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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 문화재 쇄국이 국격을 떨어트리고 있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런던의 영국박물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유럽과 미국의 대형 박물관은 제국주의 시대 산물로 항시 약탈 문화재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결국은 세계 각국의 예술과 전통을 보여주는 인류 문화유산의 보고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문화예술의 나라답게 서양미술의 루브르 박물관 이외에 근세 미술의 오르세 박물관, 동양 미술의 기메박물관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문화재는 그 나라 문화외교관
환수 노력만이 능사가 아니다
독일미술관 일본실의 10분의1
문화재 쇄국의 빗장을 풀어야

독일도 베를린 시내에 페르가몬 박물관, 신·구 박물관 등이 ‘박물관 섬’을 이루고 있는데 그 맞은편에 동독 시절 공산당 당사로 쓰인 옛 프로이센 궁궐을 개조한 ‘베를린 왕궁, 훔볼트 포룸(Forum)’이 바야흐로 개관을 앞두고 있다.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는 프로이센 출신의 지리학자로 베토벤, 괴테, 칸트 등과 함께 독일이 자랑하는 문화 위인이며 포룸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독일 통일 후 연방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해온 이 포룸은 약 3만㎡에 베를린 민속학박물관, 동아시아 박물관을 흡수하여 방대한 비(非) 유럽문화권 전시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3층 동아시아관의 한국실은 중국실, 일본실의 10분의 1밖에 안 되는 60㎡(약 20평)로 그것도 중국실 끝자락에 곁다리처럼 붙어 있다고 한다.
 
이 날벼락 같은 소식에 베를린 자유대학의 이은정 교수 등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에겐 그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박물관이란 건물과 유물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유물은 약 160점밖에 없고 그것도 전시유물로는 질이 낮아 현대미술 프로젝트로 꾸밀 참이라고 한다. 이런 낭패가 있는가.
 
개관을 기다리고 있는 베를린 왕궁, 훔볼트 포룸(Forum). [사진 훔볼트 포룸 홈페이지]

개관을 기다리고 있는 베를린 왕궁, 훔볼트 포룸(Forum). [사진 훔볼트 포룸 홈페이지]

그러나 이런 문화적 대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35년 전, 난생 처음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갔을 때 나는 방대한 규모의 중국실, 일본실에 비해 한국 유물은 복도에 초라하게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보고 너무도 억울하고 서러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여기에 한국실이 생긴 것은 1998년에 국제교류재단이 삼성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167㎡의 공간을 확보한 뒤였다.
 
영국박물관도 한국 유물이 복도에 진열되어 있었다. 한빛문화재단의 고 한광호 회장은 민족적 자존심에서 100만 파운드(당시 약 16억 원)를 기부하며 한국실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 이것이 종잣돈이 되어 국제교류재단이 약 300㎡ 규모의 한국관을 만든 것은 2000년의 일이다. 기메(동양)박물관은 2001년에 대대적으로 리노베이션 하면서 역시 우리 정부의 지원과 이우환 화백이 기증한 조선시대 유물들로 한국실을 꾸며놓았다.
 
이렇게 21세기 문턱에서 뉴욕, 런던, 파리의 주요 박물관에 한국실이 생겼지만 사실 이는 울며 겨자 먹기의 궁여지책이었다. 왜 우리가 유물과 돈을 갖다 바치며 한국실을 꾸며달라고 애걸복걸해야 한단 말인가. 그네들 스스로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대접을 해야 마땅한 것 아닌가. 그러나 유럽과 미국 박물관의 관계자들은 한국의 문화재 쇄국정책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20년 전, 영국박물관의 로버트 앤더슨 관장과 큐레이터 제인 포탈이 한국에 와서 조선시대 목기와 도자기를 구입하였다. 그런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문화재보호법상 이들은 가져갈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목과 예산으로 한국유물을 구할 수 없다며 우리를 ‘멍청하다’고 비웃었다. 나는 문화재청장 시절 이 법의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국회는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허락을 얻어야 한다’는 단서 조항을 넣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수속까지 밟으며 유물을 구해갈 외국 박물관은 없었다.
 
우리는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재를 보면 죄다 환수해야 한다는 ‘애국심’을 발동한다. 그러나 식민지시대 피해 의식으로 두른 보호벽이 이제 와서는 세계화를 막는 장벽으로 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 문화재는 국내외에서 비참할 정도로 저평가되고 있다. 엊그제 열린 한 국내 옥션에선 1500년 된 가야토기가 30만원에 낙찰될 정도인데 크리스티와 소더비 경매는 몇 해 전부터 한국 유물은 구하기 힘들어 폐쇄하고 일본미술 경매 때 ‘부록’처럼 시행하고 있다.
 
약탈문화재는 끝까지 찾아와야 하고 중요문화재는 절대로 나가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그러나 인사동 고미술상 진열장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일반적인 유물은 해외로 나아가는 길을 과감히 열어주어야 한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진정 문화재를 사랑하는 길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아무리 값이 싸도 유물을 사지 못한다. 영국 사람이 가야토기를 사 가면 영국 토기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영국 사람도 가야토기를 사랑할 정도로 우리 문화재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것이다. 본래 한 나라의 문화재는 이역 땅에서 그 나라의 문화 외교사절 역할을 하는 법이다. 이제 우리는 문화재가 해외로 나아가 한류의 나라, 대한민국이 역사와 전통에서도 문화강국임을 당당히 증언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유홍준 본사 칼럼니스트·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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