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로스쿨 중 사고로 시력잃은 학생···시각장애인 판사된 사연

시각 장애인 출신 두 번째 법관으로 임용된 김동현 판사. 변호사 시절 친구들과 벚꽃놀이를 갔을 때 촬영한 모습이다. [김동현 판사 제공]

시각 장애인 출신 두 번째 법관으로 임용된 김동현 판사. 변호사 시절 친구들과 벚꽃놀이를 갔을 때 촬영한 모습이다. [김동현 판사 제공]

"여자친구가 너무 보고 싶네요"

 
지난해 10월 법관으로 임용된 김동현(38) 판사는 1급 시각장애인이다. 2012년 임용된 최영(40) 판사에 이은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이다. 그에게 근황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새해 2월 말부터 국내 시각장애인 2호 판사로 근무
김동현 판사 "더 보고 더 들으며 소외된 인권 지킬 것"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로 사법연수원에서 비대면 법관 연수를 받는 김 판사는 "여자친구와 코로나로 거리 두기를 하느라 한동안 못 봤더니 너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보고 싶다'는 말에 가장 적절한 쓰임새 같았다.
  

로스쿨 재학 중 의료사고로 시력 잃어

김 판사는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아니다. 2012년 5월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재학 중 간단한 눈 수술 도중 발생한 의료사고로 빛을 잃었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과학기술 전문 변호사를 꿈꿨던 미래가 암흑같이 변한 순간이었다.
 
지난해 10월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받던 김동현 판사의 모습. [법원행정처]

지난해 10월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받던 김동현 판사의 모습. [법원행정처]

김 판사는 가족과 동료, 그리고 그보다 8년 앞서 시각장애인 판사가 된 최영 부산지방법원 판사의 도움으로 일어설 수 있었다. 어머니의 제안으로 사고 이듬해 했던 3000배도 그에게 희망을 줬다.
 
김 판사는 "3000배를 한 달에 나눠서 하는 줄 알았다. 무를 수 없어 그냥했다"며 "그런데 첫날 새벽부터 10시간 30분 동안 절을 하고 한참을 엎드려 울었다. 사고 후 그렇게 울어본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김 판사는 "마지막 날, 한 스님께서 '육신의 눈을 뜨진 못했지만, 마음의 눈을 떴으니까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말을 전했다. 그때 보낸 한 달은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값진 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더 성실히 보고 경청하며 소외된 인권 지킬 것"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김 판사는 서울고등법원 재판연구관(2년)과 서울시 장애인 인권 변호사(3년)를 거쳐 올해 판사 임용에 합격했다. "인권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법원에서 전향적 판결을 해야 한다"는 한 공익 변호사의 조언을 듣고 꿈을 바꿔 택한 길이다. 
 
김 판사에게 어떤 판사가 될 것이냐고 묻자 "보이지 않아도 더 성실히 보고 더 경청하겠다"며 "다수의 논리가 지배하는 입법과 행정의 영역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의 인권까지 소홀하지 않게 소중히 지켜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김 판사는 약 네 달간의 연수를 마치고 올해 2월 28일 정식 법관으로 발령받는다. 다음은 김 판사와의 일문일답.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으로 임용된 김동현 판사. [법원행정처]

국내 2호 시각장애인 법관으로 임용된 김동현 판사. [법원행정처]

 
판사 임용 합격 소식을 들은 뒤 어땠나
처음에는 얼떨떨하고 잘 믿어지지 않아 합격 메일을 세 번 읽었다. 오랫동안 소망해 오던 것을 이뤘으니 기쁘고 떨렸다. 그때까지 있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힘들었던 일, 고마웠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가족들 단톡방에 먼저 올리고 통화를 했다. 부모님께서 "장하다""축하한다"고 하셨다.
 
과학기술 전문 변호사에서 판사로 꿈이 바뀐 이유가 있을까
공부하며 법원에 관심이 생겼다. 시각장애인이 된 뒤 학교에 강연을 오신 변호사님께서 이 자리에 있는 인권 감수성 풍부한 사람들이 변호사만 생각하지 말고 법원에 가서 전향적인 판결을 해 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최종적인 결론은 법원이 내는 것이니까. 시각장애인 판사님이 계시다는 것도 상당히 영향을 주었다.  
 
