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포퓰리즘 최종 단계는 ‘자유 뺏기’…사법·언론 탄압은 필수

포퓰리즘을 쏘다 ⑩ 에르도안·오르반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左), 오르반 헝가리 총리(右). 그래픽=최종윤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左), 오르반 헝가리 총리(右). 그래픽=최종윤

집권에 성공한 포퓰리스트 리더의 다음 행보를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영구 집권이다. 장기 또는 영구 집권의 이론·도덕적 토대도 포퓰리스트의 상상 속에선 차고 넘친다. 얀 베르너 뮐러 교수는 “국민의 정당한 대표자는 자신뿐이므로 영원히 집권하는 것은 (포퓰리스트 리더에게) ‘당연하게’ 여겨진다” (『누가 포퓰리스트인가』)고 했다.
 

선출된 권력의 의회 독재 정당화
영구 집권 노려 헌법까지 바꾸곤
“자유 없어도 민주주의” 궤변 주장

영구 집권을 위해 포퓰리스트 지도자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사법부와 언론을 손보는 것이다. 여기엔 좌우가 따로 없다. ‘21세기 사회주의’를 내세운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사법부와 미디어를 입맛대로 요리해 후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장기 집권의 토대를 쌓은 것이 좌파 쪽의 모범 사례라면, 우파 쪽엔 ‘21세기 술탄’으로 불리는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빅테이터(오르반+딕테이터)’로 불리는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가 있다.
  
에르도안, 시계를 거꾸로 돌리다
 
17년째 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2071년 이슬람 국가 복귀’를 목표로 내걸었다. 2001년 정의개발당(AKP)을 창당했다. 겉은 보수주의로 포장했지만 속은 이슬람주의 정당이다.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가 맞춰놓은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 ‘세속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중이다. 에르도안의 터키는 민주주의에서 권위주의로, 1인 독재로 줄달음쳤다. 민주주의 쇠퇴는 시장경제와 보수 가치를 내걸었던 에르도안 집권 초기 비교적 잘 나가던 경제마저 뒷걸음치게 했다. 지난 2년간 터키 리라화 가치는 45% 떨어졌다. 한때 1만2500달러에 달했던 1인당 GDP는 지난해 9150달러로 떨어졌다. 지난 9월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터키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자 주의’로 강등했다.
 
에르도안의 폭압 통치는 2016년 대통령을 겨눈 쿠데타 발발 후 더욱 거칠어졌다. (스톡홀롬자유센터는 이 쿠데타를 에르도안의 권력 강화를 위한 자작극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언론인을 포함해 15만명 넘게 해임·투옥됐다. 국경없는기자회는 터키의 언론 자유를 180개 국중 154번째로 꼽았다. 에르도안의 영구 집권 꿈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2010년 8월 에르도안 당시 총리는 개헌안 투표를 한 달 앞두고 “투시아드(터키 대기업협의회)가 개헌안 국민투표에 대해 분명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면 ‘제거’위험을 맞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당시 개헌안의 주요 내용은 사법부를 여당과 정부 입맛대로 바꾸는 것이었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수를 11명에서 17명으로 늘리고 신규 재판관 임명에 대한 정부 권한을 강화했다. 판검사 최고회의 위원을 7명에서 22명으로 늘리고 일부 임명권을 대통령과 의회가 갖는다. 이를 통해 사법부에 대한 정부 장악력을 높이려는 의도였다. 당시 터키 사법부는 정부·여당의 중점 법안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려왔고, 이에 대해 집권 세력의 불만이 극도로 커진 상태였다.
  
사법부와 미디어를 표적 삼다
 
2011년 최초의 3선 총리가 된 에르도안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이번엔 대통령으로 갈아탔다. 대통령 권한을 강화하고 선출제도를 직선제로 바꿔 2014년 대통령에 당선되더니 2017년엔 대통령 5년 중임을 가능케 하는 개헌을 단행했고, 2018년엔 조기 대선을 치러 당선됐다. 2033년까지 장기 집권의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사법 장악도 더 구체화·본격화했다. 터키 판사의 3분의 1을 쿠데타 연루 혐의로 해임했고, 헌법재판관 2명을 포함해 2750명의 판·검사를 직위해제하거나 체포했다.
 
언론 탄압도 사법 장악과 맞물려 본격화했다. 쿠데타 무산 이후 130여곳의 방송·신문 뉴스매체가 폐쇄됐다. 2018년 워싱턴포스트는 다른 매체들은 친에르도안 기업인에게 팔려 ‘정부 응원단’으로 탈바꿈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 모욕죄와 국가 모독죄로 기소된 사람만 2000여명에 달했다. 미스 터키 출신 뷰육사라츠는 대통령을 풍자한 시를 자신의 SNS에 공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트위터로 에르도안을 욕했다는 이유로 전 여당 국회의원이 3년 징역형을 받았고, 심지어 에르도안의 포스터를 찢었다는 이유로 12·13세 소년 2명이 각각 4년 징역형을 받기도 했다.
  
