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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황혼기 부부의 갈등 예방 팁…각자 딴방 쓰기

기자
백만기 사진 백만기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75)

최근엔 결혼해도 자식을 잘 낳지 않으려고 해 형제 있는 어린이가 드문데, 과거에는 형제가 여럿이라 방을 같이 쓰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한때 빌 게이츠와 함께 세계 부호 1~2위를 다투던 멕시코의 부호 카를로스 슬림도 그랬다. 실제로 슬림은 세계적인 갑부이긴 하지만 워런 버핏과 마찬가지로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멕시코 시티에 위치한 방 6개짜리 집에서 30년 이상 살고 있다. 아들 셋, 딸 셋을 키울 때 방 2개를 아들들끼리, 딸들끼리 함께 사용하도록 했다. 슬림은 덕분에 자녀들이 절제를 배웠다고 생각한다.
 
내 경우 슬림처럼 여유가 있는데도 형제들과 방을 같이 쓴 게 아니라 방이 모자랐기 때문에 함께 써야 했다. 책상은 형 차지였고 나는 밥상을 놓고 공부하거나 방바닥에 엎드려서 했다. 비좁긴 하지만 좋은 점도 있다. 잘 모를 땐 형이 옆에서 숙제를 거들어주었다. 어쨌든 형제들과 방을 같이 쓰다가 형이 출가하면서 자연스레 혼자 방을 쓰게 되었다. 나만의 방이 생긴 것이다. 방을 혼자 쓰니 늦게까지 책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결혼 후 한동안은 나의 서재가 있었으나 아이들이 생기자 내 방은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아이들도 나처럼 처음에는 형제끼리 같이 방을 썼으나 머리가 커지면서 각자 방을 쓰기 원했다. [사진 pxhere]

결혼 후 한동안은 나의 서재가 있었으나 아이들이 생기자 내 방은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아이들도 나처럼 처음에는 형제끼리 같이 방을 썼으나 머리가 커지면서 각자 방을 쓰기 원했다. [사진 pxhere]

 
얼마 후 나도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한동안 나의 서재가 있었으나 아이들이 생기자 내줘야 했다. 아이들도 나처럼 처음에는 형제끼리 같이 방을 썼으나 머리가 커지면서 각자 방을 쓰기 원했다. 직장생활을 하며 돈이 모이자 조금씩 큰 집으로 이사 갔다. 먼저 큰아이가 자신의 방을 썼고 둘째와 막내는 같이 방을 썼다. 그러다가 형편이 피며 둘째와 막내도 혼자만의 방을 갖게 되었다. 막내가 자신의 방이 생겼다며 무척 좋아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돌이켜보면 돈을 모으려고 했던 동기가 노후를 대비하기보다 어쩌면 아이들 양육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난다. 아이들로 인해 생활비가 늘었지만 저축할 수 있는 유인이 된 것이다. 아이들에게 방을 내어주다 보니 내 서재는 부엌이나 거실 한쪽을 이용해야 했다. 주로 그곳에서 책을 보았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란 탓인지 아이들 역시 독서를 좋아한다.
 
세월이 지나 큰아이가 출가하자 그 아이의 방을 내 서재로 이용했다. 내 방이 다시 생긴 셈이다. 거실에서 책을 볼 땐 가끔 부엌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는데 혼자 방을 쓰니 조용해서 좋았다. 늦게까지 책을 보며 음악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아내의 방은 없었다. 그 후 막내가 결혼하자 그 방을 아내가 쓰기 시작했다. 그제야 비로소 아내의 방이 생겼다.
 
아내는 무척 그 방을 좋아했다. 혼자 책을 보고 글도 쓰고 그런다. 그렇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그동안 내 공간만 챙겼지 아내의 방까지는 챙기지 못한 자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아내도 왜 그만의 공간을 갖고 싶지 않았겠나. 아내는 이제 자신의 방에서 음악을 들으며 가계부도 적고 성경도 필사하곤 한다. 그 모습이 낯설지만 보기가 좋았다.
 
흔히 사람들은 서재를 남편의 공간, 주방을 아내의 공간으로 나누는데 주방은 아내의 공간이 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다. 어느 여류 작가는 여성도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는 “슬프고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 그조차 남에게 노출해야 하는 것은 비인간적이고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며 “나의 눈물을 감출 수 있는 공간, 정말 혼자 있어야 할 때 그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예술가인 엘리슨은 공간을 나누어 사는 방식이 부부간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이제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목적이 있어 더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pxhere]

예술가인 엘리슨은 공간을 나누어 사는 방식이 부부간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이제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목적이 있어 더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사진 pxhere]

 
아내가 자신의 공간을 원한다는 외국의 사례도 있다. 예술가인 엘리슨과 컴퓨터 엔지니어인 존 댄스킨 부부는 각자만의 공간이 필요했다. 30여 년 전 결혼해 2명의 자녀를 둔 부부는 소소한 일로 가끔 관계가 소원해지곤 했다. 하지만 이혼은 원치 않았다.
 
상의 끝에 부부는 주택을 새로 마련해 각각의 침실, 주방, 식당, 작업실을 가진 두 개의 공간으로 분리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부부는 매일 밤 같은 침실에서 자고 같은 공간에서 저녁 식사를 나눈다. 또 아내가 사용하는 공간에서 함께 손님을 접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부부는 자신만의 주방에서 요리를 따로 하고 각각 사용하는 공간의 청소를 맡고 있다.
 
예전에 자녀를 키우며 살던 커다란 주택에서는 주로 아내가 청소를 맡았다. 남편이 청소를 잘하지 않고 어수선하게 어질러 놓는 것이 부부 갈등의 원인이었다. 엘리슨은 이제 남편이 그의 공간에서 상자를 쌓아둔다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공간을 나누어 사는 방식이 부부간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 이제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낼 때는 목적이 있어 더 재미있다고 덧붙였다.
 
위의 사례처럼 나이가 들면 부부 서로가 독립된 생활을 원한다. 행여 자신은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는 그럴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황혼기에 부부갈등을 예방할 수 있다. 우리 부부는 공간을 둘로 나눌 만큼 여유도 없고 그럴 필요를 느끼지는 않았다. 하지만 서로 독립된 공간을 원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각자의 방을 사용하고 있다.
 
아내나 나나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건 모두에게 좋은 일이다. 저녁을 먹곤 서로 자신의 방에 들어가 음악을 듣거나 공부하기도 한다. 부부이긴 하지만 성이 같지 않으니 좋아하는 분야나 관심사가 다를 수밖에 없다. 젊어서는 육아로 인해 어쩔 수 없다손 치더라도 늘그막에는 그걸 인정해주는 게 필요하다. 서로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각자가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도 그중의 하나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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