법관 면접 때 기억나는 질문이 있었나 
제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 시각장애로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할까 걱정할 수도 있다는 질문이 있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물었다. 당사자들과 조금 더 소통하겠다고 답변을 드렸다. 옆에 계신 다른 면접관님께서 그런 불신을 극복하는 방법은 계속해서 좋은 재판을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마음에 새기고 있다.
 
변호사 시절 친구집에서 임시 보호 중이던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던 김동현 판사의 모습. [김동현 판사]

변호사 시절 친구집에서 임시 보호 중이던 강아지와 시간을 보내던 김동현 판사의 모습. [김동현 판사]

마음의 눈으로 보라는 한 스님의 조언

시력을 잃은 뒤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었나 
사고가 난 이듬해 어머니께서 3천배 기도를 해보겠냐고 물으셨다. 내 착오인데 3천배를 한 달에 나눠서 하는 줄 알았다. 그러겠다고 하고 다음 날 절에 갔는데 하루에 3천배라고 하더라. 이미 하기로 한 거 무를 수도 없고 그냥 했다. 첫날 새벽부터 밤까지 10시간 반 절을 하고 한참을 엎드려 울었다. 사고 후에 그때까지 울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기를 한 1주일 하다 보니 더 눈물이 나오지 않더라. 마지막 날 스님께서 '육신의 눈을 뜨진 못했지만, 마음의 눈을 떴으니까 마음의 눈으로 보라' 하셨다. 그때 보낸 한 달은 너무 힘들었지만, 저를 다시 태어나게 해 준 값진 시간이었다.
 
시각장애인 1호 최영 판사에게 도움을 받았다고 들었다
연세대 남형두 교수님께서 시각장애인 선배님을 소개해 주셨다. 엑스비전 이사로 계신 김정호 박사님과 최영 판사님이 있었다. 세 명이 함께 남산도 걷고 마라톤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대화를 많이 했다. 나는 최영 판사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는 것이니 훨씬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제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길을 더 넓혀주고 싶다. 
 
판사에 임용된 뒤 어떻게 지내나.
사법연수원에서 신임법관 연수를 받고 있다. 매주 과제가 나오고 토론하고 강평 듣고 판결문 쓰고 계속 강의를 듣는다. 코로나 때문에 대부분 비대면으로 진행된다. 여자친구와 장거리 연애 중인데 코로나로 거리를 두기 하느라 한동안 못 봤더니 너무 보고 싶다.
 
시각장애인 판사와 비장애인 판사의 판결은 다를까
재판을 주재하기에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고 재판장이 되려면 많이 남아서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실무에서 더 보고 배워야 한다. 다만 배석판사의 주된 역할은 주심으로서 기록을 검토하고 판결을 쓰는 것이니까 지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진이나 영상 같은 것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내용을 파악해야 하고 기록 자체를 전자파일로 전환해야 해서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긴 하다.
 
지난해 10월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받던 김동현 판사의 모습. [법원행정처]

지난해 10월 김명수 대법원장(왼쪽)에게 임명장을 받던 김동현 판사의 모습. [법원행정처]

소통하고 공정하며 준비된 재판이 좋은 재판 

좋은 재판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우선 당사자와 충분히 소통하는 재판이다. 법관은 직접 사건을 경험한 것이 아니어서 당사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자기가 이해한 것을 당사자에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공정한 재판이다. 쌍방 당사자가 재판에 승복하려면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에서 공정한 절차와 외관을 갖춰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잘 준비된 재판이다. 적시에 공방이 진행될 수 있도록 미리 기록을 잘 파악하고 의문점이 있으면 적절히 석명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어떤 판사가 되길 바라나
사법부는 인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다. 입법과 행정은 다수의 논리가 지배하는 영역이다. 거기에서 소외되는 사람의 인권까지 소홀하지 않고 소중하게 지켜드리고 싶다. 대한민국의 엄혹한 현대사 속에서도 소신 있게 판결해 주신 선배 판사님들을 존경한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