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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전 강금실 그 자리, 文의 추천은 원래 추미애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6일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징계안을 재가했다. 

BH리포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직접 들고온 징계안을 받아든 문 대통령은 “추미애 장관의 추진력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공수처와 수사권 개혁을 비롯한 권력기관 개혁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시대가 부여한 임무를 충실히 완수해준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다”고 했다. 
 
추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런 극찬은 일시적인 발언이 아니라는 게 대통령 측근들의 전언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책 『운명』에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 당시 조각(組閣)과 관련해 “강금실 변호사를 (입각 대상으로) 추천한 건 나였다. 여성 법조인 중 발탁할만한 인물을 찾던 (노무현) 당선인 뜻에 따른 것”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이어 “내 추천은 그녀를 법무부장관으로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고 적었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당 대표를 초청 자리에서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당 대표를 초청 자리에서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에 대해 여권의 핵심 인사는 “책에는 적지 않았지만 사실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은 당시 내부적으로는 강금실 변호사가 아니라 추미애 의원을 초대 법무장관으로 추천했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이 숙고 끝에 강 전 장관을 초대 장관으로 발탁했던 것”이라고 했다. 
 
추 장관은 당시 42세의 재선의원이었다. 당시에 이미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눈여겨 보고 있었단 것이다.
 
문 대통령은 결국 17년 만인 지난 1월 추 장관을 법무부장관에 임명했다. 그동안 추 장관은 민주당 대표를 역임한 5선의 중진이 돼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는 한 번 믿은 사람은 기어이 데려오는 대통령의 용인술(用人術)과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2002년 8월 당내에서도 대선 후보로 인정해주지 않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택 개방 행사에 참석한 유일한 현역 의원이 당시 이낙연 대변인이었음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이낙연 전남지사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로 발탁된 것은 그런 과거의 기억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다시 추 장관 얘기로 돌아가면 추 장관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젊은 피 수혈’ 과정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정세균 국무총리,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천신정(천정배ㆍ신기남ㆍ정동영)’, 김민석 의원 등이 그의 정치 동기들이다.
2004년. 추미애 법무장관은 삼보일배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동참한 것을 사죄했다. 그러나 그는 그해 총선에 낙선했다. 중앙포토

2004년. 추미애 법무장관은 삼보일배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동참한 것을 사죄했다. 그러나 그는 그해 총선에 낙선했다. 중앙포토

 
상당수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 때 민주당을 탈당했다. 추 장관은 남았다. “모두 다 탈당한다 하더라도 나 혼자 남아 민주당을 지키겠다”고 했다. 결국 그는 이듬해 민주당의 당론에 따라 노 전 대통령 탄핵 대열에 동참했다.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추 장관은 삼보일배(三步一拜)로 탄핵을 사죄했지만 결국 총선에서 낙선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김한길 의원을 미국에 유학 중이던 추 장관에게 보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시민사회수석이었다. 추 장관의 측근은 “당시 김 의원이 찾아와 통일부 장관 입각을 제안했다”며 “추 장관이 고사하자 환경부 장관직을 계속 권유했었다”고 했다. 추 장관은 “당이 이렇게 된 상황에서 나 혼자 살겠다고 입각할 수 없다”는 취지로 김 의원을 돌려보냈다. 노 전 대통령의 추 장관 영입시도는 문재인 수석의 천거를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
 
2012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은 당의 지원을 거의 받지 못했다. 스스로 “선거를 치르는 데 가장 컸던 어려움 중 하나가 당 지도부의 부재”(『1219 끝이 시작이다』)라고 회고할 정도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이는 ‘친문 핵심’만으로 선거를 이끌려던 핵심 참모들의 오판도 원인이 됐다. 추 장관은 당시 캠프의 공동 국민통합위원장을 맡았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말이 공동 위원장이었지만 당시 후보 주변의 ‘측근 그룹’의 벽이 너무 높아 결국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TK(대구ㆍ경북) 구석구석을 혼자 찾아다녔다”고 회고했다.
 
2015년 야당 대표가 된 문 대통령은 추 장관을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임명했다. 측근 그룹에서도 “왜 ‘우리편’이 아닌 사람을 임명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나 추 장관은 안철수 의원의 탈당 등으로 당이 또다시 쪼개지는 상황에서도 당에 잔류했다. 김대중(DJ) 전 대통령을 정치적 뿌리로 뒀지만 호남권 의원들의 탈당 행렬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6년 친문 세력의 지지를 바탕으로 당대표에 당선됐다. 2017년 대선에선 상임선대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스스로 “계파 정치를 해본 적 없다”는 추 장관의 말처럼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장관 인사 등으로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과의 갈등도 노출됐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임 전 실장에게 장미꽃을 들려 당대표실로 보냈다. 
2017년 5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장미를 들고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했다. 당시 두 사람은 조각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강정현 기자

2017년 5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장미를 들고 추미애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예방했다. 당시 두 사람은 조각 과정에서 갈등을 빚었다. 강정현 기자

 지난해 법무부장관 입각을 전후로 불거진 ‘아들 논란’ 때도, 윤 총장과의 갈등 국면에서 거친 언행으로 논란을 자초했을 때도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추 장관을 지원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검찰총장 찍어내기’ 과정에서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급락했지만 “법무장관이 징계안을 제청하면 그대로 재가한다”는 입장을 반복했다. 추 장관에 대한 문 대통령의 신뢰는 요지부동인듯 하다.
 
여권에선 추 장관이 내년 1~2월로 예상되는 2차 개각 때 교체 대상에 포함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그런데 이 때는 검찰 개혁과 관련해 민감한 시기다. 검찰 개혁의 도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공식 가동되고, 검찰 정기인사 시즌도 맞물려 있다. 이 기간 동안 윤 총장은 2개월 정직 처분에 따라 무장해제 상태가 된다.
 
추 장관의 마지막 임무는 이런 ‘윤석열 공백기’를 맞아 검찰 조직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인사·조직개편 등을 통해 확실히 대못을 박는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권력기관 개혁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합동브리핑실에서 권력기관 개혁 관련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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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과정을 거친 직후인 4월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진다. 만약 추 장관이 주도한 검찰 개혁이 여권 지지층의 큰 호응을 받는다면, 추 장관이 문심(文心)을 등에 업고 유력한 당내 서울시장 후보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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