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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때 일왕 도쿄 탈출 타진"…아키히토는 거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을 서쪽 지역인 교토(京都)로 피신시키려는 움직임이 일본 정부 내에 있었다고 도쿄신문이 30일 보도했다. 신문은 당시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정권의 간부 여러 명을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간 정권, 일왕에 교토로 피난 의사 타진
왕위 계승 2순위 손자 히사히토도 검토
"국민 버리고 갈 수 없어" 거부 의사 전해

이에 따르면 당시 간 정권은 아키히토 일왕에게 교토 또는 교토보다 더 서쪽 지역으로 대피하는 방안을 비공식적으로 타진했다. 이에 궁내청(왕실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 측은 “국민이 피난하고 있지 않은데, (피난은) 있을 수 없다”는 거절의 뜻을 전했다.
 
아키히토 (明仁·왼쪽) 상왕과 미치코 왕비의 2017년 9월 27일 모습. [AP=연합뉴스]

아키히토 (明仁·왼쪽) 상왕과 미치코 왕비의 2017년 9월 27일 모습. [AP=연합뉴스]

 
간 전 총리는 교도통신에 “머릿속으로 (일왕의 대피계획을)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폐하(일왕)에게 타진했거나, 누구에게 말하거나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의 간부에 따르면, 간 총리의 의뢰로 다른 사람을 통해 하케다 신고(羽毛田信吾) 당시 궁내청 장관이 일왕에게 피난 의사를 은밀히 전했다. 궁내청 관계자는 “(피난을) 거절한 기억은 있다. (피난 의사를 타진한 것은) 정부라기보다는 정치가 개인의 이야기로서 들었다”고 증언했다. 이어 일왕에게 피난 의사를 직접 전했는지에 대해선 “사후적으로 전했을 수는 있다”고 말을 흐렸다.
 
피난처로는 교토고쇼(京都御所ㆍ도쿄로 이전하기 전까지 사용했던 왕궁)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일본대지진 발생 다음날 대국민메시지를 발표하는 간 나오토 당시 총리.[지지통신]

동일본대지진 발생 다음날 대국민메시지를 발표하는 간 나오토 당시 총리.[지지통신]

 
또 차남 아키시노미야(秋野宮)의 장남 히사히토(悠仁) 역시 교토 지역으로 피난시키는 것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히사히토는 현재 왕위 계승 순위 2위다. 관계자는 “방사성 물질이 수도권으로 확산하는 상황을 대비한 검토 과제였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쓰나미 피해로 인해 지진 발생 바로 다음날인 3월 12일부터 15일 사이에, 1호기, 3호기, 4호기가 수소폭발을 일으켰다. 당시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원전에서 20~30킬로미터 지역에서 옥외 활동을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인체에 영향을 미칠만한 수치는 나오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정부는 반경 80킬로미터 내 자국 국민에 대해 대피를 지시했다.
 
2019년 12월 공개한 일본 왕실의 가족 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현 일왕의 동생 아키시노미야(秋篠宮)이며, 뒷줄 두번째가 그의 아들 히사히토(悠仁)로 왕위 계승 2위다. 도쿄신문은 일본 정부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히사히토의 대피계획도 검토했다고 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9년 12월 공개한 일본 왕실의 가족 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현 일왕의 동생 아키시노미야(秋篠宮)이며, 뒷줄 두번째가 그의 아들 히사히토(悠仁)로 왕위 계승 2위다. 도쿄신문은 일본 정부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히사히토의 대피계획도 검토했다고 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당시 일왕이 도쿄를 탈출한다는 소문이 실제로 시중에 돌았으며, 이에 가와시마 유타카(川島裕) 시종장(왕실 내무 책임자)은 2011년 5월호 문예춘추에 “폐하(일왕)가 도쿄의 국민을 버리고, 도쿄에서 나간다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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