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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타이거 우즈 부자 보며 떠올린 톰 모리스 부자

디 오픈에서 네 차례씩 우승한 올드 톰 모리스(왼쪽)와 영 톰 모리스. 아들 영 톰은 24세 크리스마스 날 세상을 떠났다. [중앙포토]

디 오픈에서 네 차례씩 우승한 올드 톰 모리스(왼쪽)와 영 톰 모리스. 아들 영 톰은 24세 크리스마스 날 세상을 떠났다. [중앙포토]

요즘 골프계에선 타이거 우즈의 아들 찰리가 어떻게 성장할지가 관심사다. 찰리가 잘하지만, ‘골프 황제’인 아버지를 넘어서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골프에서 수퍼스타 아버지를 뛰어넘은 선수가 있긴 하다. 1870년대에 활약한 톰 모리스다. 부자의 이름이 같아 골프계에서는 아버지를 올드 톰, 아들을 영 톰이라 부른다.
 
올드 톰은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4번 우승했다. 마지막이 1867년이었다. 이듬해 그는 준우승했는데, 우승자 이름도 톰 모리스였다. 그의 아들이 17세의 나이로 챔피언이 됐다. 영 톰은 디 오픈을 없앨 뻔했다. 3년 연속 우승으로 챔피언 벨트를 소유하게 됐다. 주최 측은 새 벨트를 마련하지 못해 1871년 대회가 열리지 못했다. 곡절 끝에 1872년 다시 열린 대회에서 영 톰은 또 우승했다. 4회 연속 우승이다. 톰 모리스들이 여전히 디 오픈 기록을 갖고 있다. 최고령 우승자가 올드 톰(46세), 최연소 우승자는 영 톰(17세)이다.
 
영 톰은 투어 프로의 원조다. 당시 프로 골퍼는 캐디를 겸하는 하층 계급이었다. 영 톰은 캐디를 하지 않고도 대회 상금만으로 부유하게 살았다. 학교에 다닌 첫 프로 골퍼, 공을 의도적으로 휘어 친 첫 골퍼, 공식 경기에서 홀인원과 앨버트로스를 처음 한 골퍼다. 키가 크고 구레나룻이 멋졌으며 어깨가 넓었다. 스타성도 있었다. 모자가 날아갈 정도로 강하게 스윙했다. 그 모습이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했다.
 
우즈 부자. [AFP=연합뉴스]

우즈 부자. [AFP=연합뉴스]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영 톰은 양궁 사수와 홀에 먼저 넣기 시합을 한 적도 있다. 활은 맞바람에도 300야드를 간다. 벙커나 러프도 문제없다. 영 톰이 지긴 했지만, 완패는 아니었다고 한다.
 
올드 톰은 스타로 성장한 영 톰을 귀족 집안 여자와 결혼시키려 했다. 그런데 아들은 귀족 집안 하녀 출신과 사랑에 빠졌다. 올드 톰은 며느리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1875년 9월 톰 모리스 부자는 다른 지역으로 원정 가 2-2 매치플레이를 했다. 경기 도중 전보가 날아들었다. 출산하던 영 톰의 아내가 위독하다는 내용이었다. 부자 이름이 같아 전보는 아버지에게 잘못 전달됐다. 올드 톰은 승리를 위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었다. 경기가 끝났을 때 교통편도 끊긴 상태였다. 두 사람이 겨우 집에 도착했을 때, 산모와 아기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이후 영 톰은 두문불출하고 술독에 빠져 살았다.
 
동화 속 성냥팔이 소녀처럼, 영 톰이 아내를 만난 건 크리스마스이브였다. 아내가 죽고 16주가 지난 크리스마스 아침, 영 톰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그때 그의 나이 24세였다. 올드 톰은 이후 33년을 더 살았다. 살면서 세 아들과 아내, 딸을 제 손으로 묻었다. 그에게 여생은 고통뿐이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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