 운영사들은 허위 리뷰나 악성 평점을 걸러내는 시스템 마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인공지능(AI) 등 자체 리뷰 감별 시스템을 통해 악성 평점 노출을 막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평점 리뷰는 방송통신법상 저작물에 해당하기 때문에 작성자 동의 없이 플랫폼 사업자가 임의로 삭제할 수 없다. 네이버 관계자는 “명예훼손 여지가 있거나 어뷰징 목적으로 기재된 평점은 모니터링 과정에서 사전 블라인드가 가능하지만 이미 노출된 평점에 대한 직접적인 삭제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전문가 “쌍방 동등한 위치서 평가해야”
평점 본연의 역할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고객이 일방적으로 평점을 매기는 대신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가 상호 평가하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상당수의 플랫폼의 경우 고객이 리뷰를 남기면 서비스 제공자가 ‘답변’을 하는 방식이다. 숙박시설 앱인 에어비앤비는 호스트와 게스트가 상호 평점을 남길 수 있다. 게스트가 호스트만 볼 수 있도록 ‘비밀 리뷰’를 전달할 수도 있게끔 했다. 호스트의 이미지에 타격을 줄여주기 위해서다. 카카오 드라이브 역시 상호 평점을 매길 수는 있으나 텍스트 형식의 리뷰는 남기지 못한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는 플랫폼의 발달로 다양한 고객을 유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만큼 고객 리스크가 커진다는 단점도 있다”며 “고객과 서비스 제공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거래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우버·에어비앤비 등 상호 평점으로 신뢰 쌓아가
![미국에서 우버를 이용하는 모습. [AP]](https://pds.joins.com/news/component/joongang_sunday/202101/02/bccc30db-0f33-46b9-b740-ba4994cf428d.jpg)
미국에서 우버를 이용하는 모습. [AP]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사회 내에서 ‘별점 테러’ 역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동영상 플랫폼 ‘틱톡’을 이용하는 미국 10대 청소년 수천 명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용 앱을 향해 ‘1점 별점’을 집중한 게 대표적이다. 틱톡을 위협하는 미 대통령을 향한 경고였다.
영국은 플랫폼 운영자에게 고객 리뷰를 어떻게 모니터링하고 관리하고 있는지를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평점 관리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호주는 고객이 광고성 리뷰나 평점 기재할 경우 명확하게 대가성을 밝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나윤 기자 kim.nayoon@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