오르반, 자유 뺀 민주주의 선언
 
오르반 총리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처음 거론한 것은 2014년 총선 승리 직후 연설에서다. 오르반은 이를 통해 서구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나란히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동급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프레이밍’을 제시했다. (한승완 ‘유럽 내 우익민족주의 확산 동향 전망’ 2018년)
 
자유를 뺀 민주주의 세상을 만들려면 사법부에 대한 통제 강화와 언론 탄압이 필수다. 사법·언론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 모델의 생득권인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이때 포퓰리스트들이 내놓는 대응 무기가 ‘선출된 권력’이란 논리다. ‘선출된 권력=국민 주권’이란 것이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이탈리아 총리는 “정부와 의회는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누군가를 판사가 위법하게 무너뜨리려 시도할 수 없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한 개혁을 시행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오르반이 2010년 다시 총리직에 앉은 후 제일 먼저 한 일이 사법부와 검찰 장악이었다. 그는 2010년 검찰총장 임기를 6년에서 9년으로 바꾸고 측근인 피터 폴츠를 임명했다. 사법 행정을 총괄하는 법원행정처장엔 학창 시절 친구였던 툰데 한도를 앉혔다. 툰데 한도는 올 1월엔 헌법재판관에 임명됐다.
 
2011년엔 헌법도 바꿨다. 정부가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해임할 수 있게 했다. 11명이던 헌법재판관을 15명으로 늘리면서 늘어난 4명에 대해선 여당 단독 임명이 가능하도록 했다. 2012년엔 판·검사 정년을 낮춰 274명을 강제 퇴직시켰다. 빈자리를 친정부 성향의 판·검사로 채운 것은 물론이다. 급기야 2018년엔 행정법원 설립까지 밀어붙였다. 선거나 부정·부패, 공안같이 정부 관련 사건은 행정법원에서 처리하되, 행정법원 판사의 임용·승진은 대법원장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 행사하도록 했다. 하지만 EU 회원국들의 강한 반발과 압박에 헝가리는 행정법원 출범을 보류 중이다.
 
언론 탄압도 동시에 진행했다. 친여 매체를 집중 지원하고 비판 언론엔 과태료를 물리거나 폐간했다. 2011년엔 ‘균형을 잃거나 도덕적이지 않은’ 언론에 벌금을 물리는 ‘미디어법’을 만들고 미디어 위원을 모두 여당이 지명한 인물로 채웠다. 2018년 급기야 476개 언론을 통폐합, 중앙에서 언론을 통제하는 체제를 구축했다. 그것도 모자라 올해 3월엔 가짜뉴스를 보도하는 기자에게 최고 5년 형을 선고할 수 있게 형법을 개정했다.
 
에르도안과 오르반의 사법·언론 탄압을 보면서 우리는 근본적인 의문과 만나게 된다. 집권에 성공한 포퓰리즘은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동일어인가. 오르반은 “우리는 자유주의에 반대할 뿐, 여전히 민주주의”라고 주장한다. 승자 독식의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를 뺀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위장 민주주의요 포퓰리즘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숙주 삼는다. 포퓰리즘의 진짜 무서움도 거기에 있다. 숙주를 죽이지 않고 포퓰리즘만 제거할 치료제를 인류는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불치병 포퓰리즘 막을 유일한 처방은 ‘깨시민’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소로스 키드’다. 조지 소로스 재단 장학금으로 영국 옥스퍼드대학을 다녔다. 그런 그가 2년 전엔 헝가리 의회가 ‘중단 소로스(Stop Soros)’라는 이름의 비국가적 난민지원을 처벌하는 패키지법을 만들게 했다. 헝가리 출신인 소로스는 부다페스트에 ‘자유사회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연간 10억 달러를 들여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사회조직을 지원한다. 오르반은 이 재단이 무슬림의 대량 이민을 조장한다며 헝가리에서 쫓아냈다. 할리우드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는 지난달 이런 오르반 총리에 대해 “증오와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며 비난했다.
 
포퓰리즘 리더가 가장 껄끄러워하는 게 시민조직이다. ‘깨시민’이야말로 포퓰리즘의 천적이기 때문이다. ‘소로스 키드’ 출신인 오르반이야말로 누구보다 그런 사실을 잘 안다. 그가 소로스 재단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인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실제 국제통화기금(IMF)이 2018년 발표한 ‘포퓰리즘과 시민사회(Populism and Civil Society)’ 연구에 따르면 시민 단체에 참가한 개인이 포퓰리즘 정당에 투표할 가능성은 2.4~4.2%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는 포퓰리즘 정당이 지배하던 유럽과 남미 각각 17개국, 15년간 6만명 이상의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유럽은 포퓰리즘 투표가 3.2 % 감소했으며 남미도 비슷했지만 통계 누락이 많아 정확한 수치를 확정하지는 못했다고 밝혔다. 대신 노조의 경우 포퓰리즘 정당 투표 감소가 시민단